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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한빛 PD, 슬픔·고통 일상인 사회의 일반적 청년 모습이죠"

김은비 기자I 2021.11.21 05: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형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청년과 다름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만큼 슬픔과 고통이 일상인 사회인거죠.”

2016년 방송계의 부조리한 관행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한빛 tvN PD의 동생 이한솔 작가는 형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PD가 세상을 떠나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의 죽음 이후 세상은 조금이나마 변했다. 이 PD가 죽고 그가 일했던 회사는 방송업계의 오랜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를 했다. 고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출범해 방송업계의 불합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또 이전까진 목소를 낼 수조차 없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도 조금씩 전해지기 시작했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한솔 작가
반면 여전히 이 PD가 남긴 질문들이 우리 사회와 맞닿아 있는 부분들도 많다. 수많은 청년들이 아직 일자리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고, 과도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 고통받고 있으며 그럼에도 자신이 살 집조차 구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이 PD의 유족으로서, 노동·주거·청년 분야 활동가로서 이 작가는 청년문제가 더 논의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최근 ‘허락되지 않은 내일’(돌베개)을 출간했다. 형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부터 시작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담은 책이다. 최근 이데일리와 만난 이 작가는 “형의 죽음을 너무 무겁게 혹은 과도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며 “형이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 무엇을 사랑했는지, 왜 쉬고 싶었는지 등 마음을 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책을 집필하며 이 작가는 형의 지인들로부터 성별, 학력, 직업, 지역이 다양한 청년 35명을 만났다. 이들을 만나면 느낀 건 이 PD가 했던 고민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청년과 다름 없었다는 것이다. 이한빛 PD는 어렵게 방송사에 들어갔지만 하루 20시간, 일주일에 120시간 넘게 근무를 해야 했다. 당시 군인이었던 이 작가는 형과 통화는커녕 휴가 때 얼굴을 본 적도 거의 없었다. 형이 매일 새벽에 들어왔다가 새벽에 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누가 봐도 비상식적이고 내일을 그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보통의 청년이라면 죽음까지 선택하진 않더라도 똑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청년 문제가 아직도 제대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가 일상 용어처럼 쓰일 정도로 사회적으로 청년세대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들의 고민보다는 자극적인 생활 모습에만 이야기가 편중돼 있다. 심지어 이마저도 청년세대 안에서 소수 기득권층의 이야기가 더 많다. 주식과 코인 투자에 열광하고, 수억원씩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해 집을 사는 모습 등이 그렇다. 이 작가는 “좀 더 나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과다하게 대변되면서 자극적으로 소비하기 쉬운 것들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작가는 더 다양한 청년세대의 목소리가 사회 안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청년이라 불리는 집단에도 M세대와 Z세대는 10년 남짓의 시간 차이가 있다. 노동, 자산, 젠더 등 다양한 이해관계도 섞여 있다. 이들을 청년이라는 단어만으로 정의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는 “기성세대 공무원들이 멀찍이서 바라본 청년들의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청년 정책은 현실과 괴리될 수밖에 없다”며 “다양한 이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어떤 건지 얘기할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서 이 사회가 바뀌진 않을 거라고 좌절하고 있는 청년들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세상이 갑자기 바뀔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서로의 고민을 공유해 혼자만 버티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고, 어딘가는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변화를 위해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며 힘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한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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