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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M&A 매물 넘치지만… 병목현상에 ‘안 팔리면 어쩌나'

김성훈 기자I 2022.06.08 01:20:00

[M&A 핫서머]②
조단위 매물 등장에 환호도 잠시
예기치 못한 병목현상에 긴장감↑
자금 받쳐주는 원매자군 제한에
컨소시엄만이 유일한 희망 관측
매물별 흥행 갈리는 '옥석가리기'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상인들이 눈독 들일 물건이 시장에 나왔다고 해보자. 저마다 ‘가격은 얼마냐’, ‘얼마나 내실 있느냐’며 관심을 표할 것이다. 물건이 진짜 마음에 든 몇몇 상인은 물건 주인을 찾아와 ‘살 마음이 있는데 깎아 줄 수 있느냐’며 먼저 묻기도 할 것이다.

팔려는 사람은 단호하다. ‘얼마나 애지중지한 물건인데…돈 없으면 살 생각 하지 마라’고 잘라 말한다. 몸값이 더 오르겠거니 하는 기대도 잠시, 시간이 흐르자 시장이 웅성거린다. 좋은 물건이 시장에 또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다. 상인들 발걸음도 하나 둘 다른 곳을 향한다. 다급해진 물건 주인이 방금까지 가격 흥정을 하던 상인을 붙잡아 보지만 ‘좀 있다 오겠다’며 잡던 팔을 뿌리친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조 단위 매물 한꺼번에 몰린 타이밍 아쉽다”

최근 수 조원 몸값의 매물들이 인수합병(M&A) 시장에 줄줄이 등장한 상황은 이렇게 비유해 볼 수 있다. 흡족한 실적에 입이 떡 벌어지는 몸값까지 M&A 시장의 관심을 독식해도 모자랄 판인데, 덩치가 엇비슷한 매물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매머드급 매물의 잇따른 등장에 시장 분위기가 달아오른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병목현상’에 매물 모두 흥행을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퍼지면서 내심 불안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다.

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대표는 이를 두고 “시기가 좀 아쉽다. 매물별로 (매각 타이밍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았나 싶다”는 평가를 내렸다. 자본 시장 참여자로서 본격적으로 활기를 띨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이는 매각 측이 현재 직면한 사정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말이다. 코로나 엔데믹(풍토병화) 조짐에다 금리 인상 여파 등이 겹친 시장 분위기상 ‘지금 팔겠다고 시장에 내놓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곳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시장 통틀어 한두 개였어야 할 조 단위 매물이 동기간에 8~9개 가까이 나오면서 병목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그는 “시장에서 이 정도 금액 규모의 매물을 소화해줄 원매자는 많다고 볼 수 없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나 글로벌 PEF 운용사 등 사실 정해져 있다”며 “이런 매물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사려는 사람들이 관심을 꾸준히 보이는 매물과 그렇지 않은 매물로 나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몇 조원짜리 M&A를 성사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려는 쪽에서는 ‘함부로 인수하면 큰 코 다친’다거나 ‘잘못 인수했다가 자칫하면 다 죽는다’는 우려가 늘 따라다닌다. 인수 이후 추가로 투자해야 하는 인프라 투자 비용 산정까지 고려하면 들일 금액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천문학적인 인수 자금에 중장기 투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해도 섹터(분야)에 대한 퍼즐도 맞아야 한다. 결국 해당 기업이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 필요로하는 매물이냐가 중요하다. 제아무리 돈이 많은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아무 매물이나 사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리스크 줄이기 전략…옥석가리기도 본격화

팔려는 쪽도 부담이 적지 않다. 제한된 원매자들을 상대로 최대한 원하는 가격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공들여 성장시킨 회사를 제값을 못 받고 판다면 두고두고 아쉬울 수밖에 없다. 특히 PEF 운용사들이 팔려고 내놓은 매물의 경우에는 제때 팔지 못하면 업계 평판은 물론 차기 펀드 조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이나 조 단위 블라인드펀드(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고 목표 수익률만 제시한 뒤 투자금을 모으는 펀드)를 굴리는 PEF 운용사들도 단독 인수로 들어가기에는 만만찮은 금액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너무 큰 몸값의 매물은 시장에서 사거나 팔 때 고생한다는 말이 있다”며 “매각에 대한 다양한 전략을 펼치지만 사실 (대형 매물은) 구사할 수 있는 인수·매각 전략이 제한적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PEF 운용사들은 경영권 인수보다 인수 과정에서의 자금지원 측면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사모펀드법 개정으로 투자 장벽이 허물어진 상태다 보니 인수 과정에서의 자금 융통이나 에쿼티(지분) 투자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외 PEF 운용사마다 사모 대출이나 스페셜시츄에이션 펀드 설립에 주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전략적 투자자(SI)가 ‘경영권 인수’라는 운전대를 잡고 PEF 운용사들이 자금을 대는 인수전략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인수 의지만 확실하다면 상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옥석 가리기’ 국면은 현 시점을 시작으로 가속화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조 단위 매물을 인수할 수 있는 원매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여러 매물이 동시에 매각에 시동을 건 상황 자체가 흥행이 갈릴 수 밖에 없다”며 “대형 매물 중에서도 매력이 확실한 매물에 관심이 쏠리는 반면 그렇지 못한 매물은 예상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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