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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아이콘‘ 양희영이 해냈다..첫 메이저 우승에 올림픽 티켓까지

주영로 기자I 2024.06.25 00:05:00

LPGA 메이저 KPMG 위민스 챔피언십 제패
최종합계 7언더파 281타..3타 차 우승
프로 17년 차에 첫 메이저 우승 '감격'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이겨낸 비결은 '긍정'
"두 번째 올림픽 출전 큰 영광..잘 준비할 것"

양희영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상징하는 이모티콘을 그린 골프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대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영광이다.”

투어 17년 차 베테랑 양희영(35)이 마침내 한국 여자 골프의 긴 우승 갈증을 씻어내며 파리올림픽 출전권까지 손에 쥐었다. 희망이 없어 보였던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은 극적인 우승과 함께 찾아왔다.

양희영은 24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서매미시의 사할리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총상금 1040만 달러)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에 더블보기 1개와 보기 3개를 묶어 이븐파 72타를 쳤다. 최종합계 7언더파 281타를 기록한 양희영은 공동 2위에 자리한 릴리아 부(미국), 고진영(29), 야마시타 미유(일본·이상 4언더파 284타)를 3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양희영은 이날 우승으로 ‘메이저 퀸’이라는 타이틀과 파리올림픽 출전권 획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긍정과 희망,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만들어낸 최상의 결과다.

양희영은 긍정의 아이콘이다.

“에이미(양희영의 미국 이름)는 메이저에서 우승하지 못할 것이다.”

양희영은 기자회견 도중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프로 데뷔 16년 동안 메이저 우승이 없었던 그에게 주변의 평가는 싸늘했다.

양희영은 “코치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에이미는 메이저에서 우승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라며 “그때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이렇게 메이저 우승해 더 기쁘다”라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양희영은 긍정의 아이콘이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 일찍 꽃을 피운 유망주다. 10대 시절 호주에서 골프유학을 한 그는 2006년 아마추어로 프로 대회인 레이디스유러피언투어(LET) ANZ 마스터즈에 출전해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미국 주니어 무대를 휩쓴 미셸 위와 비교됐고 그에겐 ‘남반구의 미셸 위’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2008년 프로가 된 양희영은 이후 긴 시간 우승 침묵에 시달렸다. 2013년 10월 한국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5년을 기다렸다. 그 뒤로도 우승 인연을 맺지 못한 양희영은 2014년 말에는 투어 활동을 중단하고 ‘은둔생활’을 하며 조용히 필드를 떠났다. 집에만 머물려 자신을 돌아본 양희영은 ‘골프가 전부’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다시 투어로 돌아왔고 2015년과 2017년, 2019년까지 태국에서 열린 혼다 타일랜드에서 3번 우승했다.

4번의 우승 뒤 다시 한번 한계에 부딪혔다. 30대를 넘긴 나이에 팔꿈치 부상까지 겹치면서 조금씩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긍정과 희망으로 버텼다. 그 결과 더 값진 우승이 찾아왔다. 작년 12월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 생애 첫 메이저 퀸의 기쁨을 맛봤다. 당시 양희영은 “은퇴를 생각하기는 처음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전까지는 나 자신을 믿지 못했지만, 인내하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양희영은 LPGA 투어 통산 6승을 거뒀으나 후원사가 없다. 그 때문에 직접 웃는 표정(스마일)의 이모티콘을 자수로 새긴 모자를 쓰고 같은 모양의 이모티콘을 그린 골프공을 들고 경기에 나선다. 후원사가 없는 것을 실망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와 긍정의 표현인 셈이다.

양희영은 조용한 강자다.

2008년 LPGA 투어에 데뷔한 양희영은 올해로 17년째 활동 중이다. 중도 포기하려던 순간도 있었지만, 단 한 시즌도 시드를 잃은 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며 쌓아온 꾸준함은 대기록으로 이어졌다.

생애 처음 메이저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양희영은 이날 우승으로 통산 6승을 달성하며 한국 선수로는 박인비에 이어 두 번째 통산 상금 1500만 달러 고지에 올랐다.

데뷔 후 340경기를 뛴 양희영은 이날 우승상금 156만 달러를 더해 통산 상금을 1555만5632달러로 늘렸다. 대회당 평균 4만5751달러 이상을 꼬박꼬박 벌어 쌓은 기록이다.

LPGA 투어에서 양희영보다 더 많은 상금을 획득한 선수는 안니카 소렌스탐(2258만3693달러), 카리 웹(2029만3617달러), 크리스티 커(2017만9848달러), 박인비(1826만2344달러), 리디아 고(1759만7880달러) 등 5명에 불과하다. 김세영(1325만5975달러), 고진영(1300만501달러), 박세리(1258만3712달러), 유소연(1223만7173달러)보다도 더 많은 상금을 벌었다.

첫 메이저 우승은 꾸준함의 결과다. 그동안 메이저 우승은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이번 대회까지 통산 75번 메이저 대회에 출전한 양희영은 21번의 톱10과 두 번의 준우승(2012년과 2015년 US여자오픈)을 차지했다. 그리고 17년의 기다림 끝에 그토록 바랐던 ‘메이저 퀸’이 됐다.

양희영은 “골프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할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놓쳐서 아쉬웠다”라며 “그게 쌓이다 보이다 보니 우승에 가까워질 때마다 오히려 겁을 먹는 내 모습을 보게 됐다. 이번 주에도 그런 모습을 봤지만, 끝까지 집중하면서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이렇게 우승해서 너무 큰 영광이다”라고 기뻐했다.

양희영은 스포츠 유전자를 타고났다.

양희영의 부모는 운동선수 출신이다. 아버지 양준모 씨는 국가대표 카누, 어머니 장선희 씨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창던지기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양희영은 8년 전 리우 대회에서 부모가 이루지 못한 올림픽 출전의 꿈을 대신 이뤘다.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선 나흘 합계 9언더파 279타를 쳐 4위로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이날 우승으로 파리행 티켓을 손에 쥔 양희영은 8년 전보다 더 높은 순위를 기대했다.

양희영은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대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영광이다”라며 “한국 여자 골프가 굉장히 강한데, 그런 팀에 이름을 올린다는 게 크나큰 영광이다. 올림픽 때까지 잘 준비하겠다”라고 다짐했다.

파리 올림픽 여자 골프 경기는 오는 8월 7일부터 나흘 동안 프랑스 파리 인근 르골프 나쇼날에서 개막한다. 양희영과 함께 고진영, 김효주의 출전이 유력하다.

양희영이 24일(한국시간) 열린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처음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AFPB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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