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트로트 레볼루션]뽕짝이면 어때, 네 인생은 지금이야~

김미경 기자I 2017.11.10 06:00:00

부활 가능성 보이는 전통가요
나훈아 복귀 서울·대구·부산 공연
티켓 3만여장 10분만에 매진
암표는 100만원까지 치솟기도
따라 부르기 쉬운 가사, 인생 담아
꺾기 창법도 젊은 세대에 신선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장면 하나,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 가수 나훈아가 11년만에 복귀무대를 치렀다. 서울·대구·부산 공연 티켓 3만여장이 예매 시작 10분도 안 돼 전석 동났다. 암표 가격은 100만원까지 치솟았고, 신곡 ‘남자의 인생’은 예스24 트로트 음반차트 1위에 올라섰다.

장면 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는 올해 대중문화계의 화제작이다. 트로트와 EDM을 접목시킨 ‘아모르 파티’는 입소문 덕에 젊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부활했다. 아이돌가수의 음악 감상 이용량 대비 현저히 낮은 수치이지만 이 곡은 올 9월과 10월 멜론 트로트 부문 1위를 달성하며 발매 4년 만에 역주행에 성공했다.

트로트의 저력이라 할만하다. 전통가요의 위기라고는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꾸준히 불려지는 이유는 있다. 김지환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은 “그동안 트로트는 뽕짝이란 이름으로 폄하돼 왔다. 뒤떨어지고 촌스러운 것이 아니다”며 “한국 대중가요의 뿌리이자 줄기”라고 말했다. 이어 “체계적으로 신인가수를 육성하고, 지속적으로 음악적 역량과 곡에 대한 완성도를 높인다면 침체한 트로트 음악 시장의 활성화를 기대해 볼만하다”고 조언했다.

△웃고 울리는 ‘4분의 위력’

트로트가수 김연자
“자신에게 실망하지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 뛰는 대로 하면 돼.” 아이돌 노래 가사가 아니다. 쿵짝, 쿵짝. 트로트가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노랫말이다. 4분가량의 이 곡은 중장년층은 물론 10~20대 젊은 층까지 홀렸다.

트로트 애호가들에 따르면 과하지 않은 고음과 친숙한 멜로디, 꺾기 창법은 꽤나 중독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가요팬은 ‘맛깔난다’는 표현도 썼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恨)과 흥(興)의 DNA와도 맞아떨어진다. 김연자는 “리듬이 좋고 굉장히 듣기 쉬운 곡”이라며 “한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아이돌과 드라마 OST 일색의 가요 시장에 질려 있던 젊은 세대에겐 오히려 신선하게 들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연자의 노래 뿐만이 아니다. 진성의 ‘안동역에서’, 이미자의 ‘그리움’, 최백호 ‘다시 길 위에서’, 나훈아의 ‘추억’,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등은 짧게는 3년, 많게는 수십년간 불리는 히트곡이다.

일명 ‘뽕짝’이라는 꺾기 창법은 낡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후렴구는 따라 부르기에도 쉽다. 노래 가사 역시 은근히 눈여겨볼 구석이 많다. 트로트 마니아 김봉남(75) 씨는 “친척 팔순잔치에 나가 ‘백세인생’을 불러 히트를 쳤다. 이날 온 사람들을 웃고 울렸다”며 “넉살스런 위트도 있고 우리네 인생을 공감할 수 있는 구수한 가사는 가슴을 울린다”고 했다.

‘전해라~’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트로트 곡 ‘백세인생’의 이애란도 2015년 역주행의 주인공이다. 이 곡 하나로 무려 20년의 무명생활을 청산했다. 초등학생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고루 인지도가 높은 트로트가수로 급부상했다. 수년간 노력의 결과다. 이애란은 창법을 바꾸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 전엔 소리를 내질렀다면 체계적으로 다시 노래하는 교육을 받았다.

이들이 뒤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수 김흥국은 “잘 만든 트로트는 오래 가고 역주행도 만든다.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라고 했다.

△탄탄한 팬층 ‘은빛 중년’

홍진영·박현빈
‘한 번 오빠면 영원한 오빠다’. 트로트의 팬층은 두텁다. 최근 8년 간 예스24의 트로트 음반 베스트셀러 통계를 보면 ‘조용필 앨범’이 압도적으로 눈에 띈다. 조용필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트로트부문 음반판매 1위를 꿰찼다. 넓은 팬층과 다양한 음반 종수로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특히 2013년 발매한 19집 ‘헬로우’는 당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각각 가수 정미조와 나훈아가 신보를 내면서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이밖에 톱 10위권 내 음반으로는 가수 심수봉·장윤정·이미자·최백호·김추자 등으로 역시 큰 변동은 없었다.

2016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멜론의 월간 트로트 차트(스트리밍+음원구입)도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다만 멜론 이용객의 경우 젊은 고객층이 많은 만큼 미디어노출이 잦거나 SNS에서 회제를 모은 홍진영과 장윤정의 노래가 1, 2위를 다투며 거의 톱 10위권 전체를 독식했다. 신인 가수의 노래는 순위권에 없었다. 트로트 음악의 양극화가 뚜렷하다는 방증이다.

예스24 음반·가요담당 이수은 MD는 “워낙 팬층이 탄탄하기 때문에 트로트 분야 자체가 큰 변동이 없다. 조용필, 장윤정 같이 히트곡이 많은 가수들이 계속해서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최근 8년간 예스24의 트로트 음반 구입 연령대는 40대가 30.6%로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29.3%), 50대(17.6%), 20대(17.2%), 60대 이상(4.2%) 순으로 나타났다. 남녀 성별 비중은 큰 차이가 없었다. 이수은 MD는 “트로트분야에서 20~30대 구매 비율이 높은 것은 온라인 플랫폼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20~30대 자녀 세대들이 트로트를 즐겨 듣는 부모 세대에게 선물용으로 구입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진단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