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각]①승부를 뒤집는 협상의 기술 ‘배트나’

윤정훈 기자I 2021.03.24 00:05:00

지상강의 : ‘승자의 협상법’ 4강 ‘배트나를 확보하라’
배트나 없이 협상 임하면 을(乙)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어
日 수출 규제에 당한 韓 반도체 기업도 대안이 없었기 때문
까르푸는 과거 배트나 확보 위해 매각 앞두고 확장 정책 펴기도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승자의 협상법


협상력은 비즈니스의 성공과 직결된다. 우리는 매일같이 협상을 하고 상대를 설득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협상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은 없다. 그동안 본능과 경험에 의존해온 협상을 체계적인 원칙과 실전 사례로 접근해 나도 상대방도 승자가 될 수 있는 승자의 협상법을 전략적 협상가의 견지에서 분석한다.

☆류재언 법무법인 율본 변호

한국과 홍콩의 글로벌 기업과 로펌에서 풍부한 협상경험을 쌓고 하버드로스쿨 협상 프로그램을 이수한 협상전문가다. 현재 법무법인 율본 기업전담팀을 이끌고 있으며, 비즈니스 협상전략그룹의 수석전문가로 기업과 정부에 협상 컨설팅 및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저서로는 ‘류재언 변호사의 협상 바이블’이 있다.

류재언 법무법인 율본 변호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 승자의 협상법’ 4강 ‘배트나를 확보하라’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윤정훈 기자] 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소재 3종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한다. 한국 정부와 강제징용 배상 등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던 일본이 협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일종의 경제 제재를 가한 것이다. 대안이 없었던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의 반도체 기업과 정부는 갑작스런 규제 통보에 패닉에 빠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해결책 마련을 위해 곧장 일본으로 건너갈 정도였다.

당시 한국 정부와 기업이 일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이유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협상학 관점에서 일본은 협상결렬의 대안인 ‘배트나’(BATNA·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를 잘 활용했고, 반면 한국 정부와 기업은 배트나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협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배트나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협상전문가인 류재언 법무법인 율본 변호사는 ‘위대한 생각 : 승자의 협상법’ 네 번째 주제로 ‘배트나를 확보하라’를 선정했다.

류 변호사는 “일본의 수출 규제 사례에서 보듯이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갑(甲)의 위치에서도 을(乙)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며 “반드시 대안을 확보한 상태에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트나 확보가 곧 협상의 우위를 결정한다

2019년 당시 일본은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출을 규제했다. 이 세 가지는 반도체의 세정 등에 필수적으로 쓰이는데, 글로벌 시장의 90%를 일본이 점유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 외에 딱히 소재를 구할 곳이 없었다. 배트나가 없던 상황으로, 이를 노린 일본 정부에 외통수를 맞게 된다.

류 변호사는 “반도체 구매팀은 일반적으로 ‘슈퍼 갑’이지만, 대안이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는 갑과 을이 바뀔 수도 있다”며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일본 의존을 탈피하기 위해 이날부터 배트나 개발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소재부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시급한 20개 핵심품목을 1년 안에 생산하겠다는 목표였다. 이를 위해 기업과 협업해 1년 만에 액체불화수소를 개발했고, 이는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의 배트나가 될 수 있었다.

(사진=강사 제공)
한국시장 철수하는 까르푸가 매장을 늘린 이유

프랑스 유통기업 까르푸의 한국시장 철수 전략에도 배트나가 잘 드러난다. 까르푸 글로벌은 내부적으로 2005년께 한국시장 철수를 결정했고, 이내 이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철수를 위해 까르푸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신규 매장 열어 몸집을 키우는 것이었다. 당시 27개 점포를 운영하던 까르푸는 1년 안에 매장 5개를 신규 오픈했고, 이어 2008년까지 총 15개 매장을 더 열겠다고 공언했다.

까르푸가 이처럼 매장을 확장한 건 배트나를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까르푸 글로벌은 당시 한국시장 2위이던 롯데마트에 매각을 타진하기 위해 매장을 늘렸다. 롯데마트 입장에서 까르푸한국을 인수하면 1위 이마트를 넘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몸집을 키운 것이다. 당연히 매장이 늘면서 1위인 이마트와 3위인 홈에버에도 까르푸는 매력적인 인수 대상이 됐다.

처음에는 롯데마트가 공격적으로 까르푸 인수에 뛰어들었다. 협상이 잘 진행되는 듯 보였지만, 실사 과정에서 롯데는 변심을 하게 된다. 까르푸는 롯데와 협상 중에 배트나로 삼기 위해 이마트와도 협상을 진행했다. 이에 롯데와 협상이 결렬된 이후 까르푸는 자연스럽게 이마트와 매각 협상을 시작했다.

물론 이마트도 협상에 맨손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마트는 월마트 인수를 배트나로 두고, 까르푸와 협상을 진행했다. 이에 협상에서 새로운 배트나가 필요했던 까르푸는 홈에버와도 매각 협상을 진행한다.

결국 이마트는 까르푸와 월마트를 저울질해서 월마트를 인수한다. 까르푸는 롯데·이마트에 퇴짜를 맞고 홈에버에 인수된다. 까르푸 사례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배트나 확보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류 변호사는 “실무에서는 양측 모두 배트나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경우 낮은 비용을 투입해서 빠르게 배트나를 확보하는 쪽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센트랄)
배트나 확보로 성장동력 마련한 중소기업

경남 창원에 본사를 둔 센트랄은 완성차 회사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평범한 중소기업이다. 센트랄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기에는 큰 고민이 없었다. 하지만 완성차 시장의 성장이 둔화하면서 이 회사의 미래도 점점 어두워졌다. 수십 년간 국내 완성차 고객사 외에 비즈니스 플랜이 없었기 때문이다. 플랜B가 없었던 센트랄은 점차 경쟁력을 잃어갔다. 국내 고객사의 압박에 제품 단가는 낮아졌고, 이익은 줄어들었다. 협상력이 없던 센트랄 입장에서는 갑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일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센트랄은 국내 완성차 업체와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배트나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이후 회사는 연구개발(R&D) 역량을 키워 해외 시장을 공략하자는 결론에 이른다.

센트랄은 이를 실행에 옮겼다. 아시아 애프터 마켓(판매된 제품을 점검하고 수리하거나 부품을 교환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장) 서비스를 개척하면서 베트남 다낭에 공장을 만든다. 독일 기업과 R&D 합작 법인도 세운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테슬라에도 부품을 공급하게 됐다.

‘해외 고객’이라는 배트나를 확보한 센트랄은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류 변호사는 “센트랄의 사례는 기업이 비즈니스를 할 때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배트나를 확보하고 있는지, 플랜B가 있는지가 왜 중요한지 보여준다”면서 “이 기업만의 경쟁력이 대체하기 힘들수록 강력한 협상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협상을 잘하는 슬기로운 ‘을’이 되려면

많은 사람은 ‘갑’의 위치보다는 ‘을’의 위치에서 협상을 진행한다. 즉, 불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이끌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류 변호사는 을이 협상을 잘하기 위해서 △멘탈 관리 △갑을 관계의 근원 △대체 불가능한 을의 조건 등의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변호사는 “을은 협상에서도 열위에 있는데 멘탈까지 무너지면 협상을 시작할 수 없다”며 “협상을 할 때 갑의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면서 흔들리면 절대적으로 불리해진다”고 조언했다.

협상에서 갑과 을을 나누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을은 협상의 구도를 뒤집거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류 변호사는 “대부분 갑을 관계는 고착화돼 뒤집기가 쉽지 않다”며 “을 중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을이 될 수 있는 길을 고민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을이 갑이 되기는 어려운 만큼 대체 불가능한 을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 변호사는 “일대일 관계가 힘들다면 을이 뭉쳐서 힘의 균형을 맞출 수도 있다”며 “을끼리 연대하는 등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류재언 법무법인 율본 변호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 승자의 협상법’ 4강 ‘배트나를 확보하라’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위대한 생각’은…

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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