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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물소리도 잠재우는 깊은곳에서 '악상'을 떠올리다

강경록 기자I 2017.06.16 00:01:00

충북 영동 초여름 여행
일개 범부도 묵개이 되는 곳 '옥계폭포'
금강이 빚은 아름다움 '양산팔경'
달도 잠시 쉬어가는 곳 '월류봉'

충북 영동 양산팔경 중 하나인 ‘강선대’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예술가들은 자연에서 주로 영감을 받는다. 자연이 가지는 역설 때문이다. 가끔 거칠고 험하지만 매번 부드럽고 평화롭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등 소리가 가득하다. 한 편으로는 고요하게 싹이 돋고, 꽃이 피고, 낙엽이 진다. 인간이 자연에 비해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명제도, 자연 속에 들어서면 저절로 알게 되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명인 난계 박연(1378~1458)은 특히 자연을 사랑했다. 그가 나고 자란 충북 영동의 자연은 난계의 음악적 영감을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소백산맥의 준령에 둘러싸여 있어 산이 깊고, 골도 깊다. 그래서 흐르는 물도 맑고 스치는 바람도 고요하다. 한마디로 산수화 절경 속에 안겨 있는 도시다. 여기에선 범부조차도 묵객이 되고, 악성이 된다.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하나인 난계 박연이 즐겨 찾아 피리를 불었다는 옥계폭포.
◇ 일개 범부도 시인이 되는 곳 ‘옥계폭포’

박연의 음악적 영감을 쫓아 찾아간 곳은 신천면 옥계리에 자리한 옥계폭포다. 옥계폭포는 천모산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다. 찾아가는 길은 의외로 쉽다. 난계사에서 옥천방향으로 3km 전방 좌측 길가에 위치한 옥계리로 진입해 천모산 골짜리고 들어서서 산길을 따라 약 1km 전방에 있다. 혹여 거동이 불편하거나, 어린 자녀를 둔 관광객이라면 자동차를 이용해 더 쉽고 편하게 찾아가는 방법도 있다. 옥계폭포 150m 전방 매표소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오를 수 있다.

매표소에서 옥계폭포까지 오르는 길의 풍치도 일품이다. 폭포에서 떨어진 옥수가 천모산 계곡을 따라 흐르다 잠시 머무는 산중(山中) 저수지의 풍광과 뒤이어 나타나는 오솔길의 상큼함은 걷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쾌적함이다.

폭포소리에 이끌려 도착한 옥계폭포는 한 낮의 불볕더위를 순간 잊게 할 만큼 시원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무려 20m에 이르는 물줄기가 깍아 지른듯한 절벽에서 쏟아지면서 폭포 주변이 청량감으로 가득하다. 주변 경관도 옥계폭포와 어우러지며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주는 옥계폭포의 또 다른 선물이다.

이곳이 바로 난계가 즐겨 찾아 피리를 불었고,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발길도 잦았다. 다가갈수록 장쾌하게 흘러내리는 폭포의 시원한 물쏘리와 뿜어져 나오는 물보라가 세차다. 그 장관에 압도 되어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잠시 황홀경에 빠진다. 저렇게 수천년을 흘러내렸을 옥계폭포의 물줄기는 바위산을 움푹 깎아 절경을 이루며 바위틈으로 세찬 물보라를 토해내고 있다. 걸음을 뒤로하고 폭포의 장관에서 눈을 돌리자 폭포 주위에 깎아지른 절벽이 웅장하다. 폭포와 절벽의 웅장함을 한눈에 보고 있노라니 마치 살아 있는 산수화를 보는 듯 아름다우며 힘차다.

충북 영동 양산팔경 중 제1경인 영국사의 보물 중 보물인 1000년 묵은 은행나무
◇금강이 빚은 아름다움 ‘양산팔경’

옥계폭포를 나와 금강상류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양산면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강선대를 만난다. 제1경인 영국사는 양산팔경의 정수로 불린다. 천태산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큰 절은 아니지만 사찰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멋진 은행나무가 있어 전국적으로 이름난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이름처럼 유럽의 영국과는 전혀 관계는 없다. 영국사는 신라 때의 고찰이다. 고려문종 때 대각국사가 국청사라 했던 것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곳에서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안정된 삶을 기원해 국난을 극복했다고 해 영국사로 이름을 바꿨다.

여기를 찾아가야할 이유는 경치말고도 또 있다. 영국사에는 5가지 보물과 1개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보물 제532호인 영국사부도(浮屠), 보물 제533호인 영국사삼층석탑, 보물 제534호인 영국사원각국사비, 보물 제535호인 영국사 망탑봉 3층석탑과 천연 기념물 제223호인 영국사의 은행나무가 그것이다. 그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영국사의 은행나무다. 나무의 둘레를 치자면 여른 서넛이 손을 맞잡고 둘러서야 나무를 제대로 안을 만큼 거대하다. 공식적으로는 31.4m, 둘레가 11.54m의 거목이다. 크기만큼이나 이 은행나무의 나이도 무려 1000살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서쪽으로 뻗은 가지 한 가운데 한 개는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또 다른 은행나무로 자라고 있는 신기한 광경도 이 은행나무의 유명한 볼거리다.

영국사 인근에 양산팔경 중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강선대가 있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가에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오롯이 서 있는 육감정자로 멀리서 보면 주변 노송들과 어울려 우아하고 고상한 멋이 흐른다. 이 외에도 금강과 양산면 일대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비봉산’과 봉황이 깃든 곳이라 전해지고 있는 ‘봉황대’, 금강 강가에 수줍게 서 있는 ‘합벽정’, 강선대와 금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서 있는 ‘여의정’, 목욕하는 선녀를 보느라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의 이야기가 깃든 ‘용암’, 글 읽는 소리조차 아름답다는 ‘자풍당’ 등이 양산팔경을 이룬다.

충북 영동 양산팔경 중 하나인 봉황대
달이 머무는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월류봉
◇달도 잠시 쉬어가는 곳 ‘월류봉’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갈 무렵 서둘러 월류봉으로 향한다. 백두대간에서 살짝 빠져나온 산맥이 민주지산에서 북으로 잠시 올랐다가 황간면 원촌리에 이르러 만들어 놓은 봉우리가 바로 월류봉이다. 깍아지른 절벽산인 월류봉의 높이는 400.7m다. 그 아래로 물 맑은 초강천 상류가 휘감아 흘러 수려한 풍경을 이룬다. ‘달이 머물다 가는 봉우리’이름처럼 달밤의 전경이 특히 아릅답다고 알려져 있다. 그 모습에 예로부터 이 일대의 뛰어난 경치를 ‘한천팔경(寒泉八景)’이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여행차 다녀간 곳으로 알려졌다.

월류봉 아래쪽에는 한때 이곳에 머물며 작은 정자를 짓고 학문을 연구한 우암 송시열(1607~1689)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한천정사와 영동 송우암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500년 된 배롱나무가 인상적인 반야사와 반야사 계곡도 돌아볼 만하다. 반야사는 신라 성덕왕 27년(728년) 운효대사의 10대 제자 중 수제자인 상원화상이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뒤에 고려 충숙왕 12년(1325년) 학조대사가 중수했다고 전해진다. 반야사를 끼고 있는 석천계곡에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나른한 한때를 보낼 수도 있다. 노근리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양민을 학살한 통한의 현장이다. 철길 아래 터널 등에 총탄과 포탄의 흔적이 여태 남아 있다. 주변에 평화공원도 있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하나인 난계 박연의 뜻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0년 개관한 ‘난계국악박물관’에는 일반인들도 국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국악체험촌을 운영하고 있다.
◇여행메모

△가볼 만한 곳= 옥계폭포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난계국립박물관도 꼭 들러봐야할 곳이다. 우리나라 3대 악성인 난계 박연의 뜻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0년 여기에 들어섰다. 가야금을 비롯한 100여종의 국악기와 의상이 전시되어 있고, 난계 박연의 삶과 업적을 그래픽과 디오라마로 연출해 전시하고 있다. 더불어 악기를 직접 다뤄볼 수 있는 체험실도 따로 마련돼 있어 가족 여행객에게는 필수 코스다.

△주변먹거리= 영동대학교 인근의 송천가든은 솥뚜껑 비밤밥이 최고 인기 메뉴다. 즉석에서 시루밥을 무쇠 철판 솥뚜껑에 올려 볶는 솥뚜껑 비빔밥 조리 광경은 식욕을 더욱 자극한다.

천고각
솓천식당 솥뚜껑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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