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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신속인수 등 비상카드 다시 꺼낸 정부…자금시장 온기돌까

유현욱 기자I 2020.03.24 19:06:54

2001년, 2013년 등장했던 구원투수
"일시적 유동성 부족으로 문 닫는 기업 없어야"
2차 비상경제회의 주재 文대통령 의지 반영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얼어붙고 있는 자금시장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정부가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등 위기 국면에서 등장했던 비상 카드를 모조리 꺼내 들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나 증권사 콜차입 한도 확대 등으로 기업 자금조달 시장은 어느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정상적이고 경쟁력 있는 기업이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때문에 문을 닫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자금조달만 가능하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기업들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문 대통령 의지가 가장 잘 반영된 정책이 바로 최대 2조2000억원 규모로 자금을 집행할 회사채 신속인수제다. 회사채 신속인수제의 목적은 부실기업 회생보다는 우량기업의 일시적 유동성 위험을 대비하는 데 있다.

코로나19로 기업들이 사실상 조업을 중단하며 현금흐름이 나빠진 데다 다음 달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가 6조5495억원이나 된다. 금융투자협회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1년 이래 4월 기준 역대 최대 물량이다. 4월을 포함해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38조3720억원에 이른다. 자금시장 경색을 조기에 풀어주지 않는다면 기업들이 줄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조심스레 고개를 드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2001년과 2013년에도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시행해 효과를 본 바 있다. 특히 2001년의 경우 한해에 몰린 만기도래분이 65조원에 달했는데, 구원 투수로 등장한 것이 회사채 신속인수제였다.

지원 규모는 지난 2001년과 유사한 수준이다. 당시 약 10조원의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자금조달 여건 개선 등으로 기업들이 물량을 스스로 해결한 덕분에 실질적인 지원은 2조5000억원으로 충분했다.

관건은 지원 대상이다. 2001년과 2013년 모두 회사채 만기가 집중돼 유동성 위험이 있으나 20%가량은 자체 상환 가능한 기업을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 이번에도 회사채 차환(이미 발행된 채권을 새로 발행된 채권으로 상환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기업과 대기업을 상대로 한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나 여행사가 우선 거론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이날 정부종합청사에서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 세부내용을 발표하면서 “항공업계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말한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 준다. 앞서 지원받은 기업으로는 2001년 현대건설·현대상선·쌍용양회·성신양회·현대유화·하이닉스반도체 등이, 2013년은 동부제철·한라건설·현대상선·한진해운·대성산업 등이 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대상 기업이 만기도래액의 20%는 자체 상환하면 나머지 80%는 산업은행이 총액인수 후 채권은행과 신용보증기금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신보는 인수한 회사채를 기초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발행한다.

회사채 신속인수제에 더해 회사채 등급 A 이상 또는 코로나19 피해로 등급이 하락한 기업 중 투자등급(BBB) 이상인 경우에 한해 산업은행이 최대 1조9000억원어치를 직접 매입하기로 해 회사채 시장에 미칠 파급력은 2001년을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지난 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표한 6조7000억원 규모 P-CBO 발행 지원까지 합치면 정책금융기관이 총 10조8000억원에 달하는 시장성 차입수요를 떠안아주는 셈이 된다. P-CBO는 신용도가 낮아 회사채를 직접 발행하기 힘든 기업의 신규 발행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기업이 직접금융 시장에서 저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증권사에 대해 증권금융이 대출에 나서고 증권사 콜차입 한도를 현행 15%에서 30%로 확대하는 한편 우량기업의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 차환을 산은 등이 지원하기로 한 점도 단기 자금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채권안정펀드보다 최근 CP를 중심으로 단기 자금시장 위축이 심화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적극 대응했다”며 “단기 자금시장에 일부 숨통을 틔워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자금시장 안정 방안은 예상했던 규모를 뛰어넘는다”며 “일단 시장의 투자심리가 진정되면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과거와 같이 만기도래 차환물량을 일정수준 매입해주는 수준에 그친다면 한계에 부닥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산업 특성에 맞춘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혜연 KB증권 연구원은 대한항공, 두산중공업 등 BBB등급 기업을 예로 들며 “차환물량 이상의 유동성이 필요한 비우량 기업의 경우 대출이나 보증 발행 등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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