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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빈의 '화란'은…"다시 칸에 가면, 송중기에게 연락을"[인터뷰]②

김보영 기자I 2023.10.02 07:00:00

"'화란'으로 스물여섯의 홍사빈 남기고 싶던 간절함"
"김형서, 다른 방식으로 연기…굉장한 조력자였다"
"김창훈 감독과 매일 회의…귀중한 경험"
"칸 초청 소식 듣고 20분 오열…창피할 정도로 울었다"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영화 ‘화란’은 배우 홍사빈이 간절한 몸부림 끝에 만난 기회였다. 홍사빈은 ‘화란’의 주인공 연규가 된 듯 절실한 마음으로 열정의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올해, 칸 국제영화제 초청을 시작으로 국내 개봉을 앞둔 현재까지 세간의 호평을 받으며 뜻깊은 수확을 거두고 있다. 사람 홍사빈에게 소중한 인연을 안기고, 배우의 마음가짐을 일깨워준 작품이기도 하다.

홍사빈은 영화 ‘화란’(감독 김창훈)의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10월 개봉을 앞둔 ‘화란’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홍사빈 분)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 분)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 드라마다. 김창훈 감독의 장편 입봉작으로, 지난 5월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칸에서의 첫 스크리닝 이후 평단의 호평을 모으며 4분여간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류 톱스타이자 데뷔 15주년을 맞은 베테랑 배우 송중기를 제외하곤, 감독부터 홍사빈, 김형서 등 주요 배우들이 전부 신인이란 점도 주목받았다.

홍사빈은 “그동안 다녀본 무대인사나 시사회는 주로 규모가 작은 독립영화 위주였다”며 “‘화란’ 국내 시사회 땐 사람이 훨씬 많아지니 당황스럽더라. 내가 찍은 영화가 이렇게 대단한 작품이구나 실감했다. 굉장히 뜻깊고 자랑스러웠다”고 시사회를 통해 관객들을 만난 소회를 전했다.

홍사빈은 수천 대 일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으로 주인공 ‘연규’ 역에 발탁됐다. 22살부터 약 5년간 2000번의 오디션을 거치고, 단편영화 80편의 단역 및 주·조연으로 출연한 끝에 거둔 결실이다.

홍사빈은 자신의 이름이 크레딧 1번에 적혀있는 기분은 어떤지 묻는 질문에 “정말 송구스럽지만 외면하다시피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내가 찍은 영화를 누군가와 같이 본 적이 없던 터라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젠 개봉도 앞두고 있으니 그 부끄러움을 깨보려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홍사빈이 연기한 ‘연규’는 의붓아버지의 학대,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지옥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소년이다. 연규는 언젠가 엄마와 네덜란드(화란)로 떠날 날을 꿈꾸며 학업도 제쳐둔 채 열심히 배달 일로 돈을 번다. 하지만 이복 여동생 하얀(김형서 분)을 괴롭히는 남학생들을 대신 응징해주다 폭력 사건에 얽히고, 수백만 원의 합의금을 물어줘야 할 위기에 ‘치건’을 만나 뜻밖의 도움을 받는다. 친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는 연규에게 ‘치건’은 처음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세상을 알려준 남자 어른이었다. 홍사빈은 치건을 만나 폭력의 세계에 발을 들인 ‘연규’의 변화와 내적 갈등, 지옥을 벗어나려는 절박한 몸부림을 몰입감있게 그려내 호평을 얻고 있다.

‘화란’에 오디션에 임했던 홍사빈의 마음도 연규처럼 간절했다. 그는 “배우로서 스물여섯의 홍사빈을 남기고 싶다는 간절함이 컸다”며 “이 이야기의 구성원이 돼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내게 주어진 모든 작품에 간절히 임하게 되는 것 같다. 아직 자신이 연기적으로 보강이 안 되는 부분이 많은 부족한 배우이기에 간절함으로 그 틈을 메워보려 노력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과거 자신이 찍었던 단편, 장편 작품 80편 가까이를 다시 돌려보며 연규의 표정을 연구했다고. 최대한 전달하고 싶은 연규의 얼굴이 나올 때까지 김창훈 감독과 선배 송중기가 많은 배려를 해줬다고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절망적인 현실 속 버리지 못하는 일말의 가능성. 연규가 놓지 않은 작은 가능성과 희망에 연민을 느꼈다고 전했다. 홍사빈은 “거창한 꿈이 아니라도 가능성이 남아있는 상태가 무서운 거라 생각했다. 연규가 그런 점에서 작은 가능성을 지닌 아이 같았다”며 “‘어쩌면 화란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의 마음이 그 친구를 계속 그런 상황에 휘말리게 하고, 그런 선택들을 낳은 게 아닌가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처음 이 작품을 촬영할 땐 연규가 화란에 갈 수 없다는 걸 자신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완성본을 보니 연규가 어쩌면 화란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 희망을 갖고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바뀌더라. 연규의 앞날에 대한 응원과 궁금증을 이 영화를 보실 관객분들이 채워주셨으면 바라는 마음도 있다”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극 중 이복남매로 호흡한 김형서(가수 비비)와의 호흡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도 말했다. 홍사빈은 “형서 씨는 제가 약간 부끄러워질 정도로 자극을 많이 받았다”며 “다른 방향의 해석과 방식의 연기를 보여주더라. 배우로서 제 삶에 큰 도움이 될 조력자처럼 느껴졌다. 그 친구가 갖고 있는 생각, 다양성에 관한 작업들이 많은 귀감이 됐다. 창작자로 또 한 번 만나고 싶다”고 극찬했다. 김형서의 자유롭고 직관적인 접근 방식이 홍사빈 스스로가 세운 연기적 제약을 깨뜨리는 지점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똑같은 초심자로서 김창훈 감독과의 작업도 즐거웠다고 했다. 홍사빈은 “거의 매일 연락하고, 대본 리딩도 미팅하며 10번 정도 읽은 것 같다”며 “지칠 줄 모르게 회의도 거의 매일했다. 그 과정자체가 즐겁고 귀중했다. 무엇이 더 좋을까 고민하며 작품을 찍을 수 있는 환경이 처음이었다”고 기억했다.

긴 호흡의 작품이 처음인 만큼, 신인으로서 헤맬 때마다 송중기와 김종수, 정만식 등 선배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처음 칸 국제영화제 초청 소식을 들었을 땐 20분을 오열했단다. 홍사빈은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님께 부재중 전화가 와 있길래 걱정을 하며 전화했다. 대표님께서 ‘홍사빈 씨 턱시도를 맞추십시오’ 하시더라”며 “그 자리에서 20분정도 엄청 울었다. 창피할 정도로 많이 울었던 기억”이라고 떠올렸다.

배우 홍사빈에게 연규의 ‘화란’과 같은 꿈이나 목표가 있냐 물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칸에 가보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홍사빈은 “왜냐면 올해 칸에서의 기억이 정신없었기에 제대로 안 난다. 매사 잠을 못 자고, 그래서 아쉽더라”며 “수십 년이라도 지나 칸에 가게 되면 송중기 선배님께 연락을 드릴 것 같다. 선배님께 ‘이 땐 이랬는데’ 신나서 이야기드리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송중기를 비롯해 도움을 준 모든 이들을 향한 감사함도 덧붙였다. 홍사빈은 “중기 선배님 등 많은 분들이 잘 알려주시고, 좋게 대해주신 것에 비해 제가 못 느낀 마음들도 있을 거고, 지금은 이해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 이해할 수 있는 감사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시간이 지나 감사한 분들에게 그 때의 고마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화란’은 오는 10월 1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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