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근로시간 철저, 단역 이름도 기억…'봉준호 리더십'

김보영 기자I 2020.02.14 00:00:01

모든 스태프·배우들과 의견 공유…주52시간 철저 준수
작은 인연도 소중히…"큰 상 받아도 변함 없어"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10초 남짓 출연하는 단역이어서 외부인으로 오해받아 촬영장 앞에서 출입을 거부당한 적도 있었어요. 그때 봉 감독님께서 ‘염혜란 배우님 오셨냐’고 맞아주셨죠,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던 거예요.”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이어 열린 파티에 참석해 트로피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영화 ‘살인의 추억’(2003)으로 데뷔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빛을 본 배우 염혜란은 지난해 말 매체들과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을 추억하며 이같이 감사를 전했다. 봉준호 감독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역사를 쓰면서 이를 가능케 한 그의 리더십과 인품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촬영 스태프를 비롯한 배우, 평론가, 제작사 등 그를 오래 전부터 지켜봐 온 영화계 관계자들은 그의 리더십을 철저한 ‘예의’, ‘친화력’, ‘배려’ 세 가지 키워드로 표현했다. 그가 현재 이룬 성공은 개인의 끈기 못지않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쌓아온 ‘인적’ 인프라 덕분에도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모든 구성원 존중…“밥 때는 칼같이”

봉 감독은 지위와 관계없이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철저히 존중하는 영화감독으로 유명하다. 모든 스태프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격의 없이 소통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주52시간 근로시간 가이드라인을 ‘칼같이’ 준수한다는 그의 미담은 익히 알려져 있다.

‘기생충’ 역시 스태프와 제작사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주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준수해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기생충’이 철저하게 표준계약서를 준수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려 노력하는 등 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한 측면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머릿속에 그려둔 모든 그림과 상황을 현장의 배우·스태프들에게 빠짐없이 꼼꼼히 공유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며 “감독으로서 한 번도 권위적, 고압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더라. 무명 배우, 막내 스태프까지 살뜰히 챙기고 기억해 감동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함께해 봉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배우 송강호는 지난해 5월 프랑스 칸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함께 작업하며 봉준호 감독의 정교한 연출력에 놀랐다. 그 중 가장 정교한 지점은 밥 때를 칼같이 지켜줬다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경청한다”며 “(구성원들과) 의견을 나누며 결국 원하는 걸 얻어낸다”고도 강조했다.

(사진=MBC 다큐멘터리 ‘감독 봉준호’ 방송화면)
◇“큰 상 받아도 변함 없어”…작은 인연도 소중히

이 같은 배려와 소통의 리더십은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는 그의 인품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 출연한 배우 박노식은 MBC 다큐멘터리 ‘감독 봉준호’에 출연해 “아주 자그마한 역할, 보조출연자분들의 이름까지 불러주신다”며 “그럼 그 분들도 굉장히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기생충’에서 박 사장(이선균 분)의 지하실에 사는 근세 역할을 맡았던 배우 박명훈은 매체 인터뷰를 통해 “먼저 느낀 건 봉 감독의 배려심이었다”며 “저희 아버지가 폐암 투병 중이셔서 시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감독님이 ‘기생충’ 기술 시사 전 작품을 먼저 저희 아버지께 보여드리자고 제안해 파주에서 함께 봤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영화가 제 첫 상업영화라 정말 행복했고 감사했다. 그를 ‘리스펙’ 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언제 봐도 예의 바르고 상대방이 편안함을 느끼게끔 대한다. 큰 상을 받고 유명해진 뒤에도 변함없는 모습”이라며 “그의 인품을 알기에 영화계 인사들이 하나같이 진심으로 그의 이번 아카데미 수상을 축하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 새 역사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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