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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 시간에 대한 기준 생겨”
근무시간 준수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과거 촬영 시작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상처럼 일어났던 밤샘촬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스태프의 휴식, 수면 시간이 보장되는 것만으로도 드라마 제작 현장은 진일보했다. 밤샘촬영은 피로누적으로 이어져 사고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했으나 현재 그런 우려는 크게 낮아졌다. 주 68시간 근무에 맞춰 드라마를 촬영한 한 스태프는 “예전엔 촬영 기간 중 하루 2~3시간밖에 자지 못했는데 요즘은 6~7시간 정도 기본적인 수면 시간이 보장된다”며 “주 52시간이 안착된다면 더 나은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업무시간 연장시 스태프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이전에 없던 스태프 대표도 이젠 제작 시작과 함께 무조건 선정해야 하며 제작사에서 어떤 상황 발생시 스태프 대표에게 전달을 하고 소통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작자, 방송사가 시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게 가장 긍정적인 변화”라고 덧붙였다. 방송 당일까지 해당 방송분 촬영을 했던 위태로운 과거와 달리 ‘시간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촬영 시작시간이 빨라졌다. 과거 드라마는 늦으면 방송 1개월 전, 2주 전에 촬영을 시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최소 3개월 전 촬영에 들어간다. ‘생방송 드라마’가 돼서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촬영은 물론 편집에도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보니 드라마 완성도가 더 높아지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 “제작비 증가 고민”vs“노동 환경 더 변해야”
방송사와 제작사, 스태프 모두 근무시간 준수의 필요성은 인정하며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자는 데는 합의를 했다. 그러나 지상파3사,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이하 노조)로 구성된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공동협의체(이하 협의체)는 표준근로계약서의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한 협의는 아직 마치지 못했다. 근로의 시작을 집결한 시간부터 할 것인지, 실제 촬영 시작 시간부터 할 것인지부터 임금, 초과 수당 등 협의해야 할 항목이 많고 이 항목에 대한 입장차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세부 내용에 대한 협의는 시간을 갖고 차분히 검토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 제작 일수가 늘어나고 인건비와 장비 및 장소 임대료가 늘어나며 제작비가 인상한다. 배대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주 68시간이 도입되기 전 16부작 미니시리즈 촬영 기간을 100일 정도로 봤다면 이후에는 130일 정도로 본다”며 “주 52시간제가 된다면 140일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제작비는 20~30%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지부장은 변화를 위해 방송사, 제작사가 책임지고 인식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지부장은 “주 52시간이 도입됐다고 하지만 우리는 달라진 게 없다”며 “이전에는 버스 집결 시간부터 출근 시간으로 봤는데 지금 그 시간들은 촬영 시간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이런 내용들을 조정해 표준근로계약서가 작성되면 주 52시간 근무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거라 내다봤다. 그러나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드라마 현장은 고정적인 수치가 있는 환경이 아닌 점, 인력 구성·제작비가 다른 업계처럼 고정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현장마다 구성원, 환경, 상황이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표준근로계약서의 내용들을 정해놓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