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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액션 장인 정우성의 30년 내공·신인 감독의 패기[봤어영]

김보영 기자I 2023.08.10 09:41:38

정우성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보호자'
'정우성스럽게' 비튼 액션 영화 클리셰의 재구성
개성 넘치는 액션 시퀀스…폭력에 맞서는 방어 액션
부족한 캐릭터 서사·투머치 올드한 대사는 아쉽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30년차 톱배우 정우성의 액션 내공과 평화를 지향하는 인간 정우성의 따뜻한 뚝심을 녹인 감성 스타일리시 액션의 탄생. 정우성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보호자’다.

※본문에 영화 내용과 관련한 ‘스포일러’로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보호자’는 10년 만에 출소해 몰랐던 딸의 존재를 알고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수혁(정우성 분)과 그를 노리는 이들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다. 감독 정우성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정우성을 비롯해 김남길, 박유나, 김준한, 박성웅 등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출연해 관심을 모은다.

폭력 조직의 에이스로 몸을 담았던 주인공 수혁은 자신의 보스와 조직원들을 죽인 살인죄로 10년의 형기를 마친 뒤 출소한다. 10년 만에 자신의 옛 연인 민서(이엘리야 분)를 만난 수혁은 자신과 그녀 사이에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민서는 수혁에게 단호한 진심을 전한다. 당신이 소중한 딸의 아버지로 앞으로의 삶을 함께하고 싶다면, 딸이 부끄럽지 않을 평범한 삶을 살 것을 약속하라고. 사실 수혁은 구치소에서의 지난 10년간 자신이 선택했던 폭력으로 얼룩진 인생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폭력의 세계를 벗어나고 싶던 수혁에게 ‘민서’의 한 마디는 계시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수혁은 몸담던 조직의 새로운 보스가 된 응국(박성웅 분)을 찾아가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 부탁한다. 조직을 나가려는 이유가 ‘평범한 삶을 원하기 때문’이란 이유에 공감하지 못한 응국. 응국은 수혁이 구치소에 있는 동안 조직의 2인자가 된 성준(김준한 분)에게 수혁이 무슨 이유로 그런 선택을 내린 건지 동태를 감시할 것을 지시한다. 반면 성준은 어렵게 2인자 자리까지 올랐지만, 10년 전 에이스인 수혁과 여전히 비교당하며 응국의 완전한 신임을 못 받고 있다. 그런 상황에 수혁이 돌아오자 오랫동안 눌러왔던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다. 성준은 응국의 동의 없이 조용히 수혁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힘으로만 처리하기는 어려워 일명 ‘세탁기’라 불리는 2인조 해결사 우진(김남길 분)과 진아(박유나 분)에게 청부살인을 의뢰한다. ‘보호자’는 이처럼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세력의 추격에 설상가상 딸까지 납치된 상황을 수혁이 헤쳐나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재 및 설정만 놓고 보면 지극히 단순하고 흔히 쓰이는 클리셰 범벅이다. 하지만 ‘보호자’는 클리셰에 ‘정우성스러움’을 가미해 개성을 불어넣었다. 선역, 악역을 불문 ‘액션’을 표방하는 영화라면 당연시 여겨지던 ‘폭력’의 코드를 뒤엎고자 한 감독 정우성의 도전적 시도가 특히 돋보인다.

뒤늦게 평범한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수혁은 그렇게 벗어나고 싶던 폭력의 세계에 어쩔 수 없이 노출됐지만, 나름의 숙명을 지키고자 최대한 폭력을 쓰지 않으며 위기를 헤쳐나간다. 성준과 2인조 해결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딸까지 납치됐지만 폭주하며 살육을 저지르지 않는다. 수혁은 대신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며 집요히 자신을 쫓는 무자비한 빌런들의 공격을 피하고 따돌리는 데 방점을 둔다. 그래서인지 ‘타격’ 대신 ‘방어’에 집중한 다양하고도 기발한 액션 시퀀스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30년차 톱배우로 살며 수없이 많은 액션 영화에 출연해온 정우성의 ‘액션 내공’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 중 사제폭탄과 사제총기를 사용하는 2인조 해결사의 무기 액션에 대비되는 수혁의 맨몸 액션, 복도식 아파트 등 지형지물, 의자 등 주변의 도구들을 활용해 위기를 피하는 수혁의 날쌘 움직임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그 중 백미를 꼽으라면, 수혁이 응국이 영업을 준비 중인 새 호텔 입구를 자동차를 타고 돌진하며 벌어지는 무한 스핀 드리프트 액션이다. 끓어오르는 슬픔과 화를 숨기며 씩씩대는 성난 황소처럼, 수혁은 차에 몸을 숨긴 채 자동차를 한 자리에서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회전시킨다. 그게 수혁이 분노를 표현하는 최대 수위이자, 자신을 향해 뛰어드는 빌런들의 공격을 막아서는 가장 위협적 방식이다.

평소 난민 등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며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몸소 실천했던 인간 정우성의 신념이 영화에서도 묻어난다. 아직 자신을 ‘아빠’라 여기지 않는 딸 ‘인비’의 생각을 존중하는 수혁, 위기 상황을 나름대로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보려는 ‘인비’의 행동을 통해 한 인격체로서 ‘아이’를 그리려 한 숨은 노력도 느껴진다.

자멸하는 건 오히려 빌런들이다. 냉정한 ‘폭력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온 빌런들은 ‘수혁’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처리하려 각자 움직이다 자신들끼리 부딪히고 파멸에 이른다. 폭력과 욕망이 불길처럼 번져 서로를 해친 빌런들은 죽고, 그 불길에 몸을 함께 던지는 대신 홀로 물속에 뛰어들기를 택한 수혁은 살아남는 결말에선 블랙코미디의 요소도 읽힌다.

이 영화를 보며 정우성이 영감을 얻었을 법한 명작들의 흔적을 발견해나가는 재미도 있다. 폭력의 세계에 몸담았던 주인공이 출소 후 새 삶을 꿈꾼다는 설정은 알 파치노 주연의 ‘칼리토’(1994)가 연상이 되고, 유덕화 주연의 홍콩 영화 ‘천장지구’(1990)가 떠오르는 대목도 있다. 딸을 구하러 나서는 아버지의 설정은 ‘테이큰’을,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시원한 추격 액션 과정은 ‘트랜스포터’, ‘존 윅’ 등 작품들이 떠오른다.

촬영 구도와 영상의 색감, 개성있는 음악 사용(Gotye-Somebody That I Used To Know의 전주를 샘플링한 듯하다) 등 세세한 요소들에 공을 기울인 흔적이 느껴진다. 다만 입봉작으로서 장면의 연결고리, 편집의 흐름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점은 아쉽다. 러닝타임이 97분으로 길지 않은데도 중반부의 흐름은 다소 루즈하게 느껴진다.

가장 아쉬운 건 캐릭터와 대사다. 민서와 인비, 수혁과 인비 등 부모 자식을 넘어 진아와 우진의 관계처럼 영화에 다양한 ‘보호자’의 관계를 녹여낸 점은 눈에 띈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전사가 부족하다 보니 ‘수혁’을 제거해야만 하는 빌런들의 동기에 납득이 어렵다. 그나마 전사에 얽힌 장면이 포함된 주인공 ‘수혁’의 행동도 전사가 다소 짧고 급하게 추가돼 설득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다만 폭력세계의 잔혹함과 아이의 순수함을 동시한 겸비한 캐릭터 ‘우진’을 연기한 김남길의 열연과 활약은 이 영화에 그나마 숨통을 불어넣는다. 내려놓고 자유분방히 캐릭터에 뛰어드니 순수함과 함께 ‘광기’까지 느껴진다. 해맑은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캐릭터로 수혁을 위협하면서도, 중간중간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와 대사로 어두운 극의 분위기에 밸런스를 준다. 그런 김남길의 톤을 옆에서 차분히 잡아준 ‘진아’ 역의 막내 박유나의 열연도 큰 몫을 해냈다. 두 캐릭터의 전사가 좀 더 드러났다면 좋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은 많다. 그럼에도 입봉작으로서 감독 정우성의 정체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보호자’의 첫 출발을 응원한다.

8월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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