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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을 판단할 때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통계가 있다. 바로 세계 경제성장률이다.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소규모 개방 경제다. 내수보다 수출로 먹고살아 왔고, 또 먹고살고 있는 나라다. 그런 만큼 대외 여건의 흐름에 따라 등락했던 게 냉정한 현실이다. 우리 경제가 열 손가락 안팎에 꼽히게 된 것도 세계 경제보다 큰 폭 성장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최근 15년은 세계 경제 성장률을 오히려 밑돌고 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충격 이후 너무 일찍 ‘선진국형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2년 이후 ‘구조적 장기침체’ 지적도
18일 국제통화기금(IMF)과 정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03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9%로 전년(7.4%)의 반 토막도 되지 않았다. 2003년이 의미가 있는 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세계 경제 성장률을 본격적으로 밑돌기 시작한 때이기 때문이다. 2003년 당시 세계 경제는 4.3% 성장했는데, 이는 전년(3.0%)보다 1.3%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그 이후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2009년과 2010년을 제외하면, 우리 경제는 더디게 성장했다. 15년째 경기 반등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2012년 이후로는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우려가 학계를 중심으로 만연해 있다. 상대적으로 세계 경제를 밑도는 와중에 2%대 성장에 그친 탓이다. 세계 경제 성장률은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3.5%→3.5%→3.6%→3.5%→3.2%→3.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우리 경제의 경우 2.3%→2.9%→3.3%→2.8%→2.9%→3.1% 성장하는데 그쳤다.
이는 과거 고성장기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데일리가 1980년 이후 통계를 분석해보니, 1980년 오일쇼크 때와 1998년 외환위기 때 2년을 빼면 모두 세계 경제 성장률을 뛰어넘었다. 세계 경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2~4% 성장을 했는데, 우리 경제는 10% 안팎 성장을 했던 것이다.
예컨대 3저 호황(1986~1988년) 때 우리나라는 11.2%→12.5%→11.9%로 치솟았다. 당시 세계 경제는 3.7%→4.0%→4.7% 정도였다. 1990년대 들어서도 우리나라가 10% 가까이 고공행진을 하는 동안 세계 전반은 2~3% 정도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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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과잉‘ 문제…“경제는 초당적으로”
문제는 성장률 역전 폭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가 이날 내놓은 경제전망을 보면, 올해 우리 경제는 2.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IMF가 전망한 세계 경제 성장률(3.9%)보다 1.0%포인트 낮다. 2012년(1.2%포인트) 이후 6년 만의 최대 폭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중 무역갈등을 언급하며, 2.9%를 밑돌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성장의 양뿐만 아니라 질도 악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반도체 착시’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출(1~6월)과 설비투자(1~5월)는 각각 6.6%, 4.8% 증가했다. 다만 반도체를 빼면 수출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설비투자는 1.4% 뒷걸음질쳤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반도체를 제외한 지표를 지속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제계에서는 우리 경제가 이미 선진국형 저성장을 앓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전방위적인 구조개혁과 체질개선 없이는 ‘L자형 불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온다. 경제계 한 고위인사는 “내수가 협소한 우리나라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며 “요즘 들어 성장의 가치가 폄훼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런 와중에 국내 특유의 정치 과잉이 경제를 좀먹고 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이 인사는 “세계 경제에 따라 움직이는 우리 경제 사정상 정권별 ‘성장률 성적표’는 큰 의미가 없다”며 “정치권의 초당적인 대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