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운명의 장난? '식민지더비'서 적으로 만난 '절친' 음바페-하키미

이석무 기자I 2022.12.14 05:00:00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에서 둘도 없는 절친으로 유명한 아슈라프 하키미(왼쪽)와 킬리안 음바페. 하지만 카타르월드컵 4강전에선 서로 적이 돼 맞붙어야 한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 프랑스 대 모로코의 대결은 ‘식민지 더비’로 더 관심을 모은다.

프랑스와 모로코는 오는 15일(이하 한국시각) 오전 4시 카타르 알코르에 위치한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대회 4강전을 치른다.

프랑스는 4년 전 러시아월드컵 우승팀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역대 두 번 밖에 없었던 월드컵 2연패에 도전한다. 지금까지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한 국가는 이탈리아(1934·1938년)와 브라질(1958·1962년)뿐이다.

월드컵 역사를 통틀어 디펜딩챔피언이 다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오죽하면 ‘우승팀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그런 저주도 프랑스의 기세는 막지 못했다. 대회 전만해도 폴 포그바(유벤투스), 은골로 캉테(첼시), 크리스토퍼 은쿤쿠(라이프치히),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 등이 잇따라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프랑스의 우승 희망은 희미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주전 멤버들을 대체한 선수들이 제 몫을 해주면서 금방 안정감을 찾았다. 무엇보다 최전방 공격을 책임지는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와 올리비에 지루(AC밀란)가 9골을 합작하는 절정의 골감각을 자랑하면서 4강까지 승승장구했다.

반면 모로코는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아프리카 국가 중 최초로 4강 무대를 밟은 모로코는 내친김에 첫 우승까지 노리고 있다.

모로코는 조별리그부터 8강전까지 단 1골만 내주는 ‘질식수비’가 일품이다. 두 줄로 촘촘하게 수비벽을 세운 뒤 공간을 최소화해 상대가 공격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공을 빼앗으면 빠르고 간결한 역습으로 골문을 노린다. 프랑스가 무엇이든 다 뚫는 ‘창’이라면 모로코는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다.

역습의 중심은 소피아네 부팔(앙제)과 하킴 지예흐(첼시)다.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개인기가 일품인 두 선수는 이번 월드컵에서 모로코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골키퍼 야신 부누(세비야)의 신들린 선방쇼까지 더해 모로코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프랑스와 모로코는 역사적으로 앙숙관계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 당시 프랑스는 모로코를 침략한 뒤 식민지로 삼았다. 해방을 염원한 모로코인들은 수십년동안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결국 프랑스는 1956년 자신들이 지배했던 모로코의 독립을 인정했다.

모로코 독립 후에도 두 나라는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모로코 출신 이주민들이 약 50만명이나 거주하고 있다. 지난 8강전에서 모로코가 스페인을 이기자 프랑스 파리 시내에선 흥분한 모로코 이주민들이 난동을 벌여 무장 경찰에 진압되는 일이 벌어졌다.

양 팀 선수들 관계에서도 프랑스와 모로코는 접점이 많다. 프랑스 간판 공격수 음바페와 모로코의 월드클래스 풀백 아슈라프 하키미(파리 생제르맹)는 2021년부터 한솥밥을 먹은 절친이다.

동갑내기인 둘은 음바페가 골을 넣을 때나 팀이 승리했을 때 미리 짜놓은 세리머니를 펼친다. 훈련장에서도 서로에게 장난을 서슴없이 칠 정도다. 얼마전엔 함께 모로코로 여행을 갔다올 정도로 축구장 밖에서도 함께하는 사이다.

둘은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음바페는 카메룬 출신 축구 지도자인 아버지와 알제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 역시 뿌리는 아프리카에 있다.

하키미는 고향이 스페인 마드리드지만 모로코인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노점상,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하면서 어렵게 하키미를 키웠다고 한다. 프랑스 대표팀을 선택한 음바페와 달리, 하키미는 부모님 나라인 모로코 대표팀이 됐다.

지난 7일 모로코가 16강전에서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누르고 8강에 진출하자 음바페는 SNS를 통해 친구 하키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하키미와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모로코 국기, 왕관, 손가락 하트 이모티콘을 올렸다. 하키미도 하트, 악수 이모티콘과 함께 ‘친구야 곧 보자’라고 답했다.

모로코 대표팀에는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실상 프랑스 사람이 여럿 있다. 왈리드 레그라기 감독부터 센터백 로맹 사이스(베식타시), 소피앙 부팔(앙제) 등이 프랑스 출신이지만 이중국적 제도를 통해 부모의 나라 모로코 대표팀에서 활약 중이다.

반대로 프랑스는 우스만 뎀벨레(모리타니), 오렐리엥 추아메니(카메룬), 질 쿤데(베냉), 다요 우파메카노(기니비사우), 에두아르도 카마빙가(앙골라) 등이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역사적, 사회적으로 깊이 얽혀있는 두 나라의 대결인 만큼 경기 결과를 쉽게 점치기는 어렵다. FIFA 랭킹은 분명 프랑스(4위)가 모로코(22위)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 역대 A매치에서도 프랑스는 7승 2무로 모로코에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하지만 이변으로 점철된 이번 월드컵에서 전력 평가는 큰 의미가 없다.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모로코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두 팀의 대결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