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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22병 먹고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게 만든 ‘제2의 이은해’

홍수현 기자I 2024.01.17 19:35:16

조폭이라고 속여 몇 년간 피해자 가스라이팅
재우지 않고 소주 22병 마신 상태서 "바다 들어가"
폭행, 가혹행위, 금품갈취...피해자 저항 불가 상태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40대 남성이 기초생활수급자를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하며 수영을 강요해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피해자가 식당에서 피의자 옆에 무릎을 꿇고 있다. (사진=창원해양경찰서 제공 영상)
17일 창원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1일 경남 거제 옥포항 수변공원에서 한 남성이 바다에 빠져 숨졌다.

피의자 A씨(40대)와 사망한 B씨(50대), C씨(50대)의 관계는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됐다.

A씨는 몇 년 전 고시원에서 알게 된 B씨와 C씨에게 자신이 폭력조직에서 활동한 것처럼 거짓말하며 폭행과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피해자들이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실신할 때까지 서로 싸움을 시키기도 했다.

B씨가 사망하기 하루 전날에는 피해자들이 도망갈 수 없게 신체적 자유를 억압한 뒤 술을 강제로 마시게 하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마신 술은 소주 22병에 달했다.

날이 밝고 오후 2시쯤 A씨는 옥포수변공원에서 피해자들에게 “둘이 바다에 들어가 수영하라”고 지시했다. 몇 년간 이어진 A씨의 폭행과 협박 등으로 두려움에 떨며 육체적, 정신적 항거 불능 상태에 있었던 두 사람은 그 말에 따랐다.

B씨는 바로 옷을 벗고 난간을 넘어갔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뭇대던 C씨도 “안 들어가고 뭐 하냐”는 A씨의 재촉에 난간을 넘어 바다에 뛰어들었다. 파도에 휩쓸린 B씨는 결국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숨졌다.

경찰 조사에서 C 씨는 “언제 맞을지 모르니까,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말을 듣지 않으면 두들겨 맞으니까 어쩔 수 없이 지시에 따랐다”고 진술했다.

피의자의 지시로 서로 싸우다 실신한 피해자가 119구급대에 의해 이송되고 있다.(사진=창원해양경찰서)
조사 과정에서 A씨가 이들로부터 금품도 갈취한 사실이 드러났다. B씨와 C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정부로부터 매달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었다.

A씨는 2021년부터 경제 사정이 어렵다며 C씨에게 현금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유흥비 변제를 위해 2023년 4월께 두 사람의 수급비가 입금되는 카드를 빼앗아 1300만원 상당의 현금을 인출해 가로챘다.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두 사람에게 일용직 노동을 시켜 그 수입을 자신의 모친 계좌로 송금하도록 지시해 230만원가량을 강탈했다.

2023년 6월께는 이들에게 도보로 5시간가량이 소요되는 17㎞ 거리를 걷게 하면서 도로명 표지판을 사진으로 찍어 자신에게 전송하라고 지시한 일도 밝혀졌다.

A씨는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B씨와 C씨의 휴대전화를 수시로 확인하고 평소 일상을 보고 받기도 했다.

피의자의 지시를 받은 피해자가 경남 거제시 옥포수변공원 난간을 넘어가고 있다. (사진=창원해양경찰서)
해경은 A씨의 지속적인 폭행, 가혹행위 등으로 피해자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황폐해지며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어 비정상적인 지시에도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생존한 C씨는 옷 한 벌로 사계절을 버티고 매일 끼니를 걱정하는 생활을 지속했다고 설명했다.

숨진 B씨 또한 차비가 없어 걸어 다니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몸무게가 18㎏가량 빠지는 등 아픈 몸을 이끌고 막노동을 강요받으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권마저 빼앗긴 상태였다고 전했다.

해경은 지난해 12월 A씨를 구속송치했으며 검찰은 지난 16일 A씨를 과실치사, 강요, 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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