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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 "'너와 나'가 날 불러…무고하다는 박혜수 눈물 믿었다"[인터뷰]

김보영 기자I 2023.10.12 14:27:02

'너와 나'로 첫 장편 영화 감독 데뷔…"작품이 날 불러"
개인적 사고로 관심 가진 '죽음'…작품으로 위로받아
학폭 의혹 박혜수? 이미 좋은 사람임을 우린 알아
김시은, 몇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천재 배우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너와 나’를 제가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너와 나’란 작품이 저를 부르는 느낌이었어요.”

조현철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 영화 ‘너와 나’를 만난 과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연출로서의 도전과 의지였다기보단 이 작품과의 만남 자체가 ‘운명’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영화 ‘너와 나’는 조현철이 7년의 기다림을 거쳐 ‘감독 조현철’이란 타이틀로 처음 세상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너와 나’는 당초 소중한 것들을 떠나보낸 뒤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기획된 이야기였지만, ‘죽음’에 얽힌 개인적 사고를 겪은 조현철 감독 본인에게도 위로를 안긴 작품이다. 그가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 공포를 이겨낸 뒤 바뀐 삶에 대한 시각, 그 끝에 다다른 ‘사랑’이라는 결말과 철학이 담겨 있다.

조현철 감독은 영화 ‘너와 나’ 개봉을 앞둔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너와 나’(감독 조현철)는 수학여행 전날 벌어진 여고생 세미(박혜수 분)와 하은(김시은 분)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너와 나’는 ‘D.P.’, ‘차이나타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에서 인상깊은 열연을 펼친 배우 조현철이 감독으로서 출사표를 던진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조현철은 사실 대학 재학시절 연기보다 뛰어난 ‘연출’적 재능으로 업계의 주목받던 유망주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재학 당시 연출을 전공했고, 그 시절 만든 단편 영화 ‘척추측만’, ‘뎀프시롤: 참회록’ 등 작품들이 영화제에서 호평을 얻기도 했다.

‘너와 나’는 지난해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섹션, 서울독립영화제 등에 초청돼 베일을 벗었다. 영화제 상영까지 6년, 국내 개봉을 앞둔 현재 기준 세상에 보여지기까지 7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아직 국내 개봉 전이지만, 영화제를 통해 작품을 접한 실관람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팬덤이 유독 두텁다.

조현철 감독은 “작품 관련한 반응은 다 모니터링하는 편이지만, 칭찬이나 혹평을 마음에 담아두는 편은 아니다”라며 “다만 무주산골영화제 때 대구에서 오신 분이 이런 말을 하셨다. 다양한 연대로 활동을 하시면서 많은 분을 떠나보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위로를 받으셨다고 했다. 이 영화를 찍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고 기억에 남는 관객의 반응을 전했다.

‘너와 나’는 2016년 조현철 감독이 처음 이야기를 착안, 촬영 및 개봉을 앞둔 현재까지 무려 7년이란 기다림을 거친 작품이다. 수차례 공모에서 떨어지고 투자가 엎어진 끝에 2021년 촬영에 돌입할 수 있었다. 조현철 감독은 “워낙 작품에 우여곡절이 많았어서인지, 내가 무덤덤한 건지 이야기를 쓸 때부터 막연히 ‘이 영화는 세상에 나오게 될 영화’란 생각을 했었다”고 털어놨다.

죽음과 사랑, 기억. ‘너와 나’의 스토리를 내내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다. 조현철 감독은 ‘삶과 죽음’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을 어떻게 첫 장편 데뷔작으로 쓸 생각을 했을까.

조 감독은 지난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너와 나’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게 된 계기로 2016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개인적 경험이 있었다고 털어놨던 바 있다. 조 감독은 이에 대해 “모든 창작자가 작품을 만들 때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주변의 이야기들로 생각을 엮어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면서도, “저 또한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2016년에 개인적 사고를 겪었다. 그 사고를 계기로 삶이나 죽음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 이후 사회적으로나 여러 방면에서 2016년이 특히 이상한 해였던 것 같다. 죽음을 떠나 사회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전반적인 환경 면에서 세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그 변화 속에서 우리 영화를 진행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그러시겠지만 크고 작은 아픔을 안고 사시지 않나. 저희 영화는 그런 점에서 특히나 더 스태프들나 배우들이 아픔을 안고 시작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세미’(박혜수 분)와 함께 이 영화의 스토리를 이끄는 ‘하은’(김시은 분)이란 캐릭터는 소중한 것을 잃고 남겨진 사람의 슬픔과 기억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조현철 감독은 ‘하은’으로 대표되는 이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너와 나’의 이야기를 착안하게 됐다. 그는 “제가 하은이로 대표되는 사람들을 위로하겠다고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이들의 이야기를 쓰며 위로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며 “이 이야기에서 오는 힘이 그런 것이었던 거 같다. 제가 이 영화를 준비하며 위로받은 만큼 관객들이나 함께 참여한 사람들이 똑같은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개인적으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변화했다고도 털어놨다. 조현철 감독은 “사실 2016년 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는 스스로 많이 개인적인 사건들로부터 가까웠던 시점이라 감정적 널뛰기를 많이 했다”며 “깊숙한 감정 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여기서 빠져나오다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에 얽힌 감정 같은 것들, 정말로 구체적인 사실들이나 진실들에 파묻혀 있기보다는 좀 더 넓은 시선을 갖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너와 나’에 개인적인 죽음과 함께 세월호 참사 등의 사회적 비극을 함께 녹여낸 취지도 밝혔다. 조현철 감독은 “제가 2016년 개인적 사고를 겪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을 때 먼저 느낀 감정이 공포였다”며 “그런데 공포 이면, 삶의 본질에 대한 생각도 함께 찾아오더라. 그때 느꼈던 세세한 감정들, 저희가 아주 커다란 숫자로만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어떤 것에 세세히 감정들이 하나하나 들어있었다는 하니까 그 일이 다르게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또 “왜 이걸 굳이 끄집어내서 기억하나 말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제 의지를 떠나서 이 일을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출을 하면서는 꿈과 현실, 너와 나, 과거와 현재 미래, 등 명확히 개념이 분리되어 있는 단어들의 경계를 지우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평소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의심하지 않는 개념들의 경계를 조금은 흐뜨려놓고 싶었던 것 같다. 꿈과 현실이 모호하게 표현됐으면 했다”며 “이 영화의 제목은 2013년 친구가 ‘너와나’란 일본의 만화책을 소개해준 적이 있다. 그 만화를 읽진 않았지만 제목을 듣는 순간 예감을 했던 것인지 언젠가 이 제목을 언젠가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되돌아봤다.

조현철 감독은 ‘너와 나’에서 여고생들의 삶과 행동들을 실감나게 그리고자 직접 입시학원을 2달간 취재하기도 했다. 그는 “기존 콘텐츠가 다룬 10대 학생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그대로 따라하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복합적이고 미우면서, 사랑스럽고 슬프지만 웃기기도 한 이런 다채로운 면들이 중요했다”며 “캐스팅할 때도 그런 점에서 배우 자체가 지닌 생동감을 가장 중시했다”고 떠올렸다. 실제 고등학생들을 관찰해본 소감에 대해선 “처음에는 그들이 되게 낯설고 먼 세계처럼 느껴졌다. 근데 계속해서 보다 보니 사실상 나와 별다를 게 없더라”며 “말투와 웃음, 장난을 치는 행동들이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워낙 제가 여자인 친구들도 많고 주변 지인들도 거의 다 여자이기도 하고. 제 성향상 비슷한 것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영화 속 사랑의 주체를 두 여고생을 설정한 취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조 감독은 “저는 이게 이상하다. 이 이야기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었다면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와 여자의 사랑도 제겐 마찬가지”라며 “저에게는 세미와 하은의 사랑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세미와 하은을 연기한 박혜수, 김시은을 향한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박혜수의 연기에 대해선 “혜수 씨는 지금까지 연기로든 어떤 면으로든 제가 경험했던 연기자들, 모니터로 지켜봤던 연기자들 중 가장 연기를 잘 하는 사람 같다”며 “기술적인 의미가 아니라 이 배역을 임하는데 있어서의 태도가 그렇다.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이 인물을 표현할지의 관점에서 뛰어난 사람이다”라고 전했다. 또 “자신이 납득이 안되고 감정적으로 묻어나오지 않으면 연기를 못하는 사람인데 그런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며 “이 사람이 가진 영혼이 영화에 그대로 보여지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시은에 대해서는 “천재인 것 같다. 동물적이면서, 시나리오에 담지 못한 세세한 부분까지 놀랍도록 잘 표현해줬다”며 “영화계에서 몇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그런 배우”라고 칭찬했다.

향후에도 새로운 작품으로 연출에 도전해볼 생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도전’이라 이야기하기엔 거창한 것 같아요. ‘너와 나’란 작품이 저를 부르는 느낌이었던 것처럼 그런 느낌이 살면서 앞으로는 두 세 번 정도 더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너와 나’ 촬영 당시 불거졌던 박혜수의 학폭(학교폭력) 의혹을 접했던 심경과 굳은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박혜수의 학폭 논란은 2021년 이 영화의 투자가 극적으로 결정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 발생했다. 당시 박혜수와 소속사 고스트스튜디오 측이 사실무근이라 주장하며 진실 규명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여론 악화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너와 나’ 팀은 박혜수를 끝까지 믿고 그와 팀으로 함께했다.

조현철 감독은 “저희는 서로를 사랑했다. 모든 스태프들도 그랬다”며 “저희 내부적으로도 회의를 거쳤지만 우린 이미 박혜수가 좋은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사실 기사로 나가는 것만 보고 그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판단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저희가 보고 경험한 박혜수가 있었고, 그런 점에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문은 얼마든지 과장되고 왜곡될 수 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로 인해 동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적도 있었고 그걸 저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이 업계로 인해 (당사자가) 폐기처분된 상품 취급을 받더라도 저는 이 사람의 행동, 보여준 모습, 자기는 무고하다며 눈물을 흘리며 했던 주장을 믿었다. 그래서 영화가 받을 반응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연출자로서 바라본 배우 박혜수의 강점과 매력도 언급했다. 조현철 감독은 “혜수 씨를 처음 만난 건 이 영화를 제작하기 약 1년 전부터다. 그 때부터 이미 꽤 많이 만나고 있었다”며 “박혜수 배우가 얼마나 용기와 강단이 있고 좋은 사람인지 겪어봐서 알고 있었고 그 후 영화 투자가 결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슈가 터진 걸로 기억한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 사람의 이야기를 눈앞에서 듣고, 그 전에 제가 경험해온 그의 모습도 있기에 (계속 함께하기로 결정하기까지가) 자연스러웠다”고 부연했다.

한편 ‘너와 나’는 10월 25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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