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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언론 정의'를 향한 투쟁…전직 기자가 쓴 고발장

김은비 기자I 2020.07.23 18:08:25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출간
20년 기자 생활 녹여 쓴 언론의 문제
"탐욕·특권 버리고 공공성 찾아야"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누구나 정의만 추구한다면 인간은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 상인’에서 표셔가 샤일록에게 한 말이다. 사람은 정의에 대해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 큰 정의를 외치면서 작은 정의는 저버리기도 하고, 사적인 정의가 공적인 정의를 밀어내기도 한다. 20년 넘게 언론사에서 기자로 몸담았던 저자 이소룡은 정의롭다고 여겨지던 언론이 어느 순간 일부 언론에 의해 그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책은 저자가 오랜 기자생활을 바탕으로 쓴 고발장이자 반성문이다. 그는 직접 현장에서 보고 느낀 바를 통해 언론 위기의 본질과 해법을 찾는다. 특히 저자가 언론의 위기 원인으로 꼽은 일각의 ‘공정성 결여’는 더욱 뼈아픈 지적이다.

저자가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올해 초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조국 사태’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역대급 수사력을 동원한 검찰을 두고 ‘선택적 정의’라는 말이 유행했다. 특별히 선택한 수사에서만 유별나게 정의를 찾는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여기에 팩트를 선택적으로 보도하는 ‘선택적 보도’로 논쟁에 불을 지폈다. 한쪽에서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다른 한편에서는 ‘검찰개혁’을 외치며 대한민국을 양분했다.

공정성이 결여된 배경에는 정파성을 앞세운 보도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객관적이기보단 ‘아니면 말고’ 식 보도로 오보나 허위보도, 과장보도도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한 일간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별장 성접대와 관련 있는 것처럼 신문 1면 머리를 장식한 사례를 꼽았다.

공정성을 잃은 다른 이유로는 일방적으로 검찰의 정보를 검증 없이 받아 쓴 기자의 행태를 지적한다. 당시 이런 기자를 비꼬는 말로 ‘검찰’과 ‘해바라기’를 합친 ‘검바라기’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물론 이런 검찰발 기사 받아쓰기 논란에는 구조적 요인도 컸다. 기자가 검사와 대등하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없다. 특히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의 경우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검찰이 독점하기 때문에 취재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있는 기관도 검찰밖에 없다.

공정성의 결여 외에도 저자는 언론의 권력화, 과도한 상업주의, 이익집단화 등의 측면에서 언론의 위기를 진단했다. 지난 20년간 조국사태만큼이나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사건들을 사례로 들며 각각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역사적 현장들이 기사로 만들어지기까지 언론사 내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솔직하게 적었다.

언론에 대한 비판만 담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공정성을 부르짖으면서 한편으로 사적 영역에서 기자라는 특권 의식에 젖어 일부 특혜를 누린 스스로의 과오를 고백하기도 한다.

현직에서 간부급 기자로까지 일했던 저자는 경영논리가 섞여 있는 오늘날 언론에서 ‘개혁’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따라서 현실에 맞지 않는 원칙론적 문제 해결 방식을 제안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언론이 다시 겸허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본분에 맞지 않는 권력은 지양하고 탐욕과 특권을 버리고 미래지향적 생존방식을 도모해 길을 찾자고 한다. 수익을 버릴 순 없지만 최소한의 공공성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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