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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언어 초월한 보편성…팝컬처 본지에 뿌리내린 '코리안 파워'

김보영 기자I 2021.04.28 06:00:00

'기생충'→'미나리'…K콘텐츠가 美를 사로잡은 비결
한국적 소재로 보편적 공감대 형성…공통 화두 건드려
'기생충' 신호탄, OTT 약진 한몫…韓계 배우 활약상도

(왼쪽부터)지난해 아카데미 4관왕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포스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영화 ‘미나리’ 포스터.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에서 할머니 순자(윤여정 분)가 손자 데이빗(앨런 김 분)에게 건넨 대사의 일부다.

아카데미(오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닌 영화 시상식이지만 사실상 ‘로컬(local, 지역) 축제’란 꼬리표가 따라붙을 정도로 보수적 색채가 강한 행사로 유명했다. 그 견고한 인종과 자막의 벽을 뚫고 지난해 작품상 등 4개의 트로피를 휩쓴 ‘기생충’에 이어 올해는 배우 윤여정이 ‘미나리’로 한국인 최초 아카데미 연기상(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았다.

장르, 언어의 한계를 넘고 세계적 주류로 급부상한 ‘K콘텐츠’의 저력은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과도 닮아있다. 팝문화의 본지인 미국을 매료시킨 K콘텐츠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가족애 등 보편정서 환기…“공통 화두 건드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로 전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음을 일깨운 계기가 됐다. 올해 아카데미 6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음악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돼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은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낯선 미국 땅에 정착하려는 한인 이민 가족의 억척스러운 삶을 그렸다. ‘기생충’과 달리 현지 제작사가 만든 미국 영화지만 ‘미나리’ 역시 대사 중 한국어가 80%에 한국적 소재와 정서가 깃든 작품이란 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전문가들은 낯선 한국의 이야기가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비결로 인종, 언어를 초월한 이야기의 ‘보편성’을 꼽았다. ‘그들, 혹은 당신들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나와 우리의 이야기’란 보편적 공감으로 나아갈 확장성을 지녔다는 점이 ‘기생충’과 ‘미나리’가 지닌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미나리’를 “한국인 가족이 힘겹게 미국에 정착해나가는 과정은 이민의 역사를 지닌 미국 대중에게 정착에 대한 갈망과 희망, 가족애란 보편적 정서를 환기시켰다”고, ‘기생충’에 대해서는 “반지하라는 한국만의 기이한 거주 공간, 계단으로 표현한 계급의 격차를 통해 그 안에서 빈부격차와 안정적인 삶에 대한 세계 공통의 화두를 건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미나리’에 대해 “아메리칸 드림을 좇기 위해 이민을 택한 수많은 미국인들의 결핍감과 상실감 같은 것을 한꺼번에 환기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 해석의 여지가 굉장히 많은 작품”이라고도 덧붙였다.

윤성은 평론가는 캐릭터의 개성을 언급했다. 그는 “윤여정이 연기한 ‘미나리’ 순자 역은 캐릭터 자체로 서양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조건 희생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고 유머러스하면서 교회 헌금을 훔친다거나 손자에게 화투를 가르쳐주는 재치있는 모습들이 서양에서 인식되는 전형적인 할머니상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캐릭터의 개성, 그 캐릭터가 무엇이든 자신만의 색깔로 만들어내는 윤여정의 연기 스타일이 시너지를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미소짓고 있다. (사진=로이터)
‘기생충’ 신호탄→OTT 한몫…韓계 배우 활약도

OTT 시장의 약진도 K콘텐츠의 성장에 기여했다. 장기화된 코로나19로 위축된 극장의 위기를 OTT를 통해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국내 제작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인 덕이다. 올해 넷플릭스 개봉으로 전세계 2600만 가구의 선택을 받은 영화 ‘승리호’와 K좀비 장르를 확립시킨 ‘살아있다’, ‘킹덤’ 시리즈, ‘스위트홈’ 등 OTT에서 공개된 한국 영화, 드라마들이 견인한 해외 팬들의 관심 역시 K콘텐츠의 위상을 높였다는 게 윤 평론가의 설명이다.

미국 현지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를 둔 배우 아콰피나는 지난해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룰루 왕 감독의 ‘페어웰’로 동양인 최초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 역시 지난 2019년 BBC 아메리카에서 방영한 드라마 ‘킬링 이브 시즌2’의 이브 폴라스트리 역으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아시아인 최초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시상식의 호스트까지 맡아 두각을 드러냈다. 윤여정과 함께 ‘미나리’에 출연한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 역시 수상은 불발됐지만, 아시아인 최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윤 평론가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앞서 K팝의 발달 등 다른 분야의 여러 요소들도 지금처럼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영향을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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