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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충돌]`돈 나올 곳 나 몰라라` 일방통행 정부…예고된 갈등

이정훈 기자I 2019.05.28 06:12:00

文정부 복지확대…지자체 울리는 국고보조사업
구조조정 없이 늘어만 가는 보편복지…지자체 속앓이
표 의식한 현금복지 남발하는 지자체…정부와 충돌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47%대의 노인빈곤율을 낮추기 위해 소득하위 70%이하 만 65세 이상 어르신에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지속적으로 늘리겠다는 건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사항이다. 실제 문 정부는 기초연금 수급자 약 516만명에게 지급하는 최대 급여액을 지난해 9월 월 20만9960원에서 25만원으로 인상했고 올 4월부터 소득하위 20% 이하에겐 월 30만원까지 급여액을 추가로 인상했다. 내년에는 소득하위 40%, 2021년엔 소득하위 70% 모든 수급자의 기준 기초연금액을 월 30만원으로 높일 계획이다.

◇기초연금 지속 확대…지자체 재정부담 `눈덩이`

문제는 중앙정부가 결정하는 복지사업은 국고보조방식으로 진행돼 정부와 기초단체가 법에서 정한 비율대로 재원을 나눠서 투입해야 한다는 것.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자체가 기초연금 지급에 쓴 돈은 2017년 2조4699억원에서 작년 2조7194억원으로 2495억원 늘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기초연금 지급에 따른 지자체 재정부담은 올해 3조2000억원으로 늘고 오는 2026년에는 6조2000억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노인 수는 많으면서 노인비율은 낮은 지자체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초연금법은 지자체의 노인비율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간 분담률을 정하고 있는데, 그 비율이 20% 이상이면 지자체 부담률이 1%로 가장 낮고 14~20%는 4%, 14% 이하는 9%를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올 1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써 “기초연금 부담에 재정파탄이 우려된다”고 호소했던 더불어민주당 출신 정명희 구청장이 있는 부산 북구청이 대표적이다. 화명 신도시에 젊은층 인구가 유입되면서 부산 북구의 노인 인구는 4만1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3.5%에 불과하지만 기초연금 수급자는 3만1000여명이다. 지자체 부담률 9%를 적용하면 북구가 부담하는 기초연금은 79억5500만원인데, 이는 노인 인구는 비슷하지만 비율이 높아 4%만 부담하는 금정구에 비해 45억원이나 많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근시일 내 해결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성조 행정안전부 지방재정정책관은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 급여는 평균 75% 정도를 국비로 보전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재정이 취약한 기초단체엔 부담이 된다”며 “정부도 이를 국가에서 해야할 사업으로 판단하고 있고 관련부처에서 기초연금 국비보조율을 높이는 제도 개선을 내년에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밖에 국고보조사업에 대해서도 지자체가 부담하는 비용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줄을 잇고 있는데 재정여건이 어려운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를 감안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누리과정·고교무상교육, 지자체에 재정부담 전가

더구나 복지사업의 주체를 중앙정부로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탓에 기초단체가 진행하는 현금복지와 엇박자를 내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실제 지난 2월부터 서울 중구청은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에게 매달 10만원씩의 공로수당을 기초연금에 얹어서 지급하기로 했다. 이렇다보니 같은 아파트 단지인데도 구(區)가 달라 기초연금 수령액에 차이가 났고 이 때문에 덜 받는 쪽에서 서운감과 불만을 토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보육·교육분야도 마찬가지다. 올해 2학기부터 고교 3학년을 대상으로 시행한 뒤 2021년까지 전(全)학년으로 확대하는 고교무상교육도 중앙과 지방이 재원을 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한 해 2조원 재원 중 9466억원과 1019억원을 각각 부담하게 된 시도교육청과 지자체는 정부 국고 지원을 늘리라며 반발하고 있다. 차후에 이념성향이 다른 교육감들이 선출될 경우 중앙과 지방간 충돌이 거세져 고교무상교육 자체가 흔들릴 위험도 있다. 자칫 제2의 누리과정 사태를 우려하는 것.

지난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은 만3~5세 무상보육인 누리과정을 시행하면서 전액 국고로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재원 부담이 만만찮아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를 시도교육청과 나눠냈고 급기야 2016년엔 지원금 전액을 각 교육청이 정부로부터 받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자체 충당토록 했다. 반발한 교육감들이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거부하자 보육대란이 터졌다. 이에 정부는 2017년 1월부터 3년간 2조원 재원 조달을 위해 법정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를 설치했는데 그 효력이 올 12월31일에 끝나기 때문에 내년 재원 조달방식은 9월 예산안 제출 이전인 8월말까지 다시 논의해야 한다. 이 역시 또다른 불씨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뒷걸음 치는 재정분권…부족한 돈이 갈등의 본질

결국 갈등의 본질은 돈이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이후 24년간 복지와 행정분야에서 지자체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지만 비(非)수도권 지자체 가운데 77%는 재정자립도가 30%에도 채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17년 기준으로 재정 사용액은 중앙정부 40%, 지자체 45%, 교육재정 15%인 반면 실제 배분되는 예산규모는 중앙정부 55%, 지자체 35%, 교육재정 11%로 세입과 세출간 불일치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 6년(2012~2018년)간 지자체 총세수는 한 해 평균 5.3%씩 늘어난데 비해 사회복지지출은 10.2%씩 늘었다. 김승연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전국 226개 시군구의 총 세출예산 128조980억원 중 사회복지사업 지출은 38조6699억원으로 30%를 웃돈다”며 “중앙정부에 비해 자체 세입원이 취약한 지자체에 이처럼 복지지출을 과도하게 물리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보편적 복지 확대는 지방자치의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렇다보니 지자체는 관내 주민들의 니즈에 맞는 자체 사업을 하고자 해도 재정여력이 없는 상태다. 지난 2016년 기준으로 지자체의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32.3%로, 중앙정부(31.9%)보다 높다. 그러나 지자체 사회복지지출 가운데 대부분인 91.9%는 국고보조사업이며 자체 사업은 8.1%에 불과하다.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은 “나라경제를 책임지는 경제부총리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분들이 맡지만 자치구 사업만 놓고보면 구청장이 경제부총리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며 “국고보조사업을 명확히 나눠 중앙정부가 할 일이라면 지원을 늘려야 하며 그로 인해 남는 재원으로 지자체는 자체 사업을 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226개 시군구에 한 해 1000억원씩만 더 준다면 그 돈으로 지역민 삶의 질을 높이고 시군구에서의 성장률 제고와 고용 창출을 이뤄낼 수 있는 사업을 잘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중앙정부는 여전히 지자체를 못믿어 재정을 틀어 쥐겠다는 것인데, 이래서야 어떻게 대통령이 약속한 지방분권을 이뤄 내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현재 문 정부의 재정분권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지난 2017년 기준 약 8:2였던 국세:지방세 비율을 6:4 수준으로 조정하겠다던 임기초 문 대통령의 지방분권 개헌안은 최근 임기말인 2022년까지 7대3의 비율로 맞추겠다는 식으로 후퇴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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