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어둠,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수연의 아트버스]<11>

오현주 기자I 2022.07.01 00:01:01

▲제임스 앙소르 &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가면'
앙소르 '음모' 키르히너 '베를린 거리 풍경'
밝고 화려한 색채속 불안·위선·소외·외로움
'벨 에포크' 명암 드러낸 비관적인 그림들
행복한 그림은 줄 수 없는 공감·위안 안겨

제임스 앙소르의 ‘음모’(1890). 해학적 가면을 쓰고 익명성에 기대 위선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시대를 풍자한 작품이다. 근대회화에 표현주의란 용어가 생기기도 전 표현주의적인 그림을 그린 선구자로 꼽히는 앙소르는 ‘인간의 숙명’이라 불리는 세상을 냉소와 허무의 눈과 붓으로 풀어놨다. 캔버스에 유채, 90×150㎝ 벨기에 안트베르펜 왕립미술관 소장.


까마득히 오래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린 동굴벽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의 기원’이란 것을 말입니다. 문자를 대신한 소통이 예술의 목적, 그 전부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예술은, 또 미술은 다른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를 달고, 휴머니즘을 달고, 상상력을 달았습니다. 20세기쯤 오자 미래를 내다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딛고 서서 인간의 꿈이 도달할 그 너머를 꿈꿨던 겁니다. 이제 현대미술은 영역의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 NFT에다가 메타버스에까지 닿아 있지 않습니까. 오랜시간 현대미술의 진격을 지켜봐온 이수연 학예연구사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했던, 예술의 창조적인 경계의 확장을 가져온 미술거장의 삶과 작품 읽기를 통해 예술로 꾸는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그 드넓은 ‘아트버스’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흔히 우리말로 ‘음모’(1890)라고 번역하는, 벨기에 화가 제임스 앙소르(1860∼1949)가 그린 작품의 원제는 ‘랭트리그’(L’Intrigue), 영어로는 ‘인트리그’(The Intrigue)다. 원어의 의미나 그림에 얽힌 뒷이야기에 비춰봤을 때 그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한국어 작품명 ‘음모’로는 조금 아쉽다. 차라리 ‘호기심’ 혹은 ‘뒷담화’쯤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그만큼 작품은 그로테스크하고 암울한 분위기가 일품인 19세기 말 플랑드르 지역의 걸작이다.

도대체 무슨 호기심과 뒷담화길래 이토록 냉소적인 제목과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작품에는 얼굴에 가면을 쓴 11명이 등장한다. 중앙에 꽃 꽂은 모자를 쓴 여자와 이 여자가 팔짱을 낀 정장모자의 남자를 제외한 나머지 9명의 눈은 온통 이들 커플에 꽂혀 있다. 심지어 붉은 옷을 입은 유모 품에 안긴 아기조차 턱을 들고 이들 커플을 올려다볼 정도다.

어찌 보면 짙은 화장을 한 듯한, 가면에 칠한 요란한 색과 마스카라 선이 이들의 표정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정장모자 남자의 뒤쪽으로 선 두 사람, 그러니까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 같은 인물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옆의 볼 빨간 인물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정장모자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중이다. 꽃 모자 여자의 뒤로는 특이한 입모양을 가진 두 명의 여인이 서 있는데, 그 입에는 뭔가 말하고 싶은 마음이 노골적으로 담겨 있다. 맨 앞의 아기 안은 유모는 아예 대놓고 손가락질 중이다.

가면, 얼굴 가린 보호구이자 욕망의 포장

사실 이들 모두는 막 결혼한 앙소르의 여동생과 그녀의 중국인 아트딜러 남편의 가십을 이야기하지 못해서 안달복달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온 중국인과의 약혼은 오랫동안 벨기에 오스탕드지역에 살던 앙소르 가족의 고향에서 큰 스캔들이 됐고, 가족들은 호기심과 비웃음에 가득 찬 마을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됐다. 앙소르의 가족은 축제용품을 파는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축제에 쓰이는 물품 중 특히 가면은 인파 속에서 얼굴을 가리는 역할이자 동시에 자신의 특징을 드러내는 용도로 쓰였으며, 앙소르는 그림에 바로 그 가면을 차용했던 것이다. 화장과 가면은 익명의 군중에 숨어서 떠들어대고 싶은 마을 사람들의 보호구면서 그 욕망을 극대화해 과장되게 표현한 포장인 셈이다. 앙소르는 사람들의 못된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어두운 주제를 따뜻하고 밝은 색감으로 그려내 괴이함을 더했다.


이처럼 밝은 색감은 19세기 말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 아방가르드였던 프랑스 인상주의 화파를 떠올리게 한다. 앙소르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새로운 미술의 흐름을 선구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20인회’(Les XX)를 결성, 당시 인상주의 화가이던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오딜롱 르동,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등의 전시를 브뤼셀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적인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색채 실험과 활기찬 도시의 일상을 주로 그렸던 인상주의와는 달리 앙소르의 작품에서 색채는 불안하고 공포에 찬 감정을 상징한다. 밝고 선명한 색채 뒤에 가려진 인간의 두려움과 위선, 폭력적인 본성을 예견하는 앙소르의 그림은 과학과 산업이 발전하고, 소란스러운 도시가 생겨나던 ‘벨 에포크 시대’(19세기 말부터 1차대전 발발 전까지 ‘아름다운 시절’을 일컫는 말)의 명암을 보여준다.

가면 쓴 인간의 위선을 화려한 색채로 풍자한 또 다른 화가도 있다. 비슷한 시기 독일에서 활동하던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1880∼1938)다. 키르히너는 좀더 대담한 붓질과 표현주의 기법으로 20세기 초 변화의 중심에 선 베를린의 불안을 표현했다. 키르히너의 ‘베를린 거리 풍경’(1913)에는 멀리 흘러다니는 군중을 뒷배경으로 삼은 여러 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보라색 옷과 푸른 옷을 입고 깃털 달린 모자를 쓴 두 명의 여자는 몸을 팔러 나온 거리의 여인이며, 등을 돌리며 선 잘 차려입은 남자들은 작가 자신을 포함한 친구들, 또 베를린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성들로 보인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베를린 거리 풍경’(1913). 1913년부터 1915년까지 베를린 거리를 소재로 제작한 12점 중 한 점이다. 광포한 도시, 그 속에서 비틀어지고 우울하기만 한 도시인의 내면을 대담하고 빠른 붓질,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선, 격렬하고 침울한 색채에 담아냈다. 지방 시골마을에서 대도시 베를린으로 이주한 뒤 키르히너에게 떨어진 문화적·정서적 충격이 짙게 배어 있다. 캔버스에 유채, 120.6×91.1㎝,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이들은 마치 전체 사진의 일부를 잘라낸 듯한 구도로 공간감 없이 거리에서 마주친 순간으로 묘사됐는데, 화려한 옷차림과 달리 표정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그림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에 따르면, 두 명의 여인 곁에서 흘깃거리는 남자들의 모습이 성적인 욕망을 표현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비웃음과 조소, 자기경멸과 같은 표정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이들의 욕망을 추정할 수 있는 장치는 인물들을 둘러싼 정염의 불꽃과도 같은 핑크색 배경뿐이다. 그나마도 어둠이 삼켜 곧 사라질 테지만.

‘아름다운 시절’이라지만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아

기쁨이나 슬픔 등의 어떤 감정도, 심지어 성적인 긴장감도 느낄 수 없는 그림 속 인물들의 관계는 스쳐 지나가지만 결코 진심으로 만나지 않는 도시인들의 특징을 그대로 닮았다. 실제로 키르히너는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거리풍경은 1911∼1914년 고민했던 주제이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때였다. 베를린으로 이주한 뒤 낮에는 사람과 마차가 가득찬 길을 정처 없이 걸었고, 밤이면 잠 못 든 채 긴 거리를 홀로 배회했다.”

앙소르와 마찬가지로 키르히너도 ‘다리파’란 그룹을 결성해 독일 미술의 전위적인 움직임에 적극 참여했던 인물이다. 다리파는 원초적인 원색과 자연스럽지 않은 형체, 추상에 대한 반감 등을 특징으로, 자유로운 색채표현을 중시했던 프랑스의 야수주의와 닿아 있었다. 키르히너 또한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 당대의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회화스타일을 추구했는데, 그 덕에 그의 스튜디오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삶을 추구하는 젊은 예술가가 모여드는 둥지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분출하는 욕망과 환상을 드러낼 수 있는 기법을 찾아헤맸고, 바로 거기서 독일 표현주의의 전통이 탄생했다. 그 중심에 섰던 키르히너는 생동하는 색채와 형체가 부서지는 ‘베를린 거리 풍경’을 그려냈지만, 막상 그가 표현한 감성은 앙소르 못지않게 어둡고 외로웠던 것이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베를린 거리 풍경’(1913)과 제임스 앙소르의 ‘음모’(1890)의 부분. 대상을 표현한 기법은 다르지만 가면 쓴 인간의 위선이 풍겨내는 냉소·허무·불안 등을 오히려 밝은 색채로 끌어낸 역설적인 방식은 다르지 않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1차대전 이전까지의 빛나는 유럽을 살면서 앙소르와 키르히너는 어째서 그토록 비관주의적인 감정에 빠져 있었을까. 1890년대에 앙소르는 깊은 좌절과 싸우며 스튜디오를 팔기까지 했고, 키르히너는 1차대전에 참전했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화가의 그림은 100년을 견디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들이 그림에서 말한 위선과 자기경멸, 소외와 외로움이 삶의 본질이자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일까. 인간이 비관과 우울의 결말을 향해 가는 길목에는 빠져나갈 다른 샛길은 없는 것일까.

과연 누가 그 답을 자신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토록 쓸쓸한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행복한 그림은 줄 수 없는 또 다른 공감과 위안이 다가서기도 한다는 것, 그 공감과 위안이 냉소적인 오스탕드 사람들이나 냉랭한 베를린 거리의 사람들과 달리 우리 인생의 길목에서 발맞춰주는 동지가 되기도 한다는 것, 그 사실은 분명하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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