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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멤버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선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방금 전 동작을 맞춰 안무를 한 뒤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먼저 쉬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난 24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그룹 모모랜드, T1419 소속사 MLD엔터테인먼트 연습실. 세상을 잔뜩 움츠러들게 한 코로나19 대유행에 아랑곳없이 여섯 명의 여자 연습생들은 마스크를 쓴 채 내년 상반기 데뷔를 목표로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연습생들의 일과는 ‘기승전 연습’이다. 하루 평균 11시간을 연습에 매달린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간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력도 다채롭다. 적게는 1주차 연습생부터 많게는 1년 8개월차 연습생까지, 국적도 한국부터 일본·미국·필리핀까지 다양하다. 미국에서 K팝 아이돌이 되고자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이 된 N양은 “K팝 선배님들의 무대를 보며 꿈을 키웠다”며 “트와이스, 블랙핑크 선배님처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인 연습생 J양은 “운이 좋아 데뷔 문턱을 넘는다 하더라도 경쟁은 계속될 것”이라며 “경쟁력을 쌓기 위해선 실력을 탄탄하게 쌓는 방법밖에 없다”고 다부지게 각오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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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들의 데뷔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MLD 관계자는 “연습생들의 발전 속도와 호흡 등에 따라 데뷔할 수도, 중도 탈락할 수도 있다”며 “데뷔를 한 뒤에는 물릴 수 없기 때문에 연습생들 본인은 물론 소속사도 한 단계 한 단계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팝이 세계 최대 음악시장인 미국의 빌보드 차트, 아시아 최대 음악시장이자 세계 2위 규모인 일본의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지난 5월 발매한 신곡 ‘버터’(Butter)와 7월 발매한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로 이달 초까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10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일본 오리콘에서도 ‘버터’와 ‘퍼미션 투 댄스’가 지난 23일자까지 주간 스트리밍 차트 6주 연속 1·2위를 독식하는 진기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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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K팝이 전 세계 음악시장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근간에는 체계화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있다. 기획사들은 재능 있는 가수 지망생(연습생)을 뽑아 트레이닝을 거친 뒤 콘셉트·세계관·스토리텔링 등 기획력을 더해 아이돌로 키워낸다.
연습생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몇 년이 걸리든 실력을 온전히 갖춰야 데뷔 기회가 주어진다. 말 그대로 무한경쟁이다. 트와이스 리더 지효는 데뷔하기까지 10년이 넘는 연습생 기간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기준의 첫 번째 조건은 ‘실력’이다. 학연, 혈연, 지연은커녕 경력조차 철저히 배제한 채 음악, 퍼포먼스 등 역량이 뛰어난 연습생이 데뷔 후보로 선발될 수 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세계 최강임을 확인한 한국 양궁의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과 닮았다. 한국 양궁 대표팀은 지난달 31일 막 내린 도쿄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총 5개의 금메달 중 4개를 획득했다. 그중 여자 양궁 단체전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9개 대회 연속 제패라는 대기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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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멤버 선발의 첫 번째 조건은 무조건 실력이다. 그 외 조건이 아무리 빼어나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그룹 멤버에 선발될 수 없다”며 “멤버들마다 맡는 역할에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실력에서 남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K팝 아이돌의 경우 기획사별로 특색이 조금씩 다르다. 아이돌 그룹이 많지만, 각각 차별성과 다양성을 갖출 수 있는 이유다.
SM엔터테인먼트가 칼군무로 대표되는 스탠더드한 K팝 아이돌의 기준을 세웠다면 YG엔터테인먼트는 ‘힙’한 아이돌, JYP엔터테인먼트는 감성 아이돌, 하이브는 싱어송라이터와 아이돌을 결합한 ‘아티스트 아이돌’을 지향한다는 점이 다르다.
최영균 대중문화평론가는 “SM의 경우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통해 대중이 선망할 수 있는 ‘멋진 아이돌’을 표방한다면, YG는 빅뱅 지드래곤과 블랙핑크 제니처럼 음악과 패션, 스타일을 아우르는 트렌드 리더를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걸그룹 명가로 불리는 JYP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아이돌을 목표로 하고 있고 하이브는 다재다능하면서도 팬들과 가깝게 소통하는 아이돌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