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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일하고 덜 받는' 연금개혁에 프랑스 전역 시위 물결

정다슬 기자I 2019.12.12 18:34:12

중도·온건파 CFDT,연금개혁 반대 시위 참여로 선회
마크롱 정보 양보안 내놓았지만 국민 설득 실패
마크롱 정부 "보편적 연금 체계 구축해야" 강행 의지

△프랑스 철도(SNCF)직원들이 11일(현지시간) 프랑스의 연금 개혁에 대해서 설명하는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의 대국민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로랑 버거 프랑스민주노동연합(CFDT) 조합장은 11일(현지시간)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의 대국민 담화 이후 이같이 밝혔다. CFDT는 프랑스 최대 민간 노동조합으로 중도·온건파로 분류된다.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가 연금 개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을 때, 정부를 옹호한 거의 유일한 노조였다.

5일 시작한 전국적인 시위에도 CFDT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버거는 “마크롱의 연금 개혁안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17일 시위에 참여할 것을 예고했다.

프랑스 정부가 이날 발표한 개혁안은 42개에 달하는 국민연금 체제를 2025년까지 포인트제를 기반으로 한 단일 체제로 개편한다는 게 골자다. 현재 프랑스 국민연금은 근로자가 받았던 가장 높은 임금을 기준으로 연금액을 계산한다.

이번에 프랑스 정부가 밝힌 개혁안에 따르면 생애평균소득의 평균을 기준으로 연금액을 산정한다. 보통 경력 초기에는 임금이 낮고 연차가 쌓일수록 임금이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평균’을 기준으로 하면 연금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 오래 일하고 더 적게 받게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프랑스에서는 지난 5일부터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이어졌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이 마비되고 간호사, 교사, 소방관, 경찰관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마비되자 사람들이 자전거, 자동차, 스쿠터 등을 끌고 나오면서 도로는 마비됐다.

강한 반발에 놀란 프랑스 정부는 몇 가지 양보안을 제시했다. 경력 초기 저임금인 교사들이 받는 불이익을 고려해 교사의 임금 자체를 올리겠다고 밝혔다. 간호사와 같이 고강도 장기간 노동이 필요한 직종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산정과 기여금 등과 관계없이 월 연금 수령액이 최소 1000유로(132만원) 이상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군인·소방관·경찰·교도관 등 안보·치안 관련 특수 공무원들에게도 현재와 비슷한 수준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로 했다. 또 병이나 실업 등의 이유로 소득이 없는 기간에도 적절한 연금 포인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향후 연금이 큰 폭으로 깎이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뒀다.

그러나 이같은 양보안이 노조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법적 퇴직연령을 62세로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개혁 이전과 동일 수준의 연금을 받으려면 평균 2년을 더 일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좌파 노동조합 CGT의 필립 마르티네즈 조합장이 “마크롱의 개혁안은 오늘날 싸우고 있는 이를 조롱하고 있다”며 정부가 연금 개혁안을 철회할 때까지 무기한 투쟁을 다짐했다.

프랑스의 퇴직연금은 퇴직자에게 세전 수입의 평균 74%를 보장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인 58%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프랑스의 노인 빈곤율 역시 유럽에서 가장 낮다. 문제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직하기 시작하며 연금 수급자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있는 데다 기대수명까지 오르면서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하는 프랑스’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마크롱 정부는 연금 개혁이 프랑스인들이 더 오래 일하도록 설득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OECD에 따르면 프랑스의 연간 노동시간(630시간)은 독일(772시간), 영국(747시간), 미국(826시간)보다 짧다.

한국노동연구원 10월호 국제노동브리핑의 ‘프랑스 연금제도의 변화와 최근 개혁안’(이태훈)은 프랑스의 평균 근로시간이 짧은 요인 중 하나로 남성들의 조기 퇴직을 꼽았다. 남성들은 60세 정도면 은퇴하지만, 여성, 특히 비정규직 여성은 평균 67세까지 일해야 한다.

외신들은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던 CFDF까지 돌아서면서 마크롱 정권은 궁지에 몰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연금 개혁으로 정권이 바뀐 전례가 있다. 1995년 알랭 쥐페 전 총리 역시 연금 개혁을 추진했다가 1개월간 이어진 대규모 시위에 밀려 결국 이를 철회했다. 마크롱 정부가 쉽지 않은 싸움을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마크롱 정부는 물러서지 않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필리프 총리는 “보편적 연금 체계를 구축할 때가 왔다”며 “새 체제가 공정하다고 믿기에 나는 이 개혁을 완수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11일 파업으로 멈춰선 지하철역을 한 승객이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가고 있다. [사진=AFP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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