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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농심 먼저' 공식 깬 오뚜기의 라면값 인상

전재욱 기자I 2021.07.21 17:04:02

라면 의존도 농심·삼양보다 현저하게 낮고
상반기 식품값 고르게 올려 원가 부담 덜어
영업익 및 판매 환경도 경쟁사 대비 견조한데
선제적 라면값 인상한 오뚜기 결정에 뒷말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오뚜기의 라면값 인상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명분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다. 8월부터 진라면 12.6%를 비롯한 라면 값이 하루 평균 11.9% 올랐는데 `원가 상승 압박` 이외에 더 추가적인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진라면(사진=오뚜기)
21일 오뚜기 1분기(이하 같은 기준) 보고서를 보면 매출(연결 기준) 6712억원에서 면류가 차지한 비중은 28%(1892억원)이다. 지난해도 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라면만 팔아서 장사하는 경쟁사는 처지가 다르다. 전체 매출에서 라면의 비중은 농심이 79%, 삼양식품은 96%다. “원재료 값 상승 압박 탓”에 라면 값을 올렸다는 오뚜기보다 농심과 삼양식품의 부담이 더하는 의미다. 오뚜기는 라면 이외 상품 가격을 상반기에 골고루 올려서 부담을 얼마큼 털어낸 상황이기도 하다.

실적을 보더라도 오뚜기는 이들보다 형편이 나은 편이다. 전년 동기 대비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오뚜기가 12% 줄어 부진했으나 농심(55.4%↓)과 삼양식품(46%↓)은 더 울상이다. 종합식품기업으로서 리스크를 줄인 오뚜기와 라면에만 집중한 회사의 차이다.

오뚜기의 실속은 장사 수완에서도 눈에 띈다. 오뚜기가 물건을 판매하는 데 들어간 비용(급여나 광고 등 판매·관리비)이 매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9%로 농심(25.7%)과 삼양식품(15.8%)보다 낮다. 하나를 팔아도 품을 아껴써 힘이 덜 썼다는 의미다. 한 식품사 관계자는 “오뚜기 사업구조를 보면 라면 값 인상 요인으로 원재료 탓만 꼽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간 라면 값 상승 공식을 거스른 점도 눈에 띈다. 그간 라면 값이 오른 굵직한 시기(2003~2004년, 2007~2008년, 2011~2012년, 2016~2017녀)를 보면 라면업계 1위 농심이 올리고 나머지가 따라갔다. 라면뿐 아니라 식품 업계 불문율과 같은 공식이다. 한국 재계가 `삼성이 하면 한다`는 걸 행동규범처럼 여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올해도 라면 값 인상은 기정사실로 되다시피 하고 단지 시기의 문제였는데 그간의 `농심 먼저` 공식을 깨뜨리고 오뚜기가 치고 나간 것이다. 관례가 만능은 아니지만 “라면 2등 오뚜기가 스스로 1등을 선언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올해 초 라면 값 인상 철회 헤프닝은 다시 회자된다. 지난 2월 오뚜기는 라면가격을 올리고자 했으나 `소비자 요구를 반영해 없던 일`로 했다. 가격 조정은 최고 의사결정자 승인으로 이뤄지기에 번복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기업 신뢰와 직결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먹는 장사는 신뢰 장사다.

물론 기업 의사결정은 재량에 달렸다. 다만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따지는 주체는 이사회와 주주뿐 아니라 시장도 가능하다. 인상 결정을 번복하고 재인상 과정과 재인상을 둘러싼 여러 환경을 비춰보면 시장에서 군말이 따른다.

식품사 관계자는 “가격 조정은 최고 의사결정자의 의지라서 조직 안에서 꺾을 사람은 없다”며 “그렇다면 올해 초에 라면 값 인상 취소는 외부에서 이뤄진 의사결정이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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