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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워치]소수의견이 소수의견이 아닐 때

안승찬 기자I 2019.07.23 00:32:15

5월 금통위서 '금리인하' 소수의견 등장
매파도 경제둔화 걱정..결국 금리인하 선회
무너진 둑..2% 성장 유지에 목메야할 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서울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하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반대표가 한 표만 더 나왔어도 바로 사임했을 겁니다. ”

1980년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를 이끌었던 폴 볼커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자신 의견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이 나오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독재자’, ‘불도저’, ‘고집불통’ 같은 별명으로 불린 볼커 의장은 소수의견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을 모욕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회의는 형식적으론 의장을 포함해 모든 위원이 각자 한 표씩을 가진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표 결과대로 통화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합의방식에 가깝다. 의장이 방향을 잡으면 어지간하면 따르는 게 관례다. 그래서 만장일치 결정이 나올 때가 많다.

일부라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는 건 의장이 아무리 설득해도 먹혀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소수의견의 등장은 그만큼 통화정책회의에서 위원들 간의 이견이 컸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소수의견이 등장한 건 지난 5월이다. 금통위원중에서 대표 ‘비둘기파(완화적 통화정책 선호)’로 알려진 조동철 위원이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냈다.

당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소수의견은 말 그대로 소수의 의견”이라며 “(조 위원의 의견을) 금통위의 시그널(신호)라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한번 벌어지기 시작한 틈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5월 수출 실적이 다시 고꾸라지기 시작하자 이 총재의 말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총재는 지난달 한은 창립 69주년 기념사에서 “경제 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야 하겠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이다.

쐐기를 박은 건 고승범 위원이다. 금융위원회 출신인 고 위원은 ‘금융 안정’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뼛속까지 ‘매파(긴축적 통화정책 선호)’라는 얘기다.

그런 고 위원이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경기와 저물가가) 신경이 많이 쓰인다”면서 통화정책방향 결정과 관련해 “상당히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자신의 평소 소신은 금융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지금의 가계부채 등의 수준을 고려하면 분명히 금리를 내릴 때는 아니지만, 심상치 않은 성장 부진이 자꾸 눈에 밟힌다는 고백이다.

매파인 고 위원이 흔들릴 정도라면 말 다했다. 지난 11월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할 때 조 위원과 함께 동결을 주장한 신인석 위원도 금리 인하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JP모건 등 외국계 투자은행 출신으로 경제지표의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임지원 위원 역시 수출 부진 등의 흐름을 그냥 넘겼을 리 없다.

실제로 금통위는 7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금리동결을 주장한 소수의견은 낸 사람은 ‘원조 매파’로 이일형 위원 뿐이었다. 이 총재와 윤면식 부총재까지 모두 선제적인 금리 인하로 방향을 틀었다.

한은이 금리를 내렸다는 건 견고해 보이던 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은은 추가적인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제 2% 성장을 유지하는 게 목표가 될 처지다. 흘러넘친 유동성이 자칫 자산 버블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하는 과제 또다른 숙제도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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