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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심판 아닌 평가관’ 아시안게임 다녀온 김동진, “월드컵 무대 꿈꿉니다”

허윤수 기자I 2023.10.30 00:10:04

前 K리그 심판 김동진 교수, 심판 강사 및 평가관으로 아시안게임 참가
한국인 중 유일한 평가관으로 AFC의 심판 평가 기준 빠르게 공유할 수 있어
“한국 심판, 실력 좋으니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으면”

김동진 교수가 AFC 심판 강사와 평가관 자격으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사진=김동진 교수 제공
김동진 교수가 경기 전 심판진과 미팅을 하고 있다. 사진=김동진 교수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허윤수 기자] 심판으로 K리그 무대를 누볐던 김동진(50·안동과학대 축구과) 교수가 평가관으로 변신해 또 하나의 발자취를 남겼다.

김 교수는 이달 초 막을 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축구 종목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심판 강사 및 평가관으로 참가했다. AFC 소속 심판을 가르치는 강사 업무와 경기에 배정된 심판진을 평가하는 1인 2역을 소화했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다. AFC의 초청을 받아야 엘리트 심판 강사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다. 3박 4일로 진행되는 세미나에서 실기, 필기, 영어 회화, 면접 등을 거쳐 합격해야 한다. 김 교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심판 강사와 평가관이 됐다. 현재 한국에 유일한 AFC 심판 강사와 평가관이다.

김 교수의 첫 무대가 바로 지난 아시안게임이었다. 대회 출발을 앞두고 김 교수는 마음의 짐을 털어냈다. 지난 3월 그는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스포츠윤리센터의 조사를 받았다. 약 6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무혐의 행정 처분을 받았다.

그는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과였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라며 “대한축구협회와 심판계에 누가 될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나와 함께 마음고생을 해준 가족과 지인들께도 감사하다”라고 덧붙였다.

항저우로 향한 김 교수의 일정은 빡빡했다. 새벽부터 경기장 시뮬레이션 트레이닝을 시작으로 경기 규칙 영상 교육을 통해 일관된 판정이 나오게끔 도왔다. 이후 경기에 배정된 심판진과 사전 미팅을 진행했고 경기 후엔 잘된 부분과 발전해야 하는 부분을 피드백했다.

김 교수는 “쉴 시간이 거의 없었다”라며 “심판할 때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도 경험했으나 이번엔 심판 발전을 도와야 하니 생각해야 할 게 많았다”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평가관 한 명이 개인 사정으로 돌아가게 돼 8경기나 맡게 됐다”라며 “일복이 터진 것 같았다”라고 웃었다.

김동진 교수가 경기에 앞서 심판진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동진 교수 제공
김 교수는 2011년 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전 무대에 대기심으로 참가했다. 이렇게 K리그와 FIFA 대회 경험도 있으나 이번 대회는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심판 강사 및 평가관으로 참가한 자신을 비롯해 심판(4명), AFC 체력 강사(1명) 분야에 모두 한국인이 포함된 것이다.

김 교수는 “FIFA 국제 심판도 15년 정도 했지만 이렇게 분야별로 한국인과 함께 한 건 처음이었다”라며 “서로를 보며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라고 밝혔다. 그는 “결국 심판도 평가받는 자리기에 중점 두는 부분 등에 대해서 즉각적인 정보 공유가 가능했다”라고 설명했다.

중계방송으론 접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전했다. 우즈베키스탄과 인도네시아의 16강전에서 인도네시아의 득점이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취소됐다. 이에 인도네시아 선수가 판정에 항의하다가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당했다. 김 교수는 “해당 선수가 경기장을 빠져나가면서 플라스틱으로 된 가벽을 가격해서 파손시켰다”라면서 “경기 후 영상을 다시 돌려봤지만 부심의 판정이 맞았다”라고 전했다.

또 우즈베키스탄의 전력을 점검하러 온 황선홍 감독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우즈베키스탄 경기만 3차례 들어갔던 김 교수는 요주의 인물과 스타일에 대해 귀띔했다. 또 한국의 성적이 좋을수록 한국인 평가관, 심판 등의 배정이 적어지므로 빨리 집으로 보내달라는 너스레도 떨었다.

김 교수는 “중국 경기는 항상 거칠어서 경기 후 작성해야 할 보고서 양이 많다”며 “이런 면에서 한국은 상당히 대처를 잘했다”라고 돌아봤다. 그는 “축구란 게 신체 접촉이 없을 수 없는 운동인데 선수들이 맞대응과 무시 사이에서 적절하게 선을 잘 타며 경기했다”라고 설명했다.

김동진 교수는 평가관으로서 월드컵 참가를 꿈꾼다. 사진=김동진 교수 제공
한국 심판은 세계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에 나섰던 정해상 부심 이후 월드컵 무대에 나선 이는 없다. 주심으로 범위를 좁히면 21년 전인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거슬러 가야 한다.

김 교수는 한국 심판에게 적극성을 강조했다. 그는 “평가관 입장에서 보니 한국 심판은 예의를 차리는 게 많다”며 “외국 심판의 경우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도 찾아와서 조언을 구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내가 머무는 숙소 방까지 찾아와서 미팅을 요청하기도 한다”며 “한국 심판진의 실력은 아시아에서 인정하는 만큼 더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후배 양성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김 교수는 대학에서 심판 등 축구인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는 “학생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지만 권상용 총장님의 배려로 AFC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며 “나는 성인 월드컵 심판의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한국 심판이 서게 될 그날을 기다리며 조금이나마 길을 닦아두고 싶다. 또 협회의 교육 분야에도 국제 무대의 정보를 줄 수 있는 전달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이제 심판 경력은 끝났으나 월드컵의 꿈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꾸준한 노력과 함께 발전해서 평가관으로 월드컵에 참가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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