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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젠 문은상 대표 등 9명 기소…"정·관계 로비 확인 안 돼"

박순엽 기자I 2020.06.08 16:43:24

검찰, '신라젠 불공정거래 사건' 중간수사 결과 발표
문은상 대표 포함한 전·현직 임원 등 9명 재판 넘겨
일부 여권인사 연루설 일축 "실체가 확인되지 않아"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제약·바이오 기업 신라젠(215600)의 불공정거래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10개월 만에 수사를 일단락했다. 검찰은 문은상 현 대표이사 등 전·현직 경영진을 재판에 넘겼지만, 그동안 논란이 됐던 정·관계 로비 의혹은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또 문 대표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팔아 손실을 피했다는 의혹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서정식)는 지난해 8월 금융위원회가 긴급·중대(패스트트랙) 사건으로 선정해 검찰에 넘긴 ‘신라젠 불공정거래 사건’과 관련해 문 대표, 이용한 전 대표, 곽병학 전 감사, 전무 A씨 등 4명을 구속 기소하고, 5명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고 8일 밝혔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이사가 지난 4월 2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 “문 대표 등 신라젠 전·현직 임원 4명 구속 기소”

검찰에 따르면 문 대표 등은 2014년 3월쯤 자기 자본 없이 350억원 상당의 신라젠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해 1918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BW는 발행 이후 일정 기간 내 미리 약정된 가격으로 발행 회사 주식을 사들일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를 일컫는다. 검찰은 이들이 신라젠에 대한 자신들의 지분율을 높이고자 350억원 규모의 BW를 인수한 뒤 신주인수권을 행사하기로 공모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 3일 열린 이 전 대표와 곽 전 감사의 첫 공판에서 검찰에 따르면, 2014년 당시 페이퍼컴퍼니 ‘크레스트파트너’가 당시 동부증권(현 DB금융투자)으로부터 350억원을 대출받아 이를 문 대표 등에게 빌려줬고, 문 대표 등은 이 돈으로 신라젠 BW를 사들였다.

신라젠은 이틀 뒤 납부된 BW 대금 350억원을 크레스트파트너에 빌려줬고, 크레스트파트너는 같은 날 동부증권에 빌린 돈 350억원을 갚았다. 신라젠은 1년 뒤 350억원의 BW 원금을 문 대표 등에 상환했고, 이 돈은 크레스트파트너로 흘러가 크레스트파트너가 신라젠에 빌린 돈을 갚으면서 자금 거래는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 대표 등이 2015년 11~12월 1000만주의 신주인수권을 주당 3500원에 행사하며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350억원이라는 돈이 한 바퀴 도는 사이 문 대표 등은 자기자본 없이 신주인수권을 확보했지만, 정작 신라젠에는 자금 조달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 개입한 크레스트파트너 대표와 동부증권 임원진 2명도 함께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불법 BW 발행 구조를 기안하고 자금을 제공한 동부증권 임원진의 책임을 물어 동부증권도 자본시장법상 양벌규정을 적용해 기소했다”며 “자본시장법상 시장 질서를 준수해야 하는데도 불법적인 구조를 설계하는 제도권 금융사들에 경고하고, 금융시장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문 대표 등은 2013년 7월 신라젠이 한 대학 산학협력단에서 특허권을 매수할 때 중간에 B사를 끼워 넣어 매수대금을 7000만원에서 30억원으로 부풀려 지급하는 방법으로 신라젠에 29억3000만원 상당의 손실을 끼친 혐의도 받는다. 신라젠 전 대표이사 황모씨는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특히 문 대표는 2015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지인 5명에게 부풀린 수량의 스톡옵션 46만주를 부여한 뒤 스톡옵션을 행사해 취득한 신주 매각대금 중 총 38억원 가량을 현금 등으로 돌려받은 혐의도 받는다.

이날 검찰은 문 대표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혐의로도 추가 기소했다. 검찰은 문 대표가 지난해 6월 채권회수 조치 없이 자본잠식 상태인 자회사에 미화 500만달러를 대여한 뒤 그해 8월 이를 전액 손상 처리해 신라젠에 손해를 가했다고 판단했다.

이영림 검사가 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신라젠 수사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 인정 어려워…“정·관계 로비 확인되지 않아”

이밖에 신라젠 전무 A씨는 2019년 6월 신라젠의 항암 치료제 ‘펙사벡’의 간암 대상 임상 3상 시험의 무용성 평가 결과가 좋지 않다는 악재성 정보를 얻은 뒤,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전량을 팔아치워 64억원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신라젠 주가는 펙사벡 개발로 말미암은 기대감으로 한때 크게 올랐으나 지난해 8월 임상시험 중단 사실이 알려지자 주가가 폭락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문 대표를 포함한 다수의 신라젠 전·현직 경영진이 악재성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이들이 주식을 매각한 시점은 2017년 12월에서 2018년 초쯤인데, 미공개 정보가 생성된 시점은 2019년 3월 이후”라며 “주식 매각 시기, 미공개정보 생성시점 등에 비춰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일부 여권 유력 인사가 신라젠 행사에 참여했다는 사실 등을 들어 정·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검찰은 이러한 의혹을 일축했다. 검찰 측은 “신라젠 관련 계좌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정·관계와 관련된 혐의나 정황이 나오지 않았다”며 “구체적인 단서가 없어 따로 조사할 만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추징보전 조치를 통해 문 대표 등의 고가주택, 주식 등 1354억원 상당의 재산을 확보했다”면서 “추가 추징보전 조치를 통해 범죄로 얻은 부당이익을 철저하게 환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또 “투기자본감시센터 고발사건 등 나머지 부분은 통상적인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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