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은 합헌' 첫결정..헌재는 변했을까[그해 오늘]

전재욱 기자I 2022.11.28 00:03:00

초교女 성폭행·살인·사체유기 사형수, 1995년 헌법소원 청구
헌재, 1996년 "사형 합헌" 결정..기관 설립 이후 첫 판단
훗날 무기수로 감형됐고, 헌재는 2010년 재차 "사형은 합헌"
사상 세 번째 '사형 위헌' 가리는 헌재..이번 판단은 어떻게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3년 5월. 다섯 살 난 유치원 여아의 혀가 잘린 사건이 발생했다. 20대 남성이 여아를 성폭행하려다가 여의찮자 저지른 범행이었다. 수사해보니 범인은 구치소에 있었다. 열살 초등생 여아를 성폭행하려다가 실패하자 살해한 뒤 주검을 불에 태우고 자수한 정모씨였다. 그의 나이 21살이었다.

자수한 정씨는 재판을 받으면서 태도를 바꿨다. 자신이 자수한 이유는 구속된 형을 석방하고 자신에게 5년 미만 징역형을 선고받도록 해준다는 경찰의 회유 탓이라고 했다. 수사기관에서 한 자백도 이걸 믿고 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1심은 그의 태도 변화를 믿지 않고 그해 10월 사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어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반성하지 않으며 ▲강간치상 등 전과가 있고 ▲피해자와 가족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김 점을 두루 고려해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2심도 마찬가지로 사형을 선고했다.

헌재 휘장.(사진=헌재)
궁지에 몰린 정씨는 1995년 1월 헌법재판소로 갔다.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근거인 형법 41조와 250조에 헌법 소원을 냈다. 형법 41조는 형의 종류 가운데 하나로 사형을 인정하고, 250조는 살인죄는 사형에 처한다고 정한다. 사형제는 형법상 근거가 없으니 자신에게 선고된 사형 선고도 무효라는 게 정씨 주장이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11월28일 형법 41조와 250조에 각각 합헌을 결정했다. 정씨가 청구한 헌법소원에 대한 판단이었다.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합헌이라고, 나머지 2명은 위헌이라고 각각 의견을 냈다.

헌재는 “생명권은 헌법의 기본권이지만 모든 규범을 초월해 영구히 타당한 권리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다른 생명 또는 이에 못지않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불가피하게 적용하는 사형제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형이 다른 형벌보다 위압감이 커서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고 봤다.

다만 “위헌과 합헌 논의를 떠나 사형 존치 여부는 진지하게 계속 논의해야 한다”며 “시대 상황이 바뀌어 사형으로 범죄 예방 필요성이 없게 되거나, 국민 법감정이 그렇게 인식을 하면 사형은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헌재가 사형제에 대한 판단을 내놓은 것은 1988년 기관이 설립하고 처음이었다. 그간 여러 사형수가 헌법소원을 냈지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모두 각하했다. 이런 이유에서 헌재는 정씨의 헌법소원에 대한 답을 내놓고자 머리를 싸매고 고심했다. 기본권 수호의 최후 보루 기관으로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헌재의 노력이 무색할 만큼 정씨 형사 사건은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대법원은 1994년 12월 정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정씨의 진술은 인정했지만, 증거와 증언이 객관적인 사실과 어긋나는 게 흠이었다. 이로써 정씨는 일부 혐의가 무죄가 날 여지가 있고, 그러면 형량이 줄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씨는 헌법소원을 냈던 것이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2부는 1995년 5월 혀 절단은 무죄로, 초등생 살인 및 사체유기죄는 유죄로 각각 인정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정씨의 파기환송심 재판장은 당시 이강국 서울고법부장이다. 이 고법부장은 훗날(2007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됐다. 헌재는 2010년 2월 사형제 위헌 여부에 대한 역대 두 번째 판단을 내놓았다.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다시금 사형제를 합헌이라고 유지했는데, 당시 이 소장은 ‘합헌 의견’을 냈다.

현재 헌재는 사형제가 합헌인지를 심리하는 세 번째 심리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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