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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학자 대회]"한국 '수포자'가 미국 우수학생보다 뛰어나..자신감 가져라"

이승현 기자I 2014.08.18 00:33:20

한국인 첫 옥스퍼드대 수학교편 잡은 김민형 교수, 수포자 문제 '자신감이 해법'
"한국 학생, '지식의존 사고'에 치중..지식 없이도 생각하는 습관 키워야"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수학포기자’를 양산하는 우리나라의 수학교육 문제에 대해 한국이 낳은 세계적 수학석학은 ‘학생들의 자신감 고취’를 해법으로 내놓았다. 원론적 답변이지만 그의 근거는 분명했다. “한국 ‘수포자’가 미국의 우수한 학생보다 수학실력이 더 뛰어납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라는 겁니다”.

김민형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 [사진 = 이승현 기자]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수학교편을 잡은 김민형(51) 교수는 17일 이데일리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다만 “한국 학생들은 사전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나서 생각하는 습관에 익숙하다”며 “그러다보니 모르는 것을 만나면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진다. 수포자 문제도 이런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약간의 지식만으로 혹은 지식이 전무한 채로 생각하는 습관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외워서 공식대로 푸는 수학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고 새로운 풀이법까지 고안해 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산술대수기하학’ 분야의 대가로 꼽힌다. 그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서 일반화된 ‘정수계수 다항식의 해가 되는 유리수’의 실제 해를 찾기 위해 완전히 다른 분야인 위상수학을 적용, 이 연구에서 업적을 세우며 세계적 석학으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연구실에만 틀어박힌 ‘은둔형’ 수학자는 아니다. 그는 ‘아빠의 수학여행’ 등 여러 편의 수학 대중서를 펴냈다. 지난해부터는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박형주 포스텍 교수(현 서울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와 이기형 인터파크(035080) 회장 등과 손을 잡고 일반인 대상 수학콘서트인 ‘KAOS’를 1년에 두 차례씩 열고 있다.

김 교수는 ‘2014 서울세계수학자대회’(Seoul ICM) 조직위원으로, 관련 행사인 ‘브리지스 서울 2014’의 기조강연을 했다. 인터뷰는 이 행사가 열린 과천과학관 강연장에서 이뤄졌다. 강연을 들은 물리학자와 조각가, 수학자 등이 계속 김 교수에게 말을 걸어 인터뷰가 중간중간 끊기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서울ICM 조직위원으로서 감회가 어떤가.

△수학자들은 다른 자연과학 분야에 비해 의사소통을 많이 하는 역사와 전통이 있다. 수학은 물리적 장비나 실험실 운영이 필요없어 학문적으로 자유롭다. 전세계 수학자들이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굉장히 즐겁다.

- 순수 수학을 연구하지만 수학대중화 노력도 많이 하는 이유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수학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다는 건 큰 즐거움이다. 한국 성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배움의 갈망이 큰 것 같다. 내가 수학자로서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돕는 것이다.

- 한국 학생들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최상위 실력을 내지만 정작 현실에선 수포자가 많다.

△교육문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지만 개인적 소견과 경험을 말하면, 한국 수포자들이 미국의 실력있는 학생보다 오히려 수학을 더 잘 한다. 한국 고등학생은 수포자도 ‘수학의 정석’을 공부하고 기본적인 미분과 적분을 한다. 한국에선 (수학실력이 다소 부족한) 생물학 전공자가 미국 유학가면 수학을 가장 잘 한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지식을 많이 쌓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라.

- 그래도 문제점이 있을텐데.

△한국 학생들은 모르는 것을 만나면 (쉽게) 포기하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성향이 있다. 수포자 문제도 이런 것 같다. 사전지식을 갖추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하고나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서 그렇다. 습관상 사전지식 없이 탐구하는 것이 안 돼 있는 것 같다. 지식에 의존한 사고는 수학에서 한 단계를 뛰어넘을 때 장애가 될 수 있다. 공부에서는 지식이 필요하지만 약간의 지식으로 사고하기와 지식이 전혀 없이 사고하기도 필요하다. 수학콘서트 등을 통해 이 문제를 보완하고 싶다.

- 수학은 선천적 능력과 후천적 노력 중 무엇이 중요한가.

△금융과 소프트웨어 분야 등 수학을 사용하는 직장을 갖거나 박사학위를 얻는 것도 노력으로 가능하다. 열심히 노력하면 수학으로 밥벌이 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것은 다른 것(선천적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 아버지(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교육을 어떻게 받았나. 고 2와 중 1인 두 아들은 어떻게 수학교육하나.

△우리 부모님은 어릴 때는 공부에 대한 구체적 조언은 거의 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중 1 때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공부해 검정고시를 치뤄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집에서 놀았다’고 표현한다) .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충분히 얻게 하고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학교에서 미적분학 계산훈련을 많이 하는데, 나는 미적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가르친다. 한국 공교육 시스템은 학생들에게 유용한 것들을 많이 가르쳐준다고 본다. 학교 교육을 잘 파악한 뒤 그것을 이용해 또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생각한다.

- 한국 수학실력은 ‘세계 11위’인데 왜 아직도 필즈상을 못 타냐는 비판이 많다.

△물론 타면 좋다. 그런데 너무 강조하면 부작용이 있다. 외국인의 관점으로 보면 한국은 수학을 잘 하는데 왜 걱정하는 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연구논문 실적이 세계 11위면 잘하는 것인다. 우리 사회와 수학계가 스스로 우리 실력을 인정했으면 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필즈상도 탈 것이다.

- 현재 서울대 수리과학부 초빙교수로도 활동한다. 수학대중화 계획이 또 있나.

△여름학기에는 (한국을 찾아) 서울대에서 한국 학생들을 가르친다. 최근 한 교육 전문 동영상 사이트와 ‘수체제의 역사’란 주제로 2시간짜리 강연을 5번에 걸쳐 하기로 했다. 유료강연이다. 수학자들이 학교나 정부를 통한 지원 말고도 국민과 직접 소통을 위해 ‘돈 내도 들을 만하다’는 느낌을 갖게 콘텐츠를 잘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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