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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방송에서는 사계절 내내 같은 일만 일어나던 조용한 북현리가 웬일인지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북적였다. 혜천고 50주년 총동창회로 각지에 흩어졌던 혜천고 선후배, 동창들이 모였기 때문.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고 오랜 친구와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자리에 모두의 얼굴에는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이날 오영우(김영대 분)는 우연히 굿나잇 책방에서 해원을 마주한 뒤로 자꾸 해원의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영우는 해원에게 “나 역시 전부 다 그대로라고. 마음이”라는 고백과 함께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넸다.
해원에게 영우는 참 고마운 존재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살인자의 딸’이라는 소문이 학교에 퍼졌고, 이 때문에 해원의 곁에는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겨울 같던 나날을 홀로 버텨온 해원 앞에 혜천고 탑이었던 영우가 다가왔다. 모두의 시선을 몰고 다니는 학교 탑의 관심이 계속되자, 여학생 두 명이 해원에게 호기심을 보였고, 먼저 시내에 놀러 가지 않겠냐는 제안도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그녀의 곁에는 다시금 친구들이 모일 수 있었고 해원은 웃음을 되찾았다.
그러나 영우에 대한 해원의 감정은 고마움이 끝이었다. 그래서 호감을 표시하며 다가오는 그에게 “네가 지금 나에 대해서 어떤 감정이든 나 궁금하지 않아. 상관없어”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자신의 마음이 겨울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몰랐던 해원은 사람의 온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호두하우스로 돌아오고 나서야 알게 됐다. 자신이 많이도 추웠다는 사실을. 또 그것을 알게 해 준 사람이 조용히 자신의 밤길을 비춰주고, 불이 나간 가로등 전구를 몰래 갈아주고, 자신을 위하는 마음에 털신을 선물했던 은섭이었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 길로 해원은 은섭을 찾아 나섰다. “소원은 어둠 속 촛불을 불면서 이루어질 수 있다던데”라는 장우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어둠의 순간 소원을 빌어본다면 다시 불이 켜졌을 때 그 소원이 이뤄지지 않을까’라는 바람에서 시행된 소등식을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10초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순간, 거짓말처럼 은섭이 다정하게 “해원아”라고 불렀고, 그 부름에 해원은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주위를 밝히는 모든 불이 암전됐고 해원은 고요한 적막 속에서, “네가 좋아. 임은섭”이라고 고백했다. 황혼이 저물기 전, 황혼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면 그 사랑이 반드시 이뤄진다 믿는 안데스 산맥 어딘가의 부족 남녀 말대로 황혼을 향해 고백한 해원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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