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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날 때마다 불안하더라니"…'광주 건물 붕괴', 예견된 참사

이용성 기자I 2021.06.10 18:13:46

9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 건물 붕괴
도로 지나던 시내버스 덮쳐 9명 사망·8명 부상
인근 주민들 "도로 통제 한 번도 안 했다" 비난
경찰, 전담 수사본부 꾸려 사고 원인 규명 방침

[광주=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황현규 기자] “여기 지나갈 때마다 늘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는데…”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건물 붕괴 참사’ 발생 이틀째인 10일. 사고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주 중인 이모(30)씨는 무너져 내린 건물을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씨는 “사고가 나기 불과 수십분 전에 우리 아버지도 이곳을 지나갔다”며 “사고 발생 이후 주변 사람들도 다들 ‘이럴 줄 알았다’고 하더라”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10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 현장에서 국과수와 경찰 등 관계자들이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용성 기자)
인근 주민 “오갈 때마다 불안”…‘예견된 참사’

9일 오후 4시 22분쯤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공사 중 5층 규모의 상가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버스 안에 갇힌 17명 가운데 9명이 숨지고 8명은 중상을 입었다. 밤샘 수색을 한 결과 추가 매몰자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현장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예견된 참사’라며 입을 모았다. 사고 장소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황망한 표정으로 사고 수습 현장을 지켜보던 A(62)씨는 “이곳에서 늘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공사 현장 앞 도로를 통제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도로 바로 옆에서 그렇게 위험한 공사를 진행하는데 통제하지 않고 ‘생(生)’으로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뉴스를 보고 이곳에 찾아왔다는 50대 김모씨는 “버스 타고 이곳을 지나면서 공사 현장을 볼 때마다 불안했다”며 “건물 하나 남았었는데 철거하기 전에 뭔가 안전장치를 해놓고 진행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5월 14일 시작된 철거공사 기간 동안 도로를 통제하거나, 버스정류장을 임시로 옮기는 등 ‘안전 조치’는 없었다. 당시 신호수 2명을 배치해 보행자를 통제했을 뿐 도로를 통제한 인원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참변이 일어난 건물 앞 ‘학동증심사입구역’ 버스정류장은 14개 노선버스가 정차하며 하루에도 수백명이 이용하는 곳이다.

사고가 발생하고 나고 하루가 지난 10일 오후, 도로 위로 쏟아졌던 건물 잔해는 치워졌지만, 도로 곳곳이 파여 있어 당시 충격을 실감케 했다. 무너진 건물에서 부서져 나온 콘크리트 벽돌과 유리조각 잔해가 30m 밖 길 건너편 인도까지 튀어 당시 사고의 참혹한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다.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총 17명 사상자 발생…경찰 “사고 원인 규명 중”


9일 붕괴 당시 작업자들은 5층 건물 맨 위에 굴착기를 올려 철거 작업을 하고 있었으나 이상 징후를 느끼고 서둘러 건물 밖으로 피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건물이 도로쪽으로 무너지면서 정류장에 막 정차한 시내버스를 덮친 것이다.

이번 참사의 원인은 무리한 철거 공법과 안전 지침 위반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철거는 건물 옆에 흙벽을 세우고 반대쪽에서 건물을 밀어내 철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통상 고층 건물의 경우 위에서부터 아래로 철거하는 식으로 공사가 진행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5층의 저층건물인데다가 평지에 위치해 있어 반대쪽에 지지대를 세우고 건물을 지지대쪽으로 밀어 부수는 일명 ‘먹어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는 게 재개발 시행사 HDC현대산업개발(294870) 쪽 설명이다.

현장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공사법이 흔히 쓰이는 방식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이병희 기술사는 “밀어내는 방식으로 철거하는 것은 최근이 아닌 한참전에 시행했던 방식이며, 안정성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지대가 약하면 건물 잔해를 지지하지 못해 부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경찰과 국토교통부 등에 “사전 허가 과정이 적법했는지, 건물 해체 공사 주변의 안전조치는 제대로 취해졌는지, 작업 중에 안전관리 규정·절차가 준수됐는지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합동수사팀을 수사본부로 격상하고 사고원인을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10일 광주경찰청 합동수사팀을 광주청 수사부장을 본부장으로 한 수사본부로 격상하고, 광주청 강력범죄수사대와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를 투입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경찰 등 합동감식반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사고 현장을 감식했다.

광주경찰청은 이날 오후 철거현장 관계자와 목격자 등 총 13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마쳤고, 과실이 중하다고 판단되는 철거공사 관계자 1명을 입건했다. 또, 이날 오후 4시쯤부터 철거공사 업체 등 5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수사를 전개하고 있다.

광주 건물 붕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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