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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의 "TV에선 배우가 끼를 감춰야 할 때가 많죠"

조선일보 기자I 2008.09.12 10:59:07
[조선일보 제공] 살짝 처진 눈꼬리, 둥그스름한 턱 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콧날, 요즘 나오는 드라마 주인공 중 이렇게 밋밋한 배우가 있었던가? 이웃집 청년 같은 SBS 금요 드라마 '신의 저울' 송창의(29)는 뾰족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선량한 외모다. 그래서 바닥을 알 수 없는 나락에 떨어져 절규하는 그의 표정은 절실한 공감을 자아낸다. 그가 연기하는 장준하에게는 3가지 끔찍한 불행이 한꺼번에 덮친다.

여자친구가 다른 사람에게 살해되고, 억울하게 그 혐의를 받은 자기 대신 동생이 거짓 자백으로 감옥에 들어가며, 어머니는 보험금으로 동생 변호사비를 구하겠다고 달리는 트럭에 몸을 던져 목숨을 버린다. 당장 미쳐 버릴 법한 상황. 그런데 장준하는 직접 진범을 잡겠다며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검사가 될 준비를 한다. 매우 드라마적인, 돌려 말하면 지독하게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 같은 배우 송창의가 중심에서 진솔한 연기를 보여주기에 시청자들은 저항감 없이 몰입한다. 방송 2회만에 시청률 10% 돌파.

"제가 실제 장준하 자리에 있었다면 그냥 무너져 내렸을 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어차피 더 떨어질 데도 없는 인생인데 죽기를 각오하고 1년 365일 밤 새가며 공부하면 사시를 패스하지 않을까?"

그는 "극중 상황이 너무 절박해서 미리 계산해서 연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며 "다만 지나치게 과장된 모습으로 비치지 않도록 조금은 신경을 썼다"고 했다. 이 드라마의 큰 줄기는 법정 스릴러. 하지만 돈도 힘도 없는 약자들에게 가혹한 사회 현실에 대한 고발적 성격도 짙다.

"경찰, 검찰 분들 힘들게 고생하시지만 죄를 져도 돈 있는 사람은 피해가고 돈 없는 사람은 정말 기막힌 경우가 없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란 말이죠. 없는 분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주는 드라마가 될 것 같습니다."

"선한 인상이 당신 연기의 벽이 될 것 같다"고 묻자 그는 "대중에게 쾌감을 주는 것은 배우의 의외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추동력이 될 것 같다"고 받아쳤다. "아직까지는 의외성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했죠. 하지만 저는 개성 있는 마스크를 가진 배우들보다 더 큰 잠재력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창의는 고교시절 연극반을 이끌며 연기자에 대한 꿈을 키웠다. 원래 1학년 때는 '엘리트 서클' 방송반에서 아나운서로 활약했으나 학업 성적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 2학년이 되면서 연극반으로 옮겼다. 연출자를 겸했던 그는 외모와 달리 '호랑이 선배'였다. "당시 후배들이 나태한 모습을 보이면 줄 세워 놓고 방망이로 볼기를 쳐가며 연습시켰다"며 웃었다. "그래도 요즘 자주 연락이 와요. 그때 그 후배들한테요."

그는 오만석, 신성록, 엄기준처럼 뮤지컬에서 먼저 빛을 본 뒤 안방극장으로 넘어온 연기자다. '블루 사이공', '헤드윅' 등의 대작에 출연했다. 그는 "뮤지컬에서는 배우가 자신의 끼를 마음껏 보여주는 게 중요하지만 TV에서는 오히려 그 끼를 감춰야 할 때가 많아 다르다"고 했다. 그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지난 해 SBS에서 방송돼 시청률 30%를 넘겼던 '황금신부'. 공황장애를 앓다가 베트남 신부와 결혼한 준우 역. 성실한 연기가 돋보였다. 그는 "공황장애 연기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그런 증상을 갖고 계신 분들이 극중 준우에 동화돼 힘을 얻었다는 말씀을 많이 전해주셨다"고 했다. 튀지 않아 더 아름다운 배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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