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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기업 자금줄 끊어라"…미·중 갈등에 쪼개지는 금융시장

정다슬 기자I 2020.05.20 16:39:03

나스닥, 해외기업 상장 기준 높여…中기업 '저격'
美연기금, 中주식 투자 경고…회계감사도 예고
'회계부정' 루이싱 커피, 결국 상장 폐지 통보
홍콩거래소, 2차 상장 기업도 항셍지수에 포함키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코로나19로 격화되고 있는 미·중 갈등이 금융시장에도 전이되고 있다.

로이터통신·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미국 대표적 증권거래소인 나스닥은 19일(현지시간)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해외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할 때 최저 2500만달러, 혹은 시가총액의 최소 4분의 1를 조달해야 한다는 기준을 설정하기로 했다.

나스닥 상장 신청 기업에 대한 감사도 더욱 엄격해진다. SEC와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 조사가 어려운 국가·지역 기업의 회계감사를 담당하는 감사법인을 정기적으로 조사해 재무제표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나스닥은 규제 대상으로서 중국기업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장은 사실상 중국기업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나스닥에 상장한 중국 기업 상당수가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정보회사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나스닥에 등록된 중국 기업 155곳 중 40곳이 IPO를 통해 2500만달러를 조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중국정부는 PCAOB가 중국 기업의 재무제표를 심사하는 것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SEC도 중국기업에 대한 규제를 예고하고 있다. 오는 7월 중국을 포함한 신흥시장 투자 리스크를 논의하는 회의가 열린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기업이 미국의 규칙을 준수하고 있는지 조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투자자를 지키기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트럼프 “中기업 투자는 국가 안보의 위협”

중국 기업들은 지금까지 금융시장이 미성숙하고 자본 통제가 강한 자국 증시 대신 미국 증시를 선호해왔다.

세계 최대 자금시장에 상장되는 것만으로도 기업가치가 재평가되며 투자자들을 찾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달러를 조달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 중국기업의 자금줄을 끊어내기 위한 압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실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부터 트럼프 정부가 미국에 상장한 중국기업에 대한 제재를 가할 것이란 ‘설’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블룸버그 통신과 CNBC는 미국 정부가 △자본투자 차단 △상장폐지 추진 △미국정부 관련 연기금의 중국시장 투자 차단 △미국이 관리하는 주가지수에 중국 주식 제외 등을 검토한다고 보도했다. 그 영향으로 알리바바·바이두 등 중국 주식이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에 대한 제재는 동시에 글로벌 최대 금융시장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을 흔드는 것이기도 해 미국 정부는 그 가능성을 부인해왔다. 실제 이같은 보도가 나오자 모니카 크롤리 미국 재무부 대변인은 이메일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는 중국기업의 미국 상장에 어떤 제한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미·중 갈등이 더욱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에 상장된 중국기업에 대한 압박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11일 백악관은 공무원 연금의 중국 주식 투자를 앞두고 노동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연장정부 직원의 돈을 중대한 국가 안보와 인도주의적 우려가 있는 (중국) 회사들에 제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관련 결정적 증거를 은폐했으며 그 결과 “중국기업들이 제재와 보이콧을 당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미국 회계기준을 따르지 않는 중국 상장기업에 대한 회계 감사를 예고하기도 했다.

중국 기업들 역시 단초를 제공했다.

중국판 스타벅스로 기대를 모았던 루이싱커피는 지난달 4000억원대 매출을 부풀리는 회계조작 사건을 일으켜 결국 이날 상장 폐지 통보를 받았다. 중국 1위 온·오프라인 하오웨이라이와 중국판 넷플릭스로 불리는 아이치이 역시 회계 부정 의혹이 제기된 상태이다.

◇월가탈출 모색하는 中…홍콩 “환영한다”

강해지는 역풍을 피해 중국기업들은 ‘월가 탈출’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조사회사 로직에 따르면 중국기업이 2019년 미국 증시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은 35억달러로 전년대비 61% 감소했다. 미국은행 주식 상장기업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중국 본토와 홍콩 시장으로 가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SMIC는 뉴욕 증시에서 상장 폐지했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견제하는 미국 정부가 주요 고객사인 화웨이를 집중공격하자, 유탄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읽혔다.

실제로 이후 화웨이는 대만 TSMC에 맡겼던 반도체 위탁생산 물량을 SMIC로 이전했다. SMIC은 올해 중국판 나스닥인 쿼창반(科創板·과학혁신판) 상장을 추진한다.

홍콩증권거래소 2차 상장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26일 알리바바는 홍콩증권거래소 2차 상장에 성공해 110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여기에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중국 최대 온라인여행사 씨트립·중국 2대 게임사인 넷이즈 등도 홍콩거래소 상장을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홍콩거래소는 이같은 움직임을 ‘후이강차오’(回港潮·홍콩 복귀의 물결)라고 부르며 환영하는 모습이다. 홍콩시위 등으로 경색됐던 글로벌 금융시장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할기회로 여기고 매력을 높이기 위해 규제 완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홍콩거래소는 2018년 중국 기업들의 홍콩 증시 상장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됐던 차등의결권을 인정했다. 지난 18일에는 2차 상장기업도 항셍지수에 포함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에 따라 항셍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 자금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면서 알리바바, 샤오미, 메이투안 등이 수혜를 볼 것이라고 미국 CNBC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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