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인 종수(유아인 분)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를 만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해미는 종수에게 자신의 고양이를 맡기고 훌쩍 여행을 다녀온다. 돌아온 해미는 종수에게 아프리카에 만났다는 벤(스티븐 연)을 소개한다. 어느 날 종수의 집을 찾은 해미와 벤. 벤은 종수에게 은밀한 취미를 고백하고 그때부터 종수의 일상은 흔들린다.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다. 이창동 감독과 함께 각본을 집필한 오정미 작가의 지적대로 원작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nothing happens) 이야기다.
|
각 캐릭터에서 이 감독의 통찰력을 읽을 수 있다. 종수와 벤의 대비는 흥미롭다. 낡은 용달차와 값비싼 외제차가 대표적이다. 종수는 벤을 가리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돈은 많은 개츠비”라고 표현한다. 가난 등에서 시작돼 종수가 느끼는 무력감은 서서히 벤에 대한 분노로 발화한다. “죽는 건 무섭고 아예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싶은” 해미도 인상적인 캐릭터다. 카드 값에 쫓기며 비좁은 방에 살지만, 성형수술을 하고 아프리카 여행을 간다. 순수함과 뻔뻔함의 경계에 서 있다.
|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영화 ‘베테랑’(2015)의 조태오처럼 강렬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유아인은 180도 다른 인물로 분했다. 구부정한 등과 자신감 없는 말투 등 새로운 유아인을 만날 수 있다. 스티븐 연은 미묘한 얼굴로 정체불명의 남자 벤을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다만 한국어 대사는 발음 탓에 아쉬움이 남는다. 신인 전종서는 개성 있는 마스크로 오랜 잔상을 남긴다. 극중 유아인의 아버지로 등장한 최승호 MBC 사장은 신 스틸러다.
‘버닝’은 제 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 영화다. 유난히 칸 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이 감독이다. 이번에도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1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14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