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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다는 듯 머그잔을 양 손으로 감쌌다. 온기가 긴장을 풀어줬다. 편한 마음으로 외출한 지 얼마 안 됐다며 웃었다. 자체 최고 49.4%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이란 기록을 세우고 지난 17일 종영한 KBS2 주말극 ‘하나뿐인 내편’(극본 홍석구, 이하 ‘하내편’)의 김사경 작가였다. 2010년 이후 방송한 지상파 3사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시청률로, 종전 기록은 KBS2 ‘제빵왕 김탁구’(2010, 자체 최고 49.3%)였다.
대장정을 마친 김 작가는 다소 지쳐보였다. 그럼에도 작품 이야기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잘하면 40% 시청률을 넘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을 뛰어넘었다”면서 “얼떨떨하고 놀랍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청자가 몰입해야 하는 주인공을 전과자와 그의 딸로 골라 보조 작가들에게 “왜 이렇게 어려운 소재를 택했느냐”는 ‘원망’을 듣던 시기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면 해볼 만한 소재라 생각했어요. 설정부터 극성이 강하잖아요. 예전에 읽었던 범죄자의 가족이 겪는 고통에 대한 기사가 마음에 남기도 했고요. 첫 회 방송이 나갔는데 ‘최수종 불쌍하다’는 반응이 나왔어요. 그때 안심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오자룡이 간다’(2012), ‘장미빛 연인들’(2014), ‘불어라 미풍아’(2016) 등 연속극 전문인 김 작가의 특징은 ‘뒷심’이다. ‘하내편’ 또한 반환점을 돌면서 시청률이 치솟았다. 여기서 김 작가의 강점을 찾을 수 있다.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해선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필요하다. 김 작가는 이를 꼬는 법이 없다. 그러면서 전개 속도가 빠르다. “중간을 놓치고 봐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기 위한” 고도의 기술이다.
“구성할 때부터 후반부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인물과 인물, 사건과 사건이 충돌하지 않도록 설계하죠. 그렇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웃음)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는 것밖에 없어요. 체력이 중요한 이유예요.”
드라마는 강수일(최수종 분)과 김도란(유이 분) 부녀가 행복을 찾으며 마무리됐다. 연좌제를 겪어야 하는 전과자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하나뿐인 내편’을 통해 김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 일부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그는 “드라마의 본질은 재미”라면서 “적어도 즐거움을 줘야한다는 측면에선 드라마 작가로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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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BS 연기대상 작가상을 수상한 김 작가는 당시 “42세란 늦은 나이에 공모전에 당선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작가의 길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5년을 꾹꾹 눌러 담은 수상소감이었다. 영문과 출신으로 평소 책을 좋아한 그는 30대 중반에 작가 교육원에 들어갔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필에 재미를 느꼈다. “이쯤에서 포기하자”고 흔들렸을 때 KBS 단막극 공모전에 당선됐다.
“처음 준비할 때 큰 아이가 다섯 살이었어요. 남편이 말렸으면 못했을 겁니다. 해외 근무 중이었어요. 친정의 도움으로 계속 글을 쓸 수 있었죠. 두 아들에게 ‘각자도생’이라고 했죠. 아이들이 어렸을 땐 ‘엄마 써야 하니까 문 꼭 닫고 나가’란 말을 참 많이 했어요. 미안함이 크지만 후회는 없어요. 딸이 있다면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을 거예요.”
하나만 해도 어렵다는 육아와 집필을 병행했다. “힘들어서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치열했다. 그는 “슬럼프가 와도, 혹은 좋지 않은 댓글을 읽어도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고 표현했다. ‘하나뿐인 내편’을 한창 쓰던 지난해에는 수험생 학부모였다. 마감에 쫓기며 틈틈이 둘째 아들의 ‘학원 라이딩’도 했다. 그는 “잘 자라준 두 아들과 지지해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제 진정한 자유”라는 농담도 덧붙였다.
“영화 ‘극한직업’도 아직 못 봤어요.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온 가족이 밥 먹으면서 ‘하나뿐인 내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요즘 그런 드라마가 어디 있나요. 저에겐 최고의 칭찬이었어요. 시기가 언제든, 소재가 무엇이든 재미있는 드라마를 계속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