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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대 없는 생리대 유해성' 논란에 소비자 불안

정태선 기자I 2017.09.05 16:57:54

미국·프랑스·일본 생리대 유해성 논란 있지만 '無'기준
여성소비자 우려 확산..식약처 '늦장대응' 불신 더 키워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여성환경연대 회원들이 정부에 생리대 모든 유해성분 규명 및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내 몸이 증거다, 나를 조사하라’는 기자회견을 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깨끗한 나라의 ‘릴리안’으로 시작된 유해성 생리대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지만 이를 판단할 기준조차 없어 소비자의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하지만 생리용품에 대한 관리기준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여성환경·소비자단체 등이 ‘생리용품의 전성분 공개 및 안전성 검사’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리용품 안전성 악영향 물질 “증명된 것 없어”

이번 생리대 사태는 검증되지 않은 조사 결과와 소수 피해자들의 주장이 급속도로 확산되며 걷잡을 수 없게 됐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된 여성환경연대와 강원대 김만구 교수팀이 분석한 여성의 생리용품 함유 물질 가운데 여성의 생리불순, 다낭성 난소증후군, 자궁근종 등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확인된 물질은 일체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환경호르몬 대체물질 개발사업단,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주최로 지난 4일 열린 ‘여성 생리용품 안전성’ 관련 간담회에서 최경철 충북대 수의대 교수는 “벤젠, 톨루엔 등 생리대에 포함된 8가지 유해물질 중에서 여성의 생식 건강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증명된 물질은 없다”며 “대부분의 생식 독성 연구는 실험동물에게 해당 물질을 소량 먹인 뒤 생식기에 어떤 독성을 나타내는지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여성의 생리대에 든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여성의 생식 건강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 알려면 쥐 같은 설치류가 아니라 원숭이를 이용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생리대에서 검출된 유해물질 중에서 환경호르몬으로 의심받고 있는 것은 ‘스티렌’이다. 하지만 스티렌이 환경호르몬인지 대해서도 전문가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계명찬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스티렌을 환경호르몬으로 보기 힘들다는 연구도 많다”면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볼 때 생리대를 통해 노출되는 정도의 스티렌이 여성에게 생식 독성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여성환경연대가 지난달 24일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미·프·일, 여성소비자 유해성 지적..객관적 기준 없어

생리대의 유해성 논란은 미국에서도 환경단체가 처음으로 제기했었다.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WVE)가 2014년 8월 미국에서 생리용품 점유율 44%를 차지하는 피앤지(P&G)사의 제품 가운데 생리대 브랜드인 ‘올웨이스’ 4종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스티렌, 염화에틸, 클로로포름 등 ‘휘발성유기화합물질’(VOC)이 검출됐다고 밝힌 것. 스티렌은 세계보건기구가 발암물질로 분류했으며, 염화에틸, 클로로포름 역시 발암·생식 능력 저하를 유발하는 독성물질로 알려져 있다. 이후 P&G사는 2015년 생리대 흡착 패드에 대해 자체 안전성 평가를 실시한 후 피부 자극, 세포 독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1980년 미국에서는 탐폰(삽입형 생리대)로 인한 독성쇼크신드롬(TTS)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었다. 현재 미국에서 생리용품은 식품의약청(FDA)이 관리하는 의료기기에 포함되어 있지만 모든 성분을 공개할 의무는 없다.

프랑스에서도 소비자를 중심으로 유해성 논란이 커지자 지난 5월 프랑스 경제부 산하기관인 ‘경쟁·소비·부정방지국’(DGCCRF)은 시판 중인 생리용품 27종에 대한 성분검사를 진행했다. 모두 20종에서 화학첨가제인 프탈레이트나 다이옥신 등의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하지만 DGCCRF는 최종 결과 보고서에서 “검출된 화학물질에 대한 허용 최대치 등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식품환경노동위생안전청(ANSES)에 안전성 검사를 요구했다”면서 “검출한 유해물질은 극히 소량으로 심각하거나 즉각적인 위험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발표했다.

네덜란드 국립보건조사국(RIVM)도 2000년 생리대가 인체에 미칠 위해성은 없다고 평가했다. 일본에서도 2014년 생리대 7종에서 각종 화학물질 중 독성이 가장 크다고 알려진 다이옥신이 검출돼 사회적 이슈가 됐지만, 당시 생리대에서 검출된 다이옥신의 양이 극소량이어서 건강상 위험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주요 유통업체들이 부작용 논란이 불거진 깨끗한나라의 생리대 ‘릴리안’을 지난달 24일부터 판매중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여성 40년간 사용하는 생리대, 극소량 유해물질도 우려..신뢰할 수 있는 기준 나와야

하지만 생리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40여년 동안 사용해야 한다. 또 화학물질의 흡수가 용이하며, 아주 예민하고 건강 문제가 생기기 쉬운 부위에 밀착 사용되는 제품이라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극소량의 유해성분에도 여성들이 안전성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생리대 생산업체 한 관계자는 “극소량의 화학물질이더라도 인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부의 객관적인 검사결과가 나오고 기준이 이른 시일내 마련돼야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유해물질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반감이나 불신이 워낙 크기 때문에 기업들도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컨대 연초 논란이 됐던 유한킴벌리 아기물티슈는 기준치를 넘는 메탄올이 검출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판매중단 및 회수조치를 내렸다. 물티슈의 경우 검출된 메탄올 함량은 극히 적어 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제조과정에서 일부러 첨가한 게 아니라 보존제인 에탄올이 발효되면서 자연적으로 생성됐을 가능성이 컸다. 문제가 된 하기스 제품들은 0.003~0.004% 가량의 메탄올이 검출됐는데, 국내법상 허용되는 메탄올 함량 기준은 0.2% 이하였다. 다만 영유아용 물티슈는 제품 특성상 100분의 1 수준인 0.002% 이하로 관리되기 때문에 극약처방이 내려진 것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5% 이하, 미국은 기준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생리대의 경우, 이런 기준치마저 없어 의혹만 난무하는 가운데 자칫 소비자와 생산업체 모두 피해만 입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식약처의 뒤늦은 대응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크다. 환경운동연합 한 관계자는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 관리 책임이 있는 식약처는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에 시민단체와 소비자가 전성분 공개나 안전성 규정 강화 등을 요구했지만 묵살해 왔다”면서 “환경단체가 자비를 들여 조사하고 정책 개선을 건의했는데 이런 노력을 비과학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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