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곰탕집 성추행' 30대 남성…진짜 억울하세요?[그해 오늘]

한광범 기자I 2022.11.26 00:03:00

2017년 곰탕집 성추행 사건…남성, CCTV 보자 말바꿔
법정구속후 남성 아내 靑청원…피해자 '2차 가해' 당해
반성없이 혐의 부인 일관…대법원도 "명백한 강제추행"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7년 11월 26일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대전 유성의 한 곰탕집에서 두 일행 간에 시비가 붙었다. 양측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시비는 한쪽 일행의 여성 A씨가 다른 일행의 남성 최모(당시 38세)씨가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항의하며 시작됐다.

A씨가 식당 화장실을 이용한 후 몸을 돌려 미닫이문을 열려던 상황에서, 최씨가 뒤쪽을 지나치면서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었다. A씨 항의에 최씨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결국 양측 일행이 가세하며 다툼으로 번진 것이다. 다툼이 계속되자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2017년 10월 26일 새벽 대전 모 곰탕집에서 ‘성추행’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화면.
A씨는 당일 이뤄진 경찰 피해자 조사에서 “남성이 손으로 오른쪽 엉덩이 부위를 밑에서 위쪽으로 움켜잡았다. 제가 바로 돌아서서 항의했으나 남성이 추행 사실을 부인했고 결국 양측 일행 사이에 다툼이 발생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반면 최씨 진술은 전혀 달랐다. 당일 모임에서 폭탄주 15잔을 마셨다고 밝힌 최씨는 “신발을 신는 과정에서 해당 여성과 어깨만 부딪혔다. 이때 여성이 ‘왜 부딪히냐’고 해 죄송하다고 말한 것이 전부”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씨 진술은 5일 후 완전히 달라졌다. 식당 내부에 설치된 CCTV에 피해자가 근처에 있는 상황에서 최씨가 신발을 신는 모습이나, 어깨를 부딪히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CCTV에는 피해자 A씨의 주장대로 뒤돌아서 있는 A씨 뒤편을 최씨가 지나가고, 그 직후 피해자가 최씨를 뒤쫓아가 항의하는 모습이 명확히 담겨 있었다. 최씨가 자신의 손을 순간적으로 A씨 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모으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신체접촉 없었다”→CCTV 본 후엔 “실수로 스쳤을 수 있다”

최씨는 입건된 후 이뤄진 12월 1일 경찰 조사에서 “애초 신체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수로 제 손이 여성 엉덩이를 스쳤을 수 있고, 이를 피해자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진술을 바꾼 경위에 대해 “CCTV 영상을 보기 전에는 피해자와 신체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CCTV 영상을 보니 신체접촉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최씨의 성추행 혐의가 인정된다는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최씨와 피해 여성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최씨는 거짓, A씨는 진실’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최씨는 검찰에서도 경찰 조사 때와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그는 “CCTV 화면상 터치가 된 것 같으나, 고의로 추행하려는 것은 아니었고 실수로 터치한 부분이 있고, 이 부분은 사과할 용의가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또 “고의로 만진 게 아닌 만큼 성추행을 인정하거나 용서를 빌 생각은 없다. 실수로 터치한 것인데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검찰은 최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최씨는 뒤늦게 변호인을 통해 A씨 측에 합의금 300만원을 제시하며 합의를 시도했다. 하지만 A씨 측은 처음부터 “사과가 없다면 합의도 없다”는 강경 입장이었다. A씨 변호인이 “혐의를 인정하고 사과하겠다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최씨 측은 “혐의를 인정하진 않고 물의를 일으켰기에 합의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합의는 불발됐다.

최씨는 법정에서도 “피해자 엉덩이를 움켜잡은 사실이 없고, 실수로 제 손이 피해자의 엉덩이를 스친 것을 피해자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검찰은 최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2018년 10월 27일 오전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곰탕집 성추행 사건’ 2차 가해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檢, 1심서 벌금 300만원 구형→법원은 ‘실형’ 선고

1심은 2018년 9월 5일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해 당시의 상황을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자연스럽다. 피해자가 손이 스친 것과 움켜잡힌 것을 착각할 만한 사정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양형은 검찰 구형보다 훨씬 높은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곧바로 최씨를 법정구속했다. 이와 함께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3년 취업제한 명령도 함께 내렸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 대해 “최씨가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마음도 없어 보인다. 피해자가 느꼈을 수치심이 상당해 보이고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추행의 방법과 범행 후 정황 등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CCTV 등의 추행 증거가 명백한 상황에서 최씨가 일말의 반성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공격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던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많은 강제추행 사건 중 하나였던 최씨 사건은 최씨 아내가 판결 하루 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남편인 최씨가 법정구속된 후에야 남편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최씨 아내는 최씨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최씨 아내는 “(피해) 여자가 합의금으로 1000만원을 요구했고 신랑은 ‘갈 때까지 가보자’라며 자기는 명백하니 법정에서 다 밝혀줄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재판까지 가게 됐다”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게시했다. 또 “신랑은 줄곧 (식당에) 있는 내내 손을 뒤로 하고 있거나 앞으로 모으고 있었다”라며 “윗사람들 모시고 준비하는 어려운 자리에서 그 짧은 순간에 여자 엉덩이 만질 생각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최씨 아내의 글은 삽시간에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퍼졌다. 최씨 아내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들인 일부 누리꾼들은 “최씨는 억울한 피해자”라며 피해 여성과 1심 판사에 대한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판결을 비판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졸지에 ‘꽃뱀’으로 몰린 피해자는 직접 최씨 아내의 주장을 반박하는 인터뷰를 해야 했다.

2018년 10월 27일 서울 혜화역 일대에서 ‘곰탕집 성추행 유죄 판결 규탄 집회’가 별도로 열리기도 했다. (사진=이데일리DB)
가해남성 아내, 사실과 다른 글 올려 피해자 공격받아

사회적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사건을 배당받은 2심 재판부는 10월 12일 보석청구를 인용해 최씨를 석방했다. 최씨는 법정구속된 지 38일 만에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2심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2심에서도 “피해자의 엉덩이를 만진 적이 없다”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또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다는 양형부당 주장도 폈다.

검찰은 2심에서 사건 당시 식당 CCTV 영상의 화질을 개선한 새로운 영상을 제출했다. 2심 재판부는 화질이 개선된 CCTV 영상에 대해 분석의뢰했다. 법영상분석연구소는 현장의 3차원 재구성 결과 “약 1.333초만에 주변 인물과 피해 여성 사이를 걸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신체접촉이 발생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는 결과를 회신했다.

2심도 2019년 4월 26일 CCTV 영상과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 등을 토대로 최씨의 성추행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CCTV 영상을 보면 최씨가 출입구를 보면서 뒷짐을 지고 서 있다가 돌아서는 장면, 최씨 오른쪽 팔이 피해자 쪽으로 향하는 장면, 최씨가 피해자와 인접한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피해자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장면 등을 확인할 수 있어 피해자의 진술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씨의 양형부당 주장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최씨가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사회적 유대관계도 분명하다. 또 추행 정도가 그리 중하지 않다”며 “1심 양형은 무거워 부당하다”며 판단했다. 2심은 최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과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3년 취업제한 명령은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사회봉사 160시간 명령은 추가했다.

일부의 가해자 옹호에…“성추행사건 특징 모르는 주장”

최씨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그는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피해자와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추행의 고의에 대한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9년 12월 12일 “강제추행을 유죄로 인정한 2심 판단엔 잘못이 없다”며 최씨의 유죄를 그대로 확정했다.

최씨를 옹호하던 사람들은 대법원 확정 판결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요지는 △“최씨가 평소 성추행을 할 사람이 아니다” △“여성의 일방적 주장만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설령 엉덩이를 만진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양형이 과도하다” 등이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성추행 사건의 전형적 특징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성추행 사건의 경우 화이트칼라 계층에서도 많이 발생하며 가해자 다수도 ‘평소에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피해자의 진술이라고 하더라도 일관되거나 객관적 증거와 일치할 경우에만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설명이다.

양형과 관련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최씨의 경우 아무런 반성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최씨 태도를 법원이 2차 가해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기준상 최대 징역 2년까지 선고가 가능한 상황에서 충분히 가능한 양형이었다”고 밝혔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