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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애의 씨네룩]'미나리' 낯선 땅에 뿌리내린 희망, 가족

박미애 기자I 2021.02.19 14:58:49
‘미나리’ 메인 포스터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미나리를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김치에도 넣어 먹고 찌개에도 넣어 먹고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순자 대사)

18일 국내 언론에 첫 공개된 ‘미나리’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원더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나리’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남부의 아칸소라는 시골 마을로 이주한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 영화는 인적 드문 들판에 덩그러니 놓인 콘테이너하우스에 한국인 가족이 도착하며 시작된다. 아빠 제이콥은 “애들도 한번쯤 아빠가 뭔가 해내는 거 봐야 할 거 아니야”라며 이곳에서 농장일을 강행하려 하고, 엄마 모니카는 심장 약한 어린 아들에 대한 염려로 인근에 병원도 없는 외딴곳에 살게 된 것이 영 마땅찮다. 결국 두 사람은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누나 앤과 막내 데이빗은 그 모습을 놀란 토끼 눈처럼 동그랗게 뜨고 지켜본다.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알려졌다. 영화는 어쩌면 평범하지 않은 이민자 삶의 애환을 그리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공유되는 감정들, 이를테면 아빠 엄마의 다툼으로 냉랭해진 분위기와, 그로 인한 아이들의 불안 초조 긴장으로 누구든 이해할 법한 감정들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더불어 가족은 시련을 겪으며 절망하고 갈등도 빚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더 결속을 다지고 단단해짐을, 영화는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을 가진 미나리를 통해 보여준다. ‘미나리’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을 했지만 ‘가족의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테마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아름다운 동화 같은 작품이다. 요즘처럼 고립과 단절된 세상에서 ‘미나리’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 작지 않다.

‘미나리’서 할머니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
‘미나리’로 20여개의 트로피를 품에 안은 윤여정에 해외 평단과 언론이 주목할 만했다. 극중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다”는 데이빗의 투정처럼, 딸을 위해 고생길을 마다하지 않고 미국에 홀로 건너온 순자 역의 윤여정은 이번 영화에서 구수하면서 자유분방한 매력의 할머니로 서사를 단단히 받친다. 특히 데이빗을 향한 순자의 일방통행 사랑이 담백한 서사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데이빗 역을 연기한 앨런 킴의 서툰 모습도 사랑스럽게 만드는 윤여정의 마법 같은 연기를 확인할 수 있다.

‘미나리’는 한국인 가족의 이민 생활을 소재로 했지만 ‘문라이트’ ‘노예 12년’으로 오스카 작품상을 낸 할리우드 제작사 플랜비B에서 제작한 미국영화다. 한국어 대사가 많다는 이유로 골든글로브 작품상의 자격에서 배제되며 논란이 일었다. 골든글로브의 ‘미나리’ 홀대 논란은 오히려 오스카 수상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미나리’는 현재(18일 기준)까지 평단과 언론의 찬사 속에 전 세계 영화제 및 영화상에서 68개 수상, 153개 노미네이트를 기록하며 다가오는 오스카에 청신호를 켰다. 최근 주요 부문 후보를 제외하고 발표하는 예비후보에 2개 부문 이름을 올리며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

별점 ★★★★(★ 5개 만점, ☆ 1개 반점). 감독 정이삭. 러닝타임 115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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