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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준과 박세진은 최근 중구 통일로에 위치한 이데일리 사옥을 찾아 오디션 후일담을 들려줬다. 두 사람은 사전에 의논을 한 것처럼 이구동성으로 “나는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얘는(언니는) 붙겠다고 생각했다”며 서로를 치켜세웠다.
김혜준과 박세진은 ‘미성년’에서 각자의 아빠와 엄마의 불륜을 알아차리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열여덟 살 소녀 주리와 윤아를 연기했다. 두 사람은 500대2의 경쟁률을 뚫고 서사를 끌어가는 주역을 당당히 꿰찼다. 김윤석을 물론이고 염정아·김소진 베테랑 선배들 앞에서 꿀리지 않은 당찬 연기로 눈도장을 찍었다. 영화 ‘미성년’이 발굴한 ‘미(美)성년’, 김혜준과 박세진을 이데일리가 만났다.
-500대2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을 따냈는데 여느 오디션과 다른 점이 있었나.
△박세진(이하 박)=1,2차 때는 다른 오디션과 비슷했다. 조감독과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했다. 3차때 감독님을 만났고 함께 시나리오를 읽고 1대1로 한 시간 가량 대화했다. 최종 오디션이 기억에 남는다. 최종 오디션에 오른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랜덤으로 주리와 윤아가 돼 호흡을 맞추는 것이었다. 연기가 끝난 뒤에 감독님이 각자 한 명씩 불러 ‘누구와 가장 잘 맞느냐’고 물었다. 혜준 언니와 했을 때가 가장 잘 맞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서로를 지목한 것 같더라.하하.
△김혜준(이하 김)=즉흥적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 미흡한 점들이 많았다. 그런데 유난히 세진이가 잘 받아줬다. 당황스러운 순간이 많았는데 세진이는 받아칠 수 있게 납득이 갈 만한 연기를 해주니까 핑퐁을 하듯이 재미가 있었다. 내가 떨어져도 얘는 되겠다 싶었다.
△박=언니도? 나도 꼭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떨어져도 언니는 되겠다 싶었다.
-현장에서 감독 김윤석은 어땠나. 현장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는 목소리를 높였을 것 같기도 한데.
△김=하필이면 제가 본 감독님의 영화들이 스릴러가 많아서 촬영에 들어갈 때 겁먹었던 것 같다. 오디션 이후에 감독님의 초대를 받아서 본 영화가 ‘1987’이었는데 피디님이 ‘감독님이 박처장처럼 디렉팅하면 어떡할 거냐’고 놀리셔서 더 무서웠던 것 같다. 그런데 프리(프러덕션) 단계 때부터 딸처럼 엄청 챙겨주더라. 저희들의 자존감이 낮아질까 늘 북돋워주고 격려해줬다.
△박=내 경우에는 감독님이 출연한 영화 중에 ‘완득이’ 같은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영화들을 봐서 포근한 인상이 있었다. 준비 단계부터 거의 매일 같이 밥 먹고 할 때 얼마나 아끼는지 느껴졌다. 어느 순간 감독님만 믿고 간 것 같다.
△김=감독님이 현장에서 단 한 번도 언짢아하거나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인 적은 없다. 오히려 기쁠 때 목소리가 높아지는 편이었다. 촬영이 잘되면 기뻐서 큰 소리로 ‘컷’을 하곤 했다.
-학교 복도에서 머리채를 낚아채며 싸우는 장면은 실제처럼 보이더라.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박=합이 잘 맞는 것도 중요했고 다치면 안돼서 그 장면을 위해서 한 달 정도 액션 스쿨에서 훈련을 받았다.
△김=고강도 훈련이었다. 훈련을 하다 보니 안 다치게 넘어지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 하하. 소리를 지르면서 연기를 해야 해 연습을 할 때에도 체력 소모가 컸다. 암묵적으로 한 번에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슛 들어가자마자 몰입해서 했는데 다행히 한 번에 오케이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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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리처럼 적극적으로 뭔가 해결하려고 하거나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실제로는 주리보다 나이가 많은데 연기를 하면서 주리가 멋있고 대견하고 본받고 싶었다.
△박=윤아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저 역시 똑같이 했을 것 같다. 윤아가 부모의 충분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아니니까. 자라면서 외로움이 컸을 테니까 동생만큼은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애썼을 것 같다.
-작품을 하면서 성인, 어른에 대한 생각은 변했을 것 같은데
△김=‘미성년’이 고마운 게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평소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주민등록증이 나오고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 어른이지 생각하며 살았다. 영화를 찍고 나서 ‘지금의 나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인가’ ‘좋은 어른으로 가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다.
△박=그 전까지 어른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른들의 말은 옳고, 그러니까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통해서 나이가 어리든 많든 상관없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공감하려고 애쓰는 노력하는 모습이 어른과 가까운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
△김=계기가 있었다기보다 TV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진로를 정할 때 연극영화과를 결정했고, 연극영화과를 다니면서 목표의식이 더 뚜렷해졌다. 성격 자체가 앞에 나서지 못하다 보니까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어릴 때 발표 같은 걸 시키면 그 자리에 서서 10분간 울곤 했다. 하하. 배우란 게 재능이 특출 나도 잘될지 안 될지 모르는 직업인데 내성적인 성격 탓에 부모님은 공부하면서 안정적인 길을 걷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박=고2때 친언니의 권유로 슈퍼모델에 나갔고, 고3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연극영화과 에 갔다. 주변에서 해보라고 하니까 용기가 나더라. 학교 다닐 때부터 모델 일을 했으니까 부모님도 매니저처럼 붙어 다니면서 도와줬다. 가족과 선생님의 지지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미성년’에 합격하기까지 숱하게 오디션을 봤을 텐데. 붙고 나서 기분은 어땠나.
△김=정말 거짓말하지 않고 100번 넘게 본 것 같다. 처음 오디션을 볼 때에는 붙으려고 아득바득 거렸는데 ‘미성년’ 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인연이 있으면 나한테 오겠지란 생각으로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고 했다. 이 작품이 안 되면 학업으로 돌아가자는 생각도 했었다. 붙고 나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계속 하라는 기회를 준 것 같았다.
△박=내 경우는 오디션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같이 시작했던 친구들은 조금씩 일을 하는데 나는 되는 게 없어서, 되더라도 스쳐지나가는 단역이니까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미성년’ 때에도 당연히 안 될 거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됐을 때에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나.
△김=예전에는 단순하게 연기 잘하는 배우, 실력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활동을 시작한 뒤 운 좋게도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연기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분들을 통해서 ‘좋은 사람이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기는 기본이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박=‘저 친구가 하는 것을 보면 몰입해서 보게 되는 것 같아’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그런 관객들이 보기에 어색하지 않게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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