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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침묵 안해" 사회 문제에 목소리 높인 여자 스타들

김보영 기자I 2020.03.26 05:50:00

가인·신아영·이다인 등 'n번방' 조주빈 인스타 차단 인증
하연수 '철학가 납셨다' 비아냥에도 "묵과 안돼" 지지 호소
"디지털 성범죄 타깃 돼온 연예인들, 연대 의식 인지"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여성 연예인들이 사회적 사건에 내는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간 사회적 이슈에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려 했던 여성 연예인들이 비판은 물론 불쾌감 등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건의 공론화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최근 스마트폰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포함 여성 피해자들의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N번방’ 사건이 전 국민적 관심과 분노를 이끌어내는데 여성 연예인들의 사회적 관심 촉구와 공개적 지지 호소가 발휘한 영향력이 컸다는 분석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 신아영, 손수현, 하연수. (사진=각 연예인 인스타그램)
◇ 조주빈 신상 공개→인스타 차단 릴레이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여성 연예인들은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공개에 목소리를 높였다. 또 조주빈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공개되자 팔로우를 끊은 것을 인증하고 팔로워였던 사실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조주빈이 팔로우한 여성 연예인들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팬 및 누리꾼들로부터 댓글, 다이렉트 메일(DM) 등을 통해 팔로잉 사실을 제보받고 나타낸 반응이다.

신아영 아나운서는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랜만에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N번방 운영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나를 팔로잉하고 있으니 얼른 차단하라고”라며 “들어가 봤더니 진짜였다. 바로 차단했지만 찜찜한 기분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고 적었다. 이어 “그 사람이 나를 팔로잉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고 미치도록 싫은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어린 소녀들은 어떨까”라며 “피의자들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겠지만 피해자들의 트라우마와 상처들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진짜 세상이 왜 이런지. 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과 모모랜드 출신 연우, 김하영, 이다인, 서영, 신예지, 김예원 등도 조주빈의 팔로잉 제보를 전해 듣고 이를 곧바로 차단한 사실을 팬들에게 알렸다. 이보다 더 나아가 이번 사건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론화와 지속적 관심을 직접적으로 촉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른 연예인들보다 앞서 지난 11일 인스타그램에 이 사건을 언급하고 “실제로 내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묵과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라며 “N번방 속 2만 5000명의 사고방식은 매우 위험하고 비윤리적이지 않은가. 미성년 강간도 모자라 지인 능욕이라니 엄중한 처벌과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소신을 밝혔던 하연수 등은 오히려 비난을 받았다. “철학가 납셨다”, “국가가 그렇게 만만하냐” 등의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이를 의식하지 않고 걸스데이 멤버 겸 배우 혜리, 정려원, 신소율, 남보라 등 많은 여성 연예인들이 함께 연대의 목소리를 내자 근거 없는 비방의 댓글들은 어느덧 응원과 지지의 댓글과 메시지로 채워졌다.

배우 송채윤은 ‘N번방’ 사건 공론화로 자신을 향한 신상털기와 악성댓글을 우려한 팬의 메시지를 캡처하고 “이렇게 숨으면 언젠가는 그 피해자가 내가 될 수 있고, 친구가 될 수 있고 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못 내리겠다”고 밝혔다.

◇‘미투’부터 축적된 연대의 힘…“숨지 않겠다”

연예인들이 여성 인권과 관련한 사회적 현안에 관심을 드러낸 것이 처음은 아니다. 걸그룹 AOA 설현, 레드벨벳 아이린, 배우 서지혜 등이 페미니즘 논쟁을 일으킨 책 ‘82년생 김지영’을 읽거나 ‘Girls can do anything’이 적힌 티셔츠를 입은 모습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2017년 ‘미투’(Me Too·나도 말한다) 운동부터 시작해 ‘82년생 김지영’ 신드롬, 고(故) 설리·구하라 등 여성 연예인들의 잇단 사망 등 일련의 이슈들을 통해 각성된 젠더 감수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란 플랫폼이 만들어낸 느슨한 연대의 힘과 맞물려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줬다고 분석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편적 인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을 넘어 ‘나의 인권’이 희생될 수 있는 일이라 여기는 것”이라며 “영상 유출 및 협박 위험에 대한 노출 등 연예인들이야 말로 디지털 성범죄의 가장 손쉬운 타깃이 돼왔기 때문에 이 사건에 특히 공감을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로 소통하는 젊은 여성 연예인들은 목소리를 내는 게 혼자만의 일이 아닌 함께하는 것이란 연대 의식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세대의 연예인들과 다르다”며 “특히 여성 인권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며 함께 해결해야 나가야 할 사안임을 깨달은 시간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꺼이 그 연예인들의 편에 서주는 대중의 현재 흐름도 한 몫했다”고 분석했다.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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