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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잘 키운 자식 누구 손에”…주인 못찾은 딜, 올해는

김연지 기자I 2024.01.09 05:30:10

지난해부터 밸류 눈높이로 M&A 불발 속속
매각측 "경기침체로 밸류 산정 기준 낮아"
원매자들 "시간은 우리편…리스크는 배제"
경기침제 장기화로 당분간 상황 지속 전망

[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아직 더 내려와야 해요” VS “지금이 마지노선입니다”

다양한 산업군의 인수·합병(M&A) 매물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매물의 기업가치(밸류)를 두고 자본시장 관계자들 간 눈치싸움이 한창이다. 원매자들은 그들이 정한 ‘적정 밸류(value)’에 맞춰 기업을 인수하려는 모양새이지만, 매각 측은 매각가에 ‘매물을 일궈내기까지의 노고’와 ‘비전’을 얹어 제시하고 있다. 쉽게 말해 ‘잘 키운 자식’을 두고 ‘더 잘 키울 자’와 ‘손끝에서 떠나보내면 끝인 자’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셈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현 상황에서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이러한 줄다리기가 M&A 거래 불발로 이어지고 있어 업계 우려도 만만치 않다.

(사진=픽사베이 갈무리)
기업 매물을 사려는 자와 팔려는 자의 밸류에 대한 시각 차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유동성이 풍부했던 시절에도 매도자와 매수자는 가격 조율 과정을 거쳐 딜을 성사시켰다.

현 상황은 조금 다르다. 가파르게 뛴 기준금리와 원자재 가격상승을 필두로 한 인플레이션, 전쟁을 비롯한 대내외적 불확실성 등 복합적인 요소가 한꺼번에 몰아치면서 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에 사모펀드(PEF)운용사를 비롯한 원매자들은 지금의 분위기를 이겨내고 매물의 가치를 더 올릴 힘이 있는지를 살피며 주판알을 튕기는 한편, 매각 측은 ‘비전’과 ‘성장 가능성’을 앞세워 매각가에 최소 수십 퍼센트의 프리미엄을 얹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대변하듯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밸류에 대한 이견으로 성사되지 못한 딜은 수두룩하다. 우선 가장 최근의 예제로는 글로벌 2위 산화방지제 제조기업인 송원산업의 매각 철회가 꼽힌다. 회사는 지난해 6월 골드만삭스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대주주 일가 보유 지분 35.65%에 대한 경영권 매각을 추진했다. 비전과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 원매자들은 예비 입찰에 우르르 참여했지만, 매각 측과 매각가 및 조건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실제 송원산업 측이 제시한 희망 매각가는 약 약 3000옥~4000억원 수준이었고, 원매자들은 2000억원대 중후반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송원산업의 시가총액이 4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매각 측이 시가 대비 100% 이상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요구한 셈이다.

시장에서 주목받는 업종 및 기업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 수개월째 경영권 매각을 추진한 대구백화점은 원매자 측과의 몸값에 대한 견해 차이로 딜을 좀처럼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IB 업계에선 백화점 사업보다는 백화점 부지의 매력도가 훨씬 큰 만큼, 유력 원매자들의 실사 직후 인수 주체가 가려질 것으로 전망했으나 경영권 프리미엄 문제를 두고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식음료(F&B)와 같은 특정 업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외식사업 확대를 노려온 동원그룹은 지난해 4월 한국맥도날드를 인수하려다가 이를 철회했다. 매각가와 회사 운영 방침을 두고 장기간 협상을 벌여왔지만, 양측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지난 2022년 M&A 닻을 올린 버거킹과 맘스터치 등 주요 경쟁사 역시 밸류에 대한 이견 등으로 새 주인을 맞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선 경기 침체 여파가 여전한 만큼,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경기 불확실성이 클수록 밸류 온도차 역시 크기 마련”이라며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황이 어려울수록 원매자들은 매물로 나온 기업이 시장 침체를 딛고 일어나 (매각 측이) 제시한 밸류 이상의 기업가치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며 “때문에 매도자 입장에선 설령 머리에서 팔 수 있더라도 시장을 고려해 어깨 수준으로 파는 것이 상황상 윈-윈(win-win)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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