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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감독 장률의 '중경' 그리고 '이리'

조선일보 기자I 2008.11.07 09:46:14

터질듯한 도시… 터져버린 도시



[조선일보 제공] 여기 도시 이름을 제목으로 한 두 편의 영화가 있다. 장률 감독이 연출하고 한 주 걸러 개봉하는 연작(聯作). 하나는 무려 3000만 명을 품고도 확장을 계속하는 세계 최대 인구의 중국 도시 '중경'(重慶·6일 개봉), 또 하나는 30년 전 기차역 폭발사고로 59명이 숨지고 1만6000명의 이재민을 토해냈던 한국의 소도시 '이리'(13일 개봉)다.

얼핏 무슨 지자체 홍보를 위해 만든 영화인가 싶지만, 오해하지 마시길. 이미 폭발한 도시와 폭발이 임박해 보이는 도시를 그린 이 두 편의 영화는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대칭 무늬를 만들며 관객의 영혼에 작지 않은 생채기를 만든다.

뉴욕과 서울 못지않게 화려한 야경을 지녔지만, '중경'의 개인들은 하나 하나가 섬이다. "내 땅과 집을 돌려달라"고 플래카드를 내걸고 고함을 질러도 쳐다보는 사람 하나 없고, 식당 한쪽에서 뜨거운 냄비 속에 채무자의 손을 강제로 집어 넣는 청년들을 보아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 없다. 자신의 욕망과 이익에만 충실한 이기적인 도시. 장률 감독은 매춘으로 잡혀 들어간 아버지의 석방을 위해 경찰과 하룻밤을 보낸 쑤이(궈커이)를 내세워, 이 터지기 직전의 시한 폭탄 같은 도시를 목청 높이지 않고 고발한다.

'이리'는 이미 폭탄이 터져 버린 도시의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일어났던 폭파사고를 환기시키는 영화는 아니다. '중경'에서의 모든 등장인물이 우리에게는 낯선 대륙의 배우들이었다면, '이리'는 윤진서와 엄태웅이라는 친숙한 이름들이 주인공. 폭발 사고의 여진으로 정상보다 일찍 태어난 탓에 동네 뭇 사내들의 노리개로 전락한 '진서'와 그녀의 유일한 보호자인 친오빠 '태웅'을 통해 이미 폭발이 일어난 공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씁쓸하게 묻는다.

조선족인 장률(46) 감독은 연변대학 중문학과 교수를 지낸 소설가 출신. 정식 영화 교육을 받은 적이 전혀 없는데도, 데뷔작 '당시'로 각종 영화제에 초청받고 두 번째 작품 '망종'으로 2005년 칸 영화제 비평가 부문에 올라 주목받았던 감독이다.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일 뿐이라고 믿는 관객에게는 고통의 시간이겠지만, 타락하는 세속 도시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려는 관객들에게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전문가 별점

·도시와 삶에 관한 무거움이 묵직한 여운을 주는 장률 감독의 행보. ★★★★

이상용·영화평론가

·버석버석 긁히는 마음, 부글부글 끓는 심장. ★★★

황희연·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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