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베이스볼 테마록]잠실구장에 대한 두산과 LG의 시각차

정철우 기자I 2009.02.11 10:51:49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LG가 11일 홈경기에 한해 잠실구장 좌/우 중간 펜스를 4m씩 당기겠다고 발표했다.

LG가 잠실 구장 규격을 줄여보겠다고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재박 감독은 2007 시즌을 앞두고 김경문 두산 감독에게 "잠실 구장 외야펜스를 당기자"고 제안한 바 있다.

당시 김경문 감독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내부 회의 과정에서 반대로 의견을 정리했다. 한지붕 살림을 하고 있는 두산과 LG는 왜 같은 구장을 놓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기록으로 증명되는 스피드 차이
두산은 8개구단 중 가장 빠른 팀이다. 두산의 창조적인 주루플레이는 '발야구'가 얼마나 위협적일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빠른 발을 살리기 위해선 보다 넓은 구장이 나을 수 있다. 공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을 수록 조금 더 달릴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LG는 스피드에서 두산에 미치지 못한다. 빠른 선수가 부족하다기 보다는 빠르고 잘 치기까지 하는 선수가 많지 않다. 좀 친다 싶으면 발이 느린 경우가 많다.
 
2008시즌 두산은 189개의 도루를 성공시켰고 LG는 111개를 기록했다. 그러나 LG가 이대형에게 집중된 수치라면 두산은 골고루 분산돼 있다는 것이 차이다.   
 
사진=두산 베어스

두산 '발야구'는 이제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팀 전체가 빠르게 한 베이스 더 가는 야구를 위해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반면 LG는 달리는 야구에는 약점이 드러났다.
 
무사 1루 혹은 1,2루 상황만 놓고 봐도 두 팀의 특성은 크게 엇갈린다. 두산은 무사 1루 혹은 1,2루시 우측으로 타구를 보내는 비율(팀배팅)이 28.2%다. LG의 23.1%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굳이 번트가 아니더라도 주자의 진루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에서 앞선다는 의미다. 여기에 도루까지 더해지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두산은 무사 1루 상황에서 희생번트를 21번(LG 45번)밖에 대지 않았지만 득점은 20점으로 8개구단 중 최고였다. 또한 LG와 비교해봐도 타율(.327 VS .277) 출루율(.385 VS .322) 장타율(.475 VS .371) 모두 크게 앞선다.
 
무사 1,2루는 더욱 그렇다. 번트는 LG(17개)가 두산(9개)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타율(.319 VS .189) 출루율(.373 VS .250) 장타율(.449 VS .189) 등은 모두 두산이 압도적인 수치를 보였다.
 
무사 1루나 1,2루서 번트 시도는 적고 공격 시도가 많았으며 성공률이 높았다는 것은 그만큼 발에 대한 믿음과 주자의 스피드를 이용한 타자의 맞춤 공격능력이 좋았음을 의미한다.
 
▲정신적 효과 무시 못해
현대시절 김재박 감독과 함께 생활했던 박경완(SK)은 당시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수원구장이 타자들에게 무척 유리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홈런 치기에 유리했다. 현대 선수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흔히 대전이나 대구구장을 떠올리는데 오히려 수원이 홈런치기엔 훨씬 좋았다."

현대 유니콘스는 김재박 감독의 전성기와 그 궤적을 같이 한다. 박경완의 말대로 김재박의 현대호는 홈런을 꽤 많이 치는 팀이었다.

최강 전력으로 꼽히던 2000년엔 무려 208개의 팀 홈런(역대 2위)을 기록했다. 이후 꾸준히 3위 이내의 팀 홈런을 때려내며 화력을 뽐냈다.

김 감독의 장기로 분류되는 '작전 야구'와 함께 '뻥야구'도 힘을 보탰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LG는 지난해 66개의 홈런으로 8개팀 중 7위에 머물렀다.

박경완의 말 처럼 수원구장이 홈런 치기 유리한 구장이라는 명제는 증명이 어렵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이같은 인식은 분명 플러스 요인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LG는 최근 몇년간 "유망주들의 무덤"이라고 불렸다. 좋은 자질을 갖고 있는 선수는 많은데 확실히 성장하는 선수는 적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인식 한화 감독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처음엔 '와 저런 선수가 있었어'싶던 선수들이 얼마 지나면 다 4번타자처럼 치더라. 스윙들이 다 커진다는 뜻이다. 잠실에서 홈런을 치면 얼마나 친다고..."

구장 규모에 따른 타격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바꿔말하면 '구장 규모가 작아지면...'이란 가정도 해볼 수 있다.
 
잠실구장의 좌/우 중간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홈런 숫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의 홈구장인 도쿄돔이 홈런 많은 구장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좌/우 중간이 짧기 때문이다.

잠실구장의 규격이 줄어들면 LG 선수들의 공격성향도 빛을 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김재박 감독에게도 익숙한 야구가 되는 셈이다.

두산 역시 잠실구장 펜스를 당기면 장타력 강화 효과를 노려볼 수 있다. 그러나 큰 구장에 맞춰 공격력이 잘 짜여진 만큼 LG보다는 그에 대한 필요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관련기사 ◀
☞야구협회 사무처 직원 '인사 파행 해명 요구'
☞LG 홈경기 때 잠실구장 펜스 당긴다...개장 이후 첫 축소
☞'파행 인사논란' 대한 야구협회 나흘만에 인사 일부 철회
☞'인사가 만사' 유영구 이사장의 첫 선택이 중요하다
☞KBO 2009시즌 2군 일정 확정 발표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