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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숙 "우울증 앓을만큼 열정 쏟은 '허스토리',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어요"(인터...

고규대 기자I 2018.06.12 15:51:54
영화 ‘허스토리’에서 관부재판 증인석에 나선 정길 역을 연기하는 배우 김해숙.
[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기자] 지난 7일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 첫 시사회 현장.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배우 김해숙은 민규동 감독의 우려 섞인 인사말을 들었다. “시사회 끝나고, 또 아프시면 큰일 나는데...” 함께 모였던 이들은 영화 촬영 직후 김해숙의 모습을 떠올렸다. 종군위안부 배정길 역에 몰두하다 우울증까지 걸렸다. 병원 진단을 받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밝은 작품을 찾기도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길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김해숙은 “감독님 우려대로 시사회 끝나고 정신이 없었어요”라면서 “뭔가 부족한 거 같아 마음을 추스르느라 인터뷰하는 순서에도 한참 있다 나갔어요”라고 회상했다.

“연기만 하면 되지, 왜 캐릭터에 그렇게 푹 빠지느냐고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가 다 실존 인물이시고 게다가 아픔을 겪으시다 돌아가신 분들이잖아요.”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 즉 관부를 오가면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종군위안부 생존자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관부재판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내 아내의 모든 것’ 등을 만든 민규동 감독의 작품으로 27일 개봉한다. 김해숙은 오랜 기간 남몰래 종군위안부의 아픔을 삼켜오다 문정숙(김희애 분)의 설득 끝에 재판에 참여하는 배정길 할머니 역할을 맡았다. 김해숙은 “그 분(종군위안부)들에게 위안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많은 걸 얻어가는 영화였다”고 소감을 말했다.

“민규동 감독의 작품을 좋아해서 출연을 결정했죠. 그런데 종군위안부 영화라는 거예요. 괜히 한다고 했나, 해낼 수 있을까, 도망가면 안되나, 무서웠어요. 그 즈음에 ‘아이캔스피크’라는 종군위안부 소재도 나오는 거예요. 그때 저에게 용기를 준 게 시나리오의 진정성이었죠. 부끄럽지만 관부재판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거든요.”

연기 경력 44년, ‘국민 엄마’로 불리는 그에게도 ‘허스토리’는 도전이었다. “영화가 여성으로서의 용기, 어찌보면 용기있는 분들의 법정드라마라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른 종군위안부 소재와 다른 관점이 있어요. 흔한 회상 신도 안 넣었어요. 다시 말해 현재의 삶에서 시작한 영화죠. 여인들이 누구도 알 수 없는 아픔을 겪고, 그 아픔을 안고 세상에 나오고, 관부재판의 증인석에 서기까지 삶으로 이어지죠. 과거의 삶보다 현재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허스토리’의 장면들.
김해숙은 KBS 어린이합창단에서 소속된 적도 있어 성악을 전공하려 했다. 부모님은 무남독녀인 그가 음악 하는 것을 반대했다. 대입 재수생 시절 친구 따라 우연히 탤런트 공채 시험을 봤다가 1974년 MBC 7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에 입문했다.

“젊을 때 별명이 내숭쟁이였어요. 지금처럼 수더분한 저를 보면 상상하기 어렵죠? 새침한 척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던 거 같아요. 40대가 넘어서면서 말도 많아지고 수다가 늘었어요. 맛있는 음식 먹는 재미 빼놓고는 다른 취미도 없이 연기에만 매달리며 사는 거 같아요. 참, 심심하죠? 하하”

김해숙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드는 왕성한 연기 욕심을 보여준다. 영화 ‘희생부활자’(2017)·‘재심’(2017)·‘아가씨’(2016)·‘암살’(2015) 등 영화 장르와 캐릭터도 다양하다. “안 해 본 캐릭터에 대한 갈망이 있어” ‘007’ 시리즈에서 MI6 국장 역할로 나오는 주디 덴치 같은 캐릭터에도 매력을 느낀단다.

“영화의 마지막 독백 신이 기억에 남아요. 달달달 대사를 외워서는 안 되는 신이었죠. 열일곱 살 내 모습으로 돌려달라, 그리고 인간이 되어라, 한 여자의 인생이 들어가 있는 대사였죠. 종군위안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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