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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해된 전직 경찰…범인은 '옛동료' 현직 경찰이었다[그해 오늘]

한광범 기자I 2023.02.23 00:02:00

2014년 경북 칠곡서 발생한 전직 경찰관 청부 피살 사건
피해자 사망보험금 타내려 수개월 전부터 완전 범죄 계획
공범 자백에도 끝까지 혐의 부인…法 "엄히 다스려야" 질타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4년 2월 23일. 1주일 전 발생한 경북 칠곡 PC방 업주 살인 사건의 또 다른 피의자가 구속됐다. 3일 전 붙잡힌 범인 배모(당시 32세)씨가 “사주를 받아서 범행을 했다”고 털어놓으며 지목한 인물이었다.

배씨가 자신에게 살인을 사주했다고 지목한 인물은 놀랍게도 현직 경찰관이었던 장모(당시 39세) 경사다. 더욱이 피해자는 전직 경찰로서 과거 장씨와 함께 근무했던 상관이었다. 경찰은 배씨의 자백이 나온 직후인 같은 달 22일 장씨를 긴급체포한 상태였다. 장씨는 “배씨와 살인을 모의하거나 배씨에게 살해를 지시한 적이 없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버텼다.

현직 경찰관은 어쩌다 엽기 살인 청부 범행을 일으키게 됐나.

장씨와 피해자 A씨(당시 47세)는 2008년 경북 칠곡의 한 파출소에서 함께 근무했다. 2010년 경찰관을 그만둔 A씨는 재직 당시부터 수차례에 걸쳐 장씨에게 돈을 빌렸고, 빌린 돈은 어느덧 2억원에 달했다.

PC방 등 개인사업을 하던 A씨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원금은 전혀 갚지 못하고, 이자만 겨우 장씨에게 지급하고 있었다. 계속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A씨는 2013년 5월 장씨에게 추가로 3000만원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장씨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 A씨에게 사망 시 2억원이 지급되는 사망보험에 가입하게 한 후, 수익자를 자신으로 지정하도록 했다. 그리고 같은해 9월에도 추가로 850만원을 빌려주는 대신 1억원이 지급되는 사망보험에 가입하게 했다. 보험표는 장씨가 직접 납입했다.

수억 채무 미끼로 사망보험 가입 요구

장씨의 범행 모의는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피해자를 죽인 후 사망보험금을 타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장씨가 끌어들인 배씨는 사기사건을 수사하며 참고인으로 알게 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2012년 12월께부터 친해지게 돼 서로 금전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가까워졌다.

배씨 역시 장씨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그는 2013년 4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4000만원을 빌렸고, 그중 2900만원의 채무가 남은 상태였다. 장씨는 범행대가로 남은 채무를 탕감해 주고, 사망보험금 중 일부를 배씨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장씨는 2013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범행을 계획했다. 같은 해 9월엔 구체적 살해방법까지 논의했다. 현직 경찰으로서 수사를 통해 쌓은 경험을 범행에 이용하려 했다. 구체적으로는 장씨가 수면제와 산소통을 준비한 다음 A씨에게 수면제를 먹게 해 깊은 잠이 들게 한 후, 배씨가 A씨에게 고농도 산소를 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살인을 하기로 했다.

첫 범행 시도는 2013년 12월 하순이었다. 장씨는 약을 탄 칡즙을 A씨에게 건네 마시게 했으나, 약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해 첫 범행은 실패했다. 그리고 얼마 후인 2014년 1월초엔 수면제와 고압산소통을 직접 구입하고, 범행에 사용할 산소마스크도 페트병을 이용해 직접 만든 후, 이를 배씨에게 건넸다.

두 번째 범행 시도는 2014년 1월 10일이었다. 장씨는 A씨가 운영하는 PC방에서 A씨에게 수면제를 섞은 음료수를 건네 마시게 했다. 그는 곧바로 B씨에게 전화해 “수면제를 먹였으니 와서 일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했으나, 살인 범행에 대해 고심하던 배씨가 PC방에 나타나지 않아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피해자 A씨는 장씨가 건네준 음료수를 먹고 깊은 잠이 든 것을 이상하게 느끼며 장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장씨를 의심하며 따졌고 장씨가 이를 부인하며 두 사람은 크게 다퉜다. A씨가 더 이상 장씨가 건넨 음료수를 마시지 않음에 따라 애초에 계획한 대로 범행을 달성하긴 어려워졌다. 이에 장씨는 배씨가 직접 A씨에게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먹게 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또 배씨에게 “만약을 위해 줄이나 흉기를 준비해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라”며 구체적인 범행 방법까지 가르쳐줬다.

공범 도피도 주도…구속된 이후에도 증거인멸 시도

배씨는 장씨의 이 같은 지시에 따라 2월 16일, A씨에게 “PC방을 인수하고 싶다”며 접근했다. 그는 A씨와 함께 저녁을 먹던 중 인근 편의점에서 500㎖ 페트병 콜라를 사와 여기에 수면제를 탔다. 하지만 수면제가 녹지 않으며 투명 페트병에는 둥둥 떠있는 가루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배씨는 다시 편의점에서 콜라캔을 구입해 여기에 수면제가 든 콜라를 옮겨 담았다. A씨는 배씨가 건넨 콜라캔을 마셨다.

배씨는 이후 PC방에서 나와 인근에서 배회하며 피해자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는 아무도 없는 PC방에서 피해자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창문을 통해 PC방에 침입했다. 배씨가 A씨에게 고압산소를 주입하려는 순간, A씨가 잠에서 깼고 거세게 저항했다. 그러자 배씨는 들고 온 흉기를 이용해 A씨를 공격해 숨지게 했다.

장씨는 범행 이후 배씨의 도주를 도왔다. 그는 내연관계였던 여성 B씨에게 “A씨를 죽인 후배 배씨가 CCTV에 찍혔다. 채무관계와 통화내역이 있어 나도 수사대상에 올랐다”며 자신을 대신해 배씨와 연락을 주고받게 했다. 또 B씨 차량을 이용해 2월 20일 배씨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장씨는 이 과정에서 대포폰을 이용하기도 했다. 구속 이후에도 경찰서 유치장으로 자신을 면회온 B씨에게 “차량 블랙박스를 폐기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배씨는 경찰에 체포된 직후엔 ‘우발적으로 일어난 단독 범행’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장씨와의 채무관계, 주고받은 통화 내역 등을 근거로 경찰이 지속적으로 추궁하자 결국 장씨의 사주 사실을 털어놨다. 하지만 장씨는 배씨의 자백에도 혐의를 강력 부인했다. 검찰은 살인 등의 혐의로 장씨와 배씨를 재판에 넘겼다. 장씨는 법정에서도 “배씨에게 살해를 지시하지 않았다. A씨에게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먹인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장씨 주장을 모두 일축하고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장씨에게 징역 30년, 배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1심은 “범행을 자백한 배씨의 진술은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일관됐다. 엄중한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계획 범행을 털어놓은 상황에서 장씨를 무고할 동기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은 장씨에 대해 “현직 경찰관이 살인이라는 중한 범죄를 도모하고 결국 피해자를 살해해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기는커녕 구속 이후에도 증거인멸을 계속 시도하는 등 지능적으로 범행 은폐를 시도했다. 중형으로써 엄하게 처벌함이 마땅하다”고 질타했다. 장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으나 2015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30년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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