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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종묘 오얏꽃향·창덕궁 모란향…"K향기 널리널리 퍼지길"

김보경 기자I 2021.11.15 16:24:46

韓 전통향기 발굴·재현하는 홍연주 코스맥스 향료랩장
조상들이 사랑했던 향기 7년째 15종 발굴·복원중
문헌고증부터 시작..생화 다치지 않게 향기 포집
메타버스에서 후각 간접경험하는 방안도 연구 계획

[이데일리 김보경 기자] 지난달 말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된 ‘안녕, 모란’ 전시회. 조선 왕실이 사랑했던 모란에 대해 가구부터 의복 그릇 그림 등 다양한 유물로 볼 수 있었던 이 전시회장에서는 ‘꽃 중의 왕’이라 불리는 모란의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향기가 시각보다 먼저 관람객들의 후각을 자극했다.

15일 경기도 판교 코스맥스 R&I 센터에서 만난 홍연주 향료랩(lab)장(이사)은 당시 전시회를 떠올리며 “관람객들은 향에 이끌려 쉽게 왕실 문화로의 초대에 응하게 된다”며 “이것이 향기가 가진 힘”이라고 강조했다.

▲홍연주 향료랩(lab)장. (사진=코스맥스)
보이지는 않지만 시간과 장소를 떠오르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향기. 홍 랩장은 7년째 이 전시회의 모란향처럼 선조들에게 사랑받았거나 역사적 의미가 있는 한국 전통향기를 발굴해 재현·복원하는 ‘센테리티지(Scenteritage®)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센테리티지는 향기(Scent)와 유산 (Heritage)의 합성어다. 이 프로젝트는 특히 “전통의 향기를 기술로 승화시키자”는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3년간 향료를 개발해 온 홍 랩장에게도 센테리티지 프로젝트는 특별하다. 기업이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한국 고유의 향기를 보존한다는 선한의지가 강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개발 과정은 다른 프로젝트와는 비교할수 없게 까다롭고 고달프다.

홍 랩장은 “단순히 향기만 개발한다면 화학적인 기술로 그저 비슷한 (예컨대)매난국죽의 향을 재현하면 그만이다”며 “하지만 센테리티지는 조상들이 사랑했던게 정말로 그 향기가 맞나?”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조상들이 사랑한 향기는 사실 문헌으로 고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센테리티지는 문헌 고증으로부터 시작한다. 여러 문헌에 어떤 향이 나온다면 일단 그 향에 대한 스토리 콘셉트를 잡는다. 스토리 콘셉트에는 존경할만한 조상이나 사건, 역사적 배경이 그 향을 설명해줄 재료로 등장한다. 적당한 장소에 가서 향기를 포집하고 현대의 후손들의 기호성까지 체크한 후 합당할 때 향료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종묘의 오얏꽃. (출처=blog.naver.com/pamina7776)
그렇게 2016년 처음 복원한 것이 오얏꽃향이다. 자두꽃의 순우리말인 ‘오얏꽃’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의 상징으로 삼으면서 500년 동안 조선 왕조의 역사와 함께 했다. ‘춘향전’, ‘도리화가’ 등 조선시대 판소리 곡에도 아름다운 오얏꽃에 대한 노랫말이 있을 정도로 옛 선조들의 삶과 밀접한 꽃이다.

홍 랩장은 “스토리에 맞는 전통 오얏꽃을 찾는게 가장 중요했다”며 “종묘에 전통 오얏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비영리목접으로 하는 프로젝트라는 설득 끝에 오얏꽃에서 향기를 포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생화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붙었다. 센테리티지는 화학처리를 하지 않고 생화에 유리병이나 비닐봉지 등을 씌워 장시간에 거쳐 향기를 포집하는 기술을 사용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안동 서원의 배롱나무 꽃향 △강릉의 여류문인의 매화나무 꽃향 △홍성의 조선문신의 오동나무 꽃향 △충북 전통 먹장인의 송연먹향 △한국의 뿌리 고려인삼향 △선비의 오랜 벗 석창포향 등 15종의 향이 복원됐다.

홍 랩장은 지난 9월에 열린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선보일 ‘오월 빚고을 향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5개월이나 앞선 지난 4월 광주에 내려갔다. 광주 전역에 피어나는 이팝나무꽃향이 광주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판단, 국립 5·18민주묘지의 진입로, 광주시청 앞 대로변, 광주시내 전역의 가로수, 천연기념물 몇 그루 등 이팝나무 서식지를 둘러보고 광주시청의 이팝나무를 정해 이를 포집해 ‘오월 빚고을 향기’를 만들어냈다. 순백색의 이미지에 깨끗한 비누향기와 비슷한 이팝나무향은 그 무렵 함께 작업한 모란향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이팝나무꽃 향기를 포집하는 모습. (사진=코스맥스)
내년에도 2~3종의 새로운 향을 발굴할 계획이다. 홍 랩장은 “기후에 따라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기도 늦춰지기도 하고 그 해에 꽃이 잘 피지 않거나 피어도 향기를 풍부하게 내지 않을 수도 있다”며 “센테리티지는 다른 향료 연구와는 꽃과 연구진의 궁합이 맞아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단 포집이 되면 빠르면 2개월, 길면 3~4개월의 조향과정 끝에 새로운 향이 탄생하게 된다.

홍 랩장은 “다양한 한국 고유의 향으로 글로벌 고객사에게 한국적인 향기를 소개할 수 있다”며 “개발된 향료는 한국적인 성격이 들어가는 향수나 샤워코롱, 디퓨저 등 다양한 방향 제품과 화장품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랩장은 세테리티지 프로젝트 외에 메타버스와 향기를 접목하는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가상공간 구찌 가든을 들어가봤는데 색감이 너무 예뻤지만 정원을 표방하면서도 아무런 향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웠다”며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시각·청각처럼 후각도 간접 경험이 된다면 가상공간이 좀 더 진짜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뇌공학과 연계해 후각을 간접경험 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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