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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봅슬레이' 3인방이 털어놓은 우여곡절 성장기

이석무 기자I 2016.06.03 07:28:39
한국 봅슬레이 간판스타 원윤종(왼쪽), 서영우.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빛 질주를 노리는 ‘한국 봅슬레이의 간판’ 원윤종(31·강원도청)-서영우(25·경기도경기연맹)와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 이용(38) 감독이 세계 정상에 서기까지 있었던 많은 우여곡절을 털어놓았다.

원윤종, 서영우와 이용 감독은 최근 인터넷 방송 해피온TV에서 가수 김장훈과 제갈성렬 전 빙상 국가대표 감독이 진행하는 ‘김장훈 제갈성렬의 샤우팅’에 출연해 선수 인생의 다양한 스토리를 소개했다.

지난 2010년 팀을 결성한 원윤종과 서영우는 열악한 훈련 환경 속에서도 2015-2016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월드컵 8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지난 2015~2016시즌 월드컵 8차례와 세계선수권대회 성적을 통틀어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원윤종-서영우는 낯선 봅슬레이라는 운동을 처음 접했던 시절부터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까지 과정과 소감을 담담하게 밝혔다.

▲원윤종, 원래 국가대표감이 아니었다?

원윤종은 명실상부 한국 봅슬레이의 기둥이다.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지닌 파일럿이다. 하지만 봅슬레이를 처음 만난 2010년 이전까지 체육교사를 준비하던 평범한 체대생이었다.

원윤종은 2010년 우연한 계기로 봅슬레이 대표선발전에 참가했다. 원윤종은 “말 그대로 참여였다. 집에도 얘기 안했다. 일주일 동안 강원도에서 쉬다 온다는 생각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지금은 원윤종은 110kg에 육박하는 거구지만 그때만 해도 75~80kg 밖에 나가지 않았다. 당시 대표선수 선발을 맡았던 주인공이 이용 감독이다. 이용 감독은 “솔직히 원윤종 보다 같은 온 친구가 보디빌딩을 해서 몸이 더 좋았다. 딱 봤을때는 그 친구가 더 나아 보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용 감독은 왜소하고 눈에 띄지 않았던 원윤종을 뽑았을까. 이용 감독은 이같이 말했다.

“일주일을 함께 경험해보니까 원윤종이 여러 종목에서만능이더라. 다재다능한 면을 보고 원윤종을 선택했다. 썰매에 한 번이라도 태우지 않으면 후회하겠더라. 그래서 둘 다 국가대표로 선택하려고 했다. 그런데 협회에서 둘 중 한 명만 뽑으라고 했다. 고민 끝에 원윤종을 선택했다. 보이기에는 친구가 더 좋았는데 마음이 자꾸 원윤종에게 끌렸다”

만약 이용 감독이 그때 자신의 감을 믿지 않고 체격조건에 우선순위를 뒀다면 오늘날 한국 봅슬레이의 기적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용 감독은 당시 순간을 “운명의 장난”이었다고 표현했다.

▲질풍노도 겪은 서영우, 봅슬레이 관둘뻔 했다?

‘브레이크맨’ 서영우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육상선수 출신으로 탄탄한 체격과 함께 스피드를 겸비하고 있었다. 과도한 합숙생활에 염증을 느껴 육상선수를 포기했지만 운동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봅슬레이에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변변한 실업팀도 없었다. 결국 2012~2013시즌이 끝나고 서영우는 군대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해외 자원봉사로 군 복무를 대신하는 코이카에 지원했다. 현실적으로 봅슬레이는 그만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서영우는 “20대 초반이었는데 마치 인생을 낭비하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잘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 하는 게 맞나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용 감독 역시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상황이라 뭐래 해줄 말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2013년 11월 아메리카컵에서 국제무대 첫 우승을 차지한 것. 불과 3년 전 레이스 도중 얼음 트랙을 깨뜨려 눈총을 받았던 장소(파크시티 트랙)에서 이룬 쾌거였다.

아메리카컵 우승 이후 사정은 확 달라졌다. 2013년 12월 국내 최초의 봅슬레이·스켈레톤 실업팀이 강원도청에 창단됐다. 경기도 체육회 등에서도 실업팀을 만들 움직임이 생겼다. 서영우에게 극적으로 기회가 찾아왔고 결국 몇 년 뒤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만약 그때 봅슬레이를 포기했다면 지금의 스포트라이트도 없었다.

▲로이드 코치의 사망, 가장 큰 위기였다?

한국 봅슬레이가 국제무대에서 급성장한 데는 세계적인 봅슬레이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던 말콤 로이드 코치의 공이 컸다. 로이드 코치는 그전까지 주먹구구식으로 훈련해왔던 봅슬레이 대표팀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은 물론 코스 공략법, 장비 관리 방법까지 세세히 지도했다.

하지만 로이드 코치는 올해 1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대표팀 선수들은 큰 슬픔에 휩싸였다. 동시에 혼란에 빠졌다. 대표팀 운영에서 로이드 코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용 감독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로이드 코치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슬펐다. 경기장에 일주일이나 나가지 못하고 숙소에 머물러있었다. 친한 외국인 친구가 숙소로 찾아와서 ‘네가 이러는 것을 하늘에 있는 굼머(로이드 코치의 별명)가 절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빨리 일어나 정상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그도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바로 정신을 차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너 괜찮냐’라고 안부를 묻더라. 이후 미주 대회에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국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은 캐나다에서 열린 월드컵 5차대회에서 사상 첫 세계 정상에 올랐다. 로이드 코치 영전에 금메달을 선물할 수 있었다.

인터넷 방송 ‘김장훈 제갈성렬의 샤우팅’에 출연한 이용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 감독(오른쪽).
인터넷 방송 ‘김장훈 제갈성렬의 샤우팅’에 출연한 한국 봅슬레이 간판스타 원윤종(오른쪽), 서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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