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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통령이 전날(12일) 청와대에서 퇴거해 삼성동 사저로 돌아가면서 남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메시지는 표면상 검찰 수사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불소추특권이 사라진 만큼 사실상 ‘벼랑 끝’에 선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13개 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출금금지와 소환 통보를 저울질 중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이 박 전 대통의 파면으로 막을 명분이 약해진 청와대가 압수수색에 속도를 낼 공산도 다분하다.
◇삼성동 사저에 ‘小 청와대’ 구성?
내심 ‘정치적 재기’를 모색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만만찮다. 5월 장미대선을 넘어 내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 등의 일정에 보폭을 맞춰가며 ‘친박(친박근혜)계’의 활로를 모색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을 총괄 업무에, 윤상현·조원진·이우현 의원을 정무에, 김진태 의원을 법률에, 박대출 의원을 수행 업무에, 민경욱 의원을 대변인으로 앉히면서 사실상 ‘삼성동 소(小) 청와대’를 구축했다. 친박계의 조력을 받으며 검찰과 옛 야권을 겨냥한 여론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옛 여권의 한 관계자는 “당장 5월 대선정국에서부터 ‘영향력 행사’가 시작될 수 있다”며 “일각에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처럼 삼성동계를 본격 가동할 것이라는 이야기”라고 했다.
이들은 ‘파면 대통령’이라는 오명에도, 보수의 심장부인 대구·경북(TK)에서 아직 박 전 대통령의 아성(牙城)을 넘어설 맹주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 박 전 대통령 재임 중 옛 여권 핵심부에선 “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상왕(上王)’을 꿈꾸고 있다”는 말들이 공공연히 새어나왔다.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4·13 총선을 코앞에 두고 여러 비판에도, 전격적으로 TK를 방문하며 정치에 개입한 적이 있다”며 “자신의 후임으로 마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이처럼 진즉 폐족(廢族)으로 전락했어야 할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가 세 규합에 나서며 대내외적으로 ‘아직 건재하다’는 점을 과시했고, 더 나아가 이제 막 스타트를 끊은 장미대선 정국의 핵으로 부상한 건 박 전 대통령 측으로선 고무적으로 평가된다. 향후 ‘동정론’까지 띄우면 ‘의외의 변수’가 될 공산도 없지 않다는 해석이다.
◇스스로 옭죄는 일?
그러나 박 전 대통령 행보를 둘러싼 여론의 비판이 커지면 오히려 ‘운신의 폭’만 좁힐 수 있다는 전망도 만만찮다. 일단 한차례 분열된 범보수가 박 전 대통령의 불복 선언으로 2차 분열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우려다. 옛 여권의 한 관계자는 “친박계를 제외한 보수 다수는 법치를 무시한 박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것”이라며 “정당성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친박계의 회생을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끝까지 ‘유폐’하는 모습을 보여도 모자랄 판에 ‘승복’은커녕 ‘불복’ 메시지를 냈으니 동정여론도 오히려 반감될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