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등은 1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관련해 토론회를 개최했다. 직장 지위나 관계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지난해 7월 16일 시행돼 이날로 1년을 맞이했다.
|
의료연대본부·행동하는 간호사회가 지난달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 노동자 13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는 응답한 이들은 전체의 60%(788명)로 조사됐다. 그러나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에도 변화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39%(514명)로 집계되면서 병원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병원 내 괴롭힘은 모욕, 따돌림 등 다양한 형태로 일어났다.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사례에 따르면 한 국립대학 병원의 간호사는 직장 상사로부터 “출근 시간이 늦으니 세 시간 먼저 나와라”, “눈에 안 보이느냐? 눈깔을 빼서 씻어줄까?” 등의 폭언을 듣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 이 간호사는 자신이 두 달 만에 7kg이 빠질 정도로 고통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병원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은 관리자보다 직장 상사에 의해 가장 많이 일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연대본부 등의 조사에서도 ‘관리자가 아닌 상급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사례가 전체의 44%(576명)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직장 상사에 의한 괴롭힘이 도제식 교육으로 이뤄지는 간호사 교육이나 업무 특성과 연관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민화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가는 “인력 부족으로 별도 교육인원 없이 기존 경력 간호사를 활용해 교육하는데, 이는 경력 간호사 개인에게 교육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이라며 “경력 간호사는 기존 환자를 돌보면서 교육을 진행하다 보니 부담을 갖고, 신규 간호사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환자를 돌보다 보니 실수를 해 괴롭힘을 당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강경화 한림대 간호대학 교수도 “인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부분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연결되는 환경을 구성하는 구조적 원인이 될 수 있다”며 “병원 내 간호부서는 만성적 인력 부족과 높은 이직률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서 성과를 강력하게 추구한다면 상급자와 하급자 간, 직종 간, 동료 간 갈등을 일으켜 직무 스트레스를 높인다”고 말했다.
◇“노동 환경 개선해야”…제도적 뒷받침도 요구
토론 참석자들은 병원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도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인임 일과사회 사무처장은 한국 사회의 과로 문제를 지적하며 보건업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받지 않는 특례 업종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즉, 열악한 노동 환경이 인력난을 부추기고, 인력난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단 의미다.
한 사무처장은 “면허를 가진 우리나라 간호사 중 활동하는 간호사가 50%가 되지 않는데, 이는 OECD 평균 70%보다 한참 낮은 편”이라며 “노동 환경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증거고, 인력을 수급하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노동 시간까지 통제되지 않으니 서로 일을 하다가 다 죽어가는 형태”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종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업장 내 자율적 해결 절차로 설계돼 실효성이 떨어지고, 적용 범위가 좁아 한계가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조치를 사업주의 의무로 규정하는 등 법안 내용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함께 주최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심각하지만, 현행법은 처벌 조항이 없어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며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괴롭힘 실태 증언과 관련 대안 등을 종합해 직장 안팎에서 일어나는 괴롭힘을 근절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