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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보다 다소 힘이 떨어진 목소리, 외모도 과거과 비교해 확연히 나이가 들어보였다. 그러나 ‘천상의 목소리’로 일컬어졌던 미성은 여전했다.
1957년 폴 사이먼과 함께 톰과 제리를 결성했고, 1962년 사이먼 앤 가펑클이라는 이름으로 팀을 재결성해 팝의 전설로 떠올랐던 아트 가펑클이 14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1980년대, 영화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 ‘졸업’의 OST로 수록된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SOUND OF SILENCE)’, ‘미시즈 로빈슨(Mrs. ROBINSON)’ 등을 듣고 빠져들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전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당시 구매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베스트 앨범 카세트 테이프를 같은 학급 친구들이 빌려가 돌려 듣다 늘어다나 못해 끊어졌다. 잔잔했지만 공연장 객석의 3500여 관객들에게 깊숙이 스며드는 가펑클의 목소리는 25년도 더 지난 과거를 회상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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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펑클은 ‘앤드 소 잇 고스(AND SO IT GOES)’로 공연의 문을 열었다. ‘에이프릴(APRIL)’, ‘스카보로 페어(SCABOROUGH FAIR)’,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등 사이먼 앤 가펑클의 명곡들로 공연을 채웠다.
피아노도 없이 반주는 마지막까지 기타 하나였다. 가펑클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공연이 충분히 풍성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올해 9살 된 늦둥이 아들이 1살 때 이야기를 담은 시도 낭독했다. 가펑클은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를 부르기 전 “아리랑 아리랑”이라고 흥얼거리기도 했다. “난 평생 모든 창조물을 위해 노래해왔다. 1951년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한 게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새소리를 낸다고 했다”며 소개한 그의 음악 인생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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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는 또 공연의 앙코르 무대에도 아버지와 함께 올랐다. 관객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공연장을 나섰다.
공연장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베스트 앨범 CD를 구매했다. 집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오랜만에 그들의 음악을 다시 들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좋은 음악의 힘, 말 그대로 ‘귀가 호강한 공연’의 여운을 만끽했다.
(사진=유니온스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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