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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테마록]학생야구 좌타자 득세,그 이유와 전망

정철우 기자I 2009.02.04 10:40:09
▲ LG 신인 오지환은 유격수로는 드물게 좌타석에 들어선다. [사진제공=LG트윈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거 참. 그새 좌타자들이 또 늘었더라구요." 지난 1월부터 제주도와 남해를 거쳐 여수로 옮겨 온 고교팀들의 연습경기를 지켜본 한 스카우트가 한 말이다.

그는 "몇년 전부터 왼쪽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젠 이와 같은 경향이 너무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는 절반 이상, 테이블 세터와 클린업 트리오 등 쓸만한 선수만 놓고 보면 70%까지 좌타자가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날 갑자기 왼손잡이들의 DNA가 야구를 하도록 이끌었을리는 만무한 일. 아마야구를 휩쓸고 있는 좌타자 열풍은 왜, 어떻게 진행돼 온 것일까.

▲우투 좌타 전성시대
단순히 좌타자들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타고난 왼손잡이가 아닌 선수들 중에서도 좌타자를 택하는 선수들이 부쩍 많아진 것이 요즈음 학생야구다. 오른손으로 던지고 왼손으로 치는 우투 좌타는 선천적 좌타자라기 보다는 후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예가 두산 김현수다. 김현수는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지만 타석에선 좌타자로 바뀐다. 어린 시절부터 좌타자로 키워진 것이다.
 
그나마 김현수는 좌.우가 상관 없는 외야수다. 그러나 왼손 잡이와 거리가 먼 포지션에서도 좌타자들이 크게 늘어난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09년 LG 1차 지명 선수인 오지환은 포지션이 유격수다. 야구 잘하는 왼손잡이 유격수를 본 적 있는가.
 
물론 오지환도 수비땐 오른손을 쓴다. 그러나 그는 좌타자다. 오지환 역시 후천적으로 좌타자가 된 케이스다. 유격수를 보며 좌타석에 들어서는 선수는 매우 찾기 힘들다.
 
만약 오지환이 기대대로 성장해 골든글러브를 타게 된다면 유격수 부문 첫 좌타자로 기록되게 된다.
 
유격수 못지 않게 왼손잡이와 거리가 먼 포수 중에서도 좌타자가 많아졌다. 동산고 최지만, 동성고 문동욱이 포수면서 좌타자다. 박철우 전 KIA 코치의 아들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고려대 포수 박세혁도 왼쪽 타석에서 타격을 한다.
 
▲좌타자 선호, 왜?
손차훈 SK 스카우트는 이와 같은 현상을 이렇게 진단했다.
 
"요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선수들은 90년 초.중반 뜨거웠던 프로야구의 영향으로 야구선수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야구에 대한 지식과 프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아갈 무렵 야구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배경이 좌타자 대량 배출의 한 원인이다."
 
프로가 무언지 알고 시작한 야구이기 때문에 좌타자가 많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손 스카우트는 "야구에서 좌타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알고 시작했다는 의미다. 특히 거포형 보다는 스피드 형 선수들이 1루에 조금이라도 빨리 닿을 수 있는 좌타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고 답했다.
 
또 다른 스카우트는 "야구 저변이 엷어진 것도 한 원인이다.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려다보니 초등학교나 리틀 야구 지도자들이 운동신경이 좋은 선수들에게 좌타자를 권하고 지도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당장 승부에 쓰기 좋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종합해 보면 이렇다. 우선 좌타자는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팀에서 자리를 잡거나 입지를 굳히는 것이 유리하다. 90년대엔 더욱 그랬다. 학부모나 학생 선수들이 솔깃할 수 있는 소재였다.
 
게다가 당시엔 A급 좌완 투수가 많지 않았고 투수 분업화도 걸음마 단계였다. 90년대 야구를 보고 자란 선수들에게 좌타자는 좋은 롤 모델이었던 것이다.
 
또한 수준급 좌타자가 포함돼 있는 팀은 상대적으로 경기를 풀어가기가 수월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지도자들이 운동신경 좋은 선수들을 후천적으로 좌타자로 대거 키워내고 있다는 것이다.
 
▲좌타자 홍수=좌투수 득세?
좌타자들이 지금처럼 계속 늘어날 경우 한국 프로야구의 지형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좌완 투수들이 앞으로 상당 기간동안 귀한 대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드시 특급이 아니더라도 오래도록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런 경향은 프로야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최다 경기 출장 베스트 3는 1위 조웅천(SK)을 빼면 모두 좌투수(SK 가득염, LG 류택현)가 차지하고 있다.
 
김영수(KIA) 김경태(LG) 등 최소 두차례 이상 방출을 경험한 선수들도 여봐란 듯 새둥지를 틀 수 있었다. 그만큼 좌완 투수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좌타자들에게 파워보다 스피드를 강조하는 경향도 좌투수의 득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좌투수를 상대하는 좌타자의 단점이 더욱 도드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좌투수에게 좌타자가 약한 원인은 시각적(투수의 손이 잘 보이지 않고 던진 공은 타자에게서 멀게 느껴짐) 경험적(상대적으로 좌투수를 겪어본 경험 부족) 요인을 들 수 있다. 
 
여기에 또 한가지. 심리적 요인이 있다. 김성근 SK 감독은 "좌타자는 치는 것 보다 치고 1루로 뛰어 나가려는 심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좌투수에 약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 바 있다.
 
힘껏 치는 것 보다 1루로 달려나가려는 의식이 강해 몸이 빨리 열린다는 건 가뜩이나 치기 어려운 좌투수의 바깥쪽 승부구를 더욱 멀리서 치게된다는 의미가 된다. 좌타자로 대성을 꿈꾸는 선수라면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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