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리더④] "男다른 아이디어로 승부했죠"

박미애 기자I 2012.04.25 09:17:34

조윤정 이김프로덕션 대표
라디오·TV 음악감독 거쳐 드라마 제작자로
‘발리에서 생긴 일’ ‘쩐의 전쟁’ ‘대물’ 등 제작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25일자 22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아직 비주류다. 세상이 바뀌어도 출산과 육아 등 부담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데일리는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당당한 인적자원으로서 기여할 부문이 적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여성리더 30인에게 듣는다’ 를 연재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나의 길’을 도모해 성공한 여성 리더가 풀어내는 삶의 지혜를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 조윤정 이김프로덕션 대표


한류의 시작은 드라마다. 10년 전 ‘겨울연가’ ‘풀하우스’ 같은 작품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많은 한국 드라마 작품들이 해외에 소개됐다. 한국 드라마는 이제 단순히 해외로 수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협업을 통해 제작 시스템 및 노하우를 전수하며 그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조윤정 이김프로덕션(이하 이김) 대표도 한국 드라마의 발전에 한 몫을 담당한, 몇 안 되는 여성 제작자다. 2000년대 초 화제작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2004)이 이김에서 처음 만든 작품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파격적인 소재와 충격적인 결말로 화제를 모았다. 서울 여의도 사무실 회의실에 들어서면 ‘발리에서 생긴 일’ 포스터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조 대표를 그녀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작품 한 편으로 존폐를 오가는 이 거친 바닥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세련된 중년 여성. 하지만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그녀와 대화에서 당당함과 자신감과 무엇보다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표의 위치를 실감했다.

◇‘발리에서 생긴 일’부터 ‘스파이 명월’까지 10편 제작
조 대표가 처음 일을 할 때만 해도 여성 제작자는 그녀 혼자였다. 그녀는 대학에서 음악(플루트)을 전공하고 1980년대 라디오와 1990년대 TV 프로그램의 음악감독으로 일했다. 그렇게 드라마와는 인연을 맺었다. 30년 가까이 방송 관련 업무에 몸담은 베테랑이다.

“그 당시 음악감독은 대본을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이었어요. 작품의 흐름을 파악해 그때그때 맞는 음악을 선곡하고 작업해야 했죠. 작가, 감독(연출자)과 관계가 친밀할 수밖에 없었어요. 작품이 탄생되는 전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어요. 내 얘기가 반영돼 대본이 수정되는 일도 있었고.”

조 대표는 2003년 이김을 세우고 이듬해 드라마 제작을 시작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을 시작으로 ‘유리화’ ‘스마일어게인’ ‘쩐의 전쟁’ ‘개인의 취향’ ‘아가씨를 부탁해’ ‘대물’ ‘스파이 명월’ ‘지고는 못살아’ 등 열 편의 작품을 남겼다. ‘발리에서 생긴 일’을 하면서 음악감독의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OST 앨범을 제작했고 10만 장 넘게 팔았다. 드라마 OST 앨범이 10만 장 넘게 팔린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 작품들 중에는 여배우가 촬영장을 무단이탈하는 사고도 있었다. ‘스파일 명월’이다. 하지만 한예슬의 복귀로 드라마는 제작 중단되는 일 없이 무사히 방송을 마칠 수 있었다. 조 대표가 실패한 작품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다.
 
◇차별화된 기획력이 성공 비결
조 대표가 일을 시작할 때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던 직원들도 현재는 100명 가까이 늘어놨다. 이김이 지난 10년 간 번창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남들은 하지 않는 차별화된 기획력이 주효했다.

“드라마 제작은 실력으로 말해줄 수밖에 없어요.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획력이죠. 보통 여자들이 아이디어가 좋고 꼼꼼하잖아요(웃음). 그럼 점은 이 분야 최대의 무기죠. ‘발리에서 생긴 일’은 여자 주인공이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는 이야기로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소재였죠.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를 통해 돈에 대한 경각심을 준 이야기였고 ‘대물’은 여성 대통령의 이야기로 정치 드라마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 됐어요.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찾아내서 드라마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품이 좋으면 배우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거든요.”

제작자로 일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테지만 여성이어서 겪은 억울한 경험도 있었을 터였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제작자로 힘들기는 해도 여자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1남1녀의 자녀들은 명문대를 나올 만큼 엄마가 걱정할 일 없이 훌륭히 커줬다.

◇“여성이라서 불리한 점은 없어”
“작품은 방송사든 누구든 어느 한 곳의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의 평가를 받는 거잖아요. 그게 어려운 거죠. 여성이라서 불리한 점이요? 술 못하는 거? 제 경우에는 오히려 그 점이 업무 시간에 충실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조 대표의 이러한 당당함이 남성들 틈에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녀는 인생 선배로서 여성들에게 한 마디 조언해달라고 하자 “불리한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자신이 재미를 느끼고 잘하는 것을 찾아내 실력을 갖추는 게 답이다. 그러면서 여성의 장점을 살린다면 돋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당당해질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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